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국민통합과 평화, 인권신장에 기여

EOO 할머니 이야기

EOO 할머니 이야기 - 팔라우, 라바울 섬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됨

EOO 할머니 이야기
  • 1922년

    출생

  • 1940년 10월

    전남 광주에서 동원, 광주에서 여수로 이동

  • 1940년

    일본과 대만 등을 경유하여 팔라우로 이동
    팔라우, 라바울(現 파푸아뉴기니령 뉴브리튼섬)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함

  • 1945년

    팔라우에서 해방을 맞이함

  • 1946년

    부산으로 귀국

할머니, 남양군도 다녀온 이야기 좀 해주세요.

광주 ○○방직회사에서 일허다가 갔었어. 큰 방직회사여. 여럿이 갔어. 그때.

공장에서 일하다가 어떻게 남양군도로 가게 된 거예요?

그때 일을 하는데 모두 일본 가자고 아우성들을 치더라고. 누가 선도잔지도 모르고, 우리는 인자 그래. 그때는 일본 간다고 하면 좋아들 했잖어. 그래 가자고 모두들 서둘고 나서서 갔지. 일하는 도중에 너도 나도 일본 가자구들 하니까 인자 나도 따라 나선 거여.

몇명이나 같이 갔어요?

몰라여. 많이, 많이 갔어요. 일하다 모두 갔은께 모른다고.

그때가 몇 살이었어요?

그때가 열여덟인가, 열아홉인가 그렇게 되었을 거야.

가장 마지막에 내린 곳이 어디였어요?

거기는 남양군도. 빠라우도(팔라우)는 후방이고, 남양군도라는 데는 전쟁터고 그래. 우리는 빠라우도에 도착해서 몇 달을 있었어. 또 남양군도에 가라 그래서 남양군도에서 몇 년 있었고 그래. 남양군도는 일반인이 없어. 전부 군인이지.

남양군도에서 무슨 일을 하셨어요?

군인들 접대만 했지.

접대라는 건 어떤 거예요?

군인들 접대했다 그러면 다 알지 뭘 자꾸 물어. 그러면 알아들어야지. 뭘 또 물어봐. 몰라도 돼, 그건.

군인들이 있었으면 할머니가 일했던 곳은 부대 안이예요?

맨 부대 안이나 한가지야. 거기는 일반인이 없응께.

그러면 부대 밖에 있었어요?

응. 부대랑 가까워.

할머니 계시던 곳은 어떻게 생겼어요?

하꼬방 맨치로[판자집처럼] 쭉, 방만 쭉있어. 길다란 집이 여러 개가 쭉 있다고. 기숙사방 같이.

뭘로 지은 집이예요?

나무. 좀 높아도 다 나무로 말뚝 박아서 그냥 엮어놓은 집이야. 땅바닥하고 조금 떨어져 있어.

방 하나에 한 사람씩 사는 거예요?

응.

관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일본 사람이야. 남자지. 젊은 사람이야.

라바울 위안소

『라바울 위안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덕경 작품,나눔의 집/일본군'위안부'역사관 자료제공

옆방 사람이랑 이야기 해봤어요?

옆방에 누가 있는지 몰라. 얘기는 해도, 그 당시에는 얘기를 하고 지냈지만, 시방 기억이 안 나.

거기 있는 여자들은 어떤 나라 사람들이예요?

다 조선여자지.

관리하는 한 명만 일본 남자고요?

왜 한 명이겠어. 또 있겠지. 기숙사 관리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감독은 또 있다니까.

기숙사에 담이 쳐져 있었어요?

그런 것도 없어. 군인이 버글버글해.

군인이 언제 버글버글해요?

맨날 버글버글해. 군인은 비행기 타고 가는 사람 있고, 쌈도 나가서 하는 사람 있고, 또 쉬는 사람 있고. 교대로들 싸워. 버글버글 하지. 쉬는 시간이 머이[어디] 있어.

아침 먹고나면 군인들이 와요?

그럼.

어떤 날 군인이 많이 와요?

그런 것도 없고. 거긴 달력도 없었어. 지금이 몇월달이다 그런 것도 몰라. 멍충이 마냥. 모르는 시간이야.

밤에는 쉬어요?

밤에도 군인이 있어. 왜 밤에 없어. 대중없어. 저거가 시간 있으면 아무 때나 와.

혹시 계급별로 달리 와요?

낮은 사람은 아무래도 시간 여유가 별로 없지. 별달린 사람은 밤에 많이 오고.

할머니, ‘삿쿠’(콘돔)라는 거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샷꾸’. 다들 사용해. 군인들이 갖구 댕겨.

군인들이 표나 돈을 주던가요?

조바(帳場 : 상점이나 여관의 계산대)에다 내고 오지.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성병검사도 했어요?

해요. 일 주일에 한번씩 해요.

어디서요?

병원이 있어. 군인들도 치료하고 하는데.

병원에 일 주일에 한 번씩 거기 같이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전부 가는 거예요?

그럼. 다 검사해. 한 명씩 하구 나오고, 하구 나오고. 오늘 못하면, 내일까지라도. 일 주일에 한 번씩 검사해.

검사하는 날은 군인 안받는 날이에요?

그렇지.

할머니는 병 걸린 적은 없었어요?

안 걸렸어.

같이 있던 사람 중에 임신한 사람은 없었어요?

임신한 사람도 많지. 임신한 사람도 있어. 임신하면 저 빠라우도로 내보내. 후방으로 내보낸다고. 임신한 여자들이 후방에서 아이를 낳았는지 안 낳았는지는 모르지.

