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석 (李判石) 이야기
이판석 (李判石) 이야기 - 전남 허사도 상륙정 진지 구축 작업 동원
- 1924년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출생
- 1945년 2월
전라남도 목포 소재 부대로 입영
- 1945년 3월
전라남도 목포 소재 허사도로 동원 후 상륙정 진지 구축 작업 투입
- 1945년 9월
해방 후 전라북도 순창군으로 귀환
그때, 군인 갈때 그 훈련받을 적에 스물한살 먹었지.
그럼 선생님 동원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농사했지 뭐.
선생님 그러면 계속 농사일만 하신거에요?그랬죠. 그리고 훈련바느라고 농사도 못갔어. 맨 연성소 훈련받으러 대니느라고~
연성소 훈련이요?예.
그럼 할아버지 연성훈련에 내용은 어떤 것들이었어요?뭐 일본놈덜 뭐 군가네 뭣이네 뭐다 그런거 가르치고 그랬지. 그때 훈련이 얼매나 심했는지~ 날 마도 기양 앉아서 책갈치고 이게 목통들고 책걸치모를 운동장을 돌으라니 살 수가 있어야지. 그럴정도로 했어. 훈련을 하여간.
일주일 내내 날마다 받았지 아주 기양 결국.
날마다요?예. 날마다 기양.
할아버님 그 당시에 영장같은게 나왔을 때 동원을 안가겠다 버티면 어떻게 되었었어요?안해봤죠. 안해봤는디. 그 때 만약 안가면 잡아다 징역, 징역살리니까. 징역갔으니까.
징역을 살렸어요? 그 당시에?예. 그랬었지. 다 가 붙잡아서 기양 안가고 못견뎌. 자기만 못견딘 것이 아니라 그 집 가족을 저누다, 전부다 못이겨. 일본놈들이 가만두가지? 뭐 하~루도 성가셔 못살어. 여간해서. 이, 자기 하나가 군인 가고 말아야지.
상륙정 벙커
허사도로 배타고 들어갔지.
할아버님 훈련 받으실 때 어떤 가혹행위 같은 게 있었나요?가혹, 가혹은 어딘지간에 훈련받으면 가혹은 말할 수 없어. 하여간, 밥은 적게 주고 가혹은 참 저, 참 뭐 여간. 아, 여간 사람은 정신 못챙길 정도로 그렇게.
그러면은 허사도에 군생활은 어떠셨나요?그때는 군대도 아니갔죠. 굴을 팠어. 굴. 굴파고 거기서 인자 밤낮이로, 세교대, 여덟시간씩 하루 여덟시간.
3교대 여덟시간씩 근무하셨어요?여덟시간씩 세교대로 계속 팠지. 거 인제 며칠 파고. 긍게 굴을 파는데 어치케 파는고 허면은 맻 조가 맨 가운게 그때 이 정대고 이렇게 남포 구녕을 뚫었어. 근디 헐줄 몰르모릉게 손등만 도마 말똥 다~ 다치기만 했지. 근디 굴을 뚫어노면 그걸 인자 그, 기술자들이 그 화약갖고와서 거기다 넣고 남포를 틀어. 그렇게 인제 그면은 그 이튿날 우리가 싹~ 치워버리고 인자 또 와서 또 굴 이렇게 파고.
그럼 할아버님 여기서 인제 밤에 근무하시다가 혹시 탈출같은거 하고 그러신분들 안계셨나요?도망간사람? 있지.
자살 특공정 벙커
너인가 도망갔어. 세놈은 이 허사도서 목포를 나올라면 한 4킬로정도 되는가? 그러먼은 물시엄을 긍게 물이 빠졌을적이는 인제 중간에 이러고자, 근디 거기서 시엄잘해노먼 4킬로를 그냥 시엄히서 건너간, 건너간 놈들은 3놈은 가고 한놈은 잽히서 죽게 맞었지. 죽게 맞었어.
그럼 할아버지 여기서 근무하실 때 월급같은거 받으신거 있으세요?월급 암것도 읎어~ 월급이 뭐시와. 돈이라곤 일원한푼 읎어.
돈은 하나도 못받으셨고?하나도 없어.
할아버님 일주일 내내 근무는 안하셨을 거 아니에요? 하루는 쉬셨을 거 아니에요? 최소한도?하루도 쉬는날이 읎었지?
쉬는 날 없이 그냥 8시간씩 일하게 하니까?기양. 계속해 기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