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쿠사이에섬 군시설
개요
제목 | 쿠사이에섬 군시설 | 국가 / 지역 | 미크로네시아 연방 / 남양군도 | |
---|---|---|---|---|
현주소 | 미크로네시아 연방 코스라에주 (The State of Kosrae, 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 |||
강제동원 시설 | 군사기지 | 피해 유형 | 군무원 | |
관련 기업·기관 |
과거 | 해군 | 동원 방식 | 미상 |
현재 | 해상 자위대 | 피해 인원(추정) | 약 323명 |
설명
역사
쿠사이에섬은 태평양 서부의 미크로네시아 중부에 있는 캐롤라인(Caroline) 동쪽 끝에 있는 화산섬이다. 현재는 코스라에(Kosrae)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소위 남양군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위임통치를 한 구 독일령 마리아나(Mariana), 캐롤라인(Caroline), 마셜(Marshal) 등의 3개 군도를 총칭한다. 일본은 해당 지역에 사이판(Saipan), 얍(Yap), 팔라우(Palau), 도라쿠(ドラッグ, Chuuk), 포나페(ポナペ, Pohnpei), 야루토(ヤルート, Jaluit) 등 6개의 지청을 두어서 통치하였는데, 쿠사이에섬은 포나페 지청에 속했다.
조선인 강제 동원 실태
해당 지역의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는 「舊海軍軍屬身上調査表」(구 일본 해군에 강제동원된 79,000여 명의 조선인에 대한 기록), 「쿠사이에(クサイエ)島 朝鮮革進會 芳名錄」(쿠사이에섬으로 동원되었다가 귀환한 조선인들이 작성한 명부)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중 전자에 따르면 쿠사이에섬에 동원된 조선인은 사망자 4명(3명은 전병사, 1명은 전사)을 포함한 총 323명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위 323명 중 제4 시설부로 소속된 4명을 제외한 319명은 전원 시바우라(芝浦) 보급부(남양군도로 동원된 군무원을 관리하는 부서로 추정) 소속의 공원(工員) 신분으로 강제노역을 당했다. 동원 당시 연령 분포를 보면, 20대 초반이 124명,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이 131명으로, 노동력이 우수한 연령대 위주로 동원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진술로 볼 때 이들의 동원지역인 쿠사이에섬에서 행한 작업은 주로 토목과 건설 작업을 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생존자 319명의 경우 1명(1943년 8월에 解員된 자)을 제외하고는 318명 전원이 1945년 11월 13일 히가와마루(氷川丸)을 타고 우라가(浦賀)에 도착한 뒤 동원 해제되었다.
한편 위 323명의 입적 시기는 1942년 8월과 같은 해 11월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총 두 차례에 걸쳐 동원이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대부분 경북 지역에서 동원되었고, 후자의 경우 주로 함북 지역에서 동원되었다. 이는 특정 지역에 동원이 집중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쿠사이에섬에 특별히 이 지역 출신 인원들을 배치했다기보다는, 일정 기간에 각 지역에서 인원을 동원한 후에 그 인원들을 노동력이 필요한 곳에 배치한 결과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한반도 내에서 인원을 강제로 동원할 당시에는 노무자와 군무원의 구분이 없이 지역에 할당하여 동원한 다음, 소요되는 기업이나 작업장 또는 군부대에 배속하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참고문헌
- 심재욱, 「전시체제기 일제의 조선인 해군군속 동원 실태―「舊海軍軍屬身上調査表」의 동원지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정혜경, 김명환, 이마이즈미 유미코, 방일권, 심재욱, 조건 저, 『강제동원을 말한다―명부편(2) '제국'의 끝자락까지』, 선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