빠라우도에는 얼마나 계셨어요?

빠라우도에서도 한참 있었어. 여기서도 있고, 저기서도 있고. 그래서 잘 기억이 안나. 한군데만 꼭 있었던 것이 아니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셨어요?

한번 옮겼어. 빠라오도 후방에 있다가 라바우도로 갔어.

라바우도에는 같은 주인이랑 갔어요?

그 주인하고 간게 아니야. 여자 여럿이 갔지. 여럿이 가니까 거기도 빠라우도처럼 방이 쭉 하니 있더라고.

라바우도는 다른 주인이었어요?

주인은 맹 그 주인이라도, 저 관리인만 틀리지.

아, 그럼 똑같은 주인이 라바우도에 또 하나 그런 걸 만든 거네요.

그럼. 맨 자기가,자기 사람 아니여. 그러니까 집만. 거 가서 또 돈을 벌어라하고 또 보낸거지.

라바우도에서도 ‘삿쿠’는 군인 이가져왔어요?

‘샷꾸’는(군인이) 갖고 댕겨.

라바우도에서도 일 주일에 한 번씩 검사를 했어요?

응. 군인들 병원에서.

검사한 사람도 군인이에요?

군인. 하얀 복장 했어요. 병원에서는 하얀 복장 입었어.

군인인데 군복은 안 입었구요?

속에 군복 입지.

간호원도 있어요?

간호원도 있어.있어.

주사 맞은 건 없었어요?

주사도 더러 맞았어.

주사는 왜 맞았어요?

예방주사지.뭐.

그게 어떤 주사예요?

몰라. 주사약 이름을 어떻게 아누. 그냥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놔줘.

주사는 어디에 있을 때 맞으셨어요?

빠라오도에서도 맞고, 라바우도에서도 맞고.

병이 생겨서 맞은 주사는 아니고요?

나는 병이라곤 안 걸려봤어.

주인한테 돈을 받아요?

그런건 없어. 빚을 자꾸 지게 할려고 옷도 많이 해주고. 그렇게 해주는데, 우리는 인자 옷을 해주면 입고 안 해주면 말고. 우리 맘대로 가서 옷을 사 입지도 못해. 그래, 그래가 어느 정도 거기서 환불로 하잖아. 돈을 만 원을 받으면 반은 거기(주인), 반은 인자 내꺼. 그렇게 해 가지고 차차 갚아나가는 거야.

라바우도에서 해방될 때까지 계속 계셨어요?

라바우도에 갔다가 빠라우도로 와서 해방되고 나왔지. 해방 되고 그 이듬해 나온 거야. 라바우도에서 어린애가 있어서 나왔어. 애기 있어 갖고. 전방이니까 애기를 못 낳게 하더라고. 애기, 임신 핸 거라. 일 주일마다 가서 검사를 하기 땜에 병원에 가니께 임신 했다고 나가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나왔지. 그래서 빠라우도에 있다가 인자 해방이 된 거여.

빠라우도에 다시 돌아오셔서는 어디에서 지내셨어요?

맨 처음에 있던데. 그것밖에 아는 데가 없잖어. 그래 맨 그 주인한테로 와야지. 갈 데가 없으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 빠라우도에 올 적에 맨 그 처음 만났던 주인한테로 왔었다고.

아기는 빠라우도에서 출산을 하셨어요?

거기(빠라우도)서 낳아서 데리고 나와갔고, 얘는 한국에 나와서 죽었어. 세 살인가 네 살인가 먹어서 죽었어.

어쩌다가요?

병. 아파갖고 죽었어.

임신하고 빠라우도에 나와서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청소하고 다 부엌일 다했지.

출산하고 해방 후에 나올 때까지 빠라우도에 얼마나 계셨어요?

한참 있었어. 애기가 기어다닐 때는 넘었지.

나올 때 빚은 다 갚을 수 있었어요?

빚갚고 돈을 번다 해도 갖고 가도 못하게 해. 그 나라에서. 정부에서 돈 못가지고 가게 해서. 다 내버리고 왔지. 배 탈 때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 하나 앞에 삼만 원씩 밖에 못 갖고 가게. 몸 조사하고 막 그래. 일본에서 우리 한국에 나올려고 배 탈려구 하면 몸 조사 다한다고.

아기 업고 어디로 가셨어요?

친정밖에 갈데 더 있어? 엄마가 하여튼 놀랬지. 애기를 업고 오니까. 놀래, 놀래지. 옛날에는 그런 저기가 없잖아. 시방 맨 지금처럼, 연애 걸고 어짜고 저짜고 하는 시대가 아니기 땜에. 노인 들이 챙피하기도 하고. 기집애가 나가서 애기 낳아서 오니까 안 좋지.

방적공장에서 출발할 때 어머님께 연락 드렸었어요?

갈 적에는 못 드렸고, 연락도 안했어. 못 가게 할까봐.

가서 편지한 적은 없으셨어요?

했어. 남양군도라고 안하고 그냥 일본에 와 있다고 그랬재.

뭐라고 쓰셨어요?

그냥 잘있다 했지. 몇 번이고 했어. 편지는 자주 보낼 수 있었어.

할머니가 직접 썼어요?

남한테 써달라고 했지.

딸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어머니가 많이 놀라셨겠어요.

거의 죽은 줄 알았대. 나중에 인제 어떻게 편지로 조금씩 연락을 해 가지고 알고서. 우리 어머니가 맨날 장독간에 물 떠다 놓고 빌어서, 내가 안 죽고 살아온 거야.

『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회생자 등 지원위원회 발간) p168~p185. 요약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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