군무원동원
개요
군무원은 당시 용어로는 군속(軍屬)으로 통칭되었다. 군무원은 크게 군노무자와 기타군요원(문관, 운전수, 간호부, 포로감시원)으로 구분되었다. 군무원 가운데 다수는 군부(軍夫), 고원(雇員), 용인(傭人)이라 불리는 ‘군노무자’였다. 특히 포로감시원은 타이완과 조선인을 대상으로 충당했는데 한반도에서는 1942년 6월에 모집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인원수를 할당하여 면서기와 순사들을 앞세워 3,223명의 청년들을 동원해 노구치(野口)부대에서 훈련을 받도록 한 후 한반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뉴기니, 미얀마, 태국 등의 포로수용소에 배치했다. 이들은 패전 후 포로에 대해 가혹 행위를 한 혐의로 BC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보르네오 등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었지만,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일본 당국의 책임회피와 식민지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재판부의 결정으로 129명이 기소되어 유죄가 확정된 20명이 처형되었다.
군무원동원 상황
출처: 『위원회 활동 결과보고서』,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편, 2016, 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