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팔라우 제도 건설 현장, 광산
개요
제목 | 팔라우 제도 건설 현장, 광산 | 국가 / 지역 | 팔라우 공화국 / 팔라우 제도 | |
---|---|---|---|---|
현주소 | 팔라우 (Palau) | |||
강제동원 시설 | 건설 현장, 광산 등 | 피해 유형 | 노무자, 군무원 | |
관련 기업·기관 |
과거 | 남양척식주식회사 등 | 동원 방식 | 모집 |
현재 | - | 피해 인원(추정) | 약 3,354명 |
설명
역사
팔라우 제도(Palau Islands)는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하고 있고 베벨다오브(Babeldaob), 코롤(Koror), 펠렐리우(Peleliu), 앙가우르(Angaur) 등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면적은 약 415 k㎡다.
팔라우 제도는 16세기에는 스페인이, 19세기에는 독일이 통치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승전국이 된 일본이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을 대신해서 위임통치를 하게 되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기에 미크로네시아 지역의 마리아나 제도(Mariana Islands), 팔라우 제도, 캐롤라인 제도(Caroline Islands), 마셜 제도 등의 섬들을 남양군도(南洋群島) 또는 남양제도(南洋諸島)라고 칭했으며, 1914년부터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까지 이 지역을 통치했다. 당시 일본은 남양군도를 통치하기 위해 팔라우 제도의 코롤섬에 남양청(南洋庁)을 설치하는 한편, 남양군도를 개발하기 위해 남양척식회사(南洋拓殖会社)를 설치하고 일본인들을 이주시켰다. 1930년대에는 원주민들보다 더 많은 일본인이 남양군도에 거주하고 있었다.
미국이 태평양을 탈환하기 위해 남양군도를 공격할 때 팔라우 제도에서 펠렐리우 전투, 앙가우르 전투가 발생했는데, 당시 펠렐리우섬과 앙가우르섬에 강제동원되어 있던 조선인들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인 강제 동원 실태
팔라우 제도에 조선인들이 언제부터 들어왔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남양청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1936년 10월 현재 46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1938년 12월 말에는 91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해진 일본은 1939년부터 조선인들을 강제동원 했고, 강제동원되는 조선인들이 증가하면서 1939년 12월 말 790명, 1940년 12월 말 1,189명, 1941년 1,663명, 1942년 1,940명, 1943년 2,460명 등 팔라우 제도에 거주하게 조선인들의 수조 점점 증가했다. 한편『조선인노무자관계철』에 실린 노무자 동원 명부에 따르면, 1944년에는 334명의 조선인이 팔라우 제도에 동원되었는데, 노무자들을 수송하던 오사카호(大阪丸)가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40명의 조선인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때 팔라우 제도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대부분 해군과 육군의 군무원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남양청, ㈜ 난요무역(南洋貿易), ㈜ 호난산업(豊南産業) 등이 조선총독부의 승인을 얻어 모집을 통해 조선인들을 팔라우 제도로 강제동원했고, 조선인들은 도로 공사, 항만 공사, 농장, 인광(燐鑛), 군 시설 공사 등에서 토목 노동자, 농장 노동자로 등으로 종사했다. 일본의 패전 이후 팔라우 제도에서 노무자 2,765, 군무원 589명 등 3,354명이 귀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누락되어 있는 인원도 있을 수가 있어 실제 귀환한 조선인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 출처: Google Map
※ 출처: Google Map
※ 출처: Google Map
※ 출처: Google Map
참고문헌
- 김도형, 「중부태평양 팔라우 군도 한인의 강제동원과 귀환」,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26집, 2006.
- 김명환, 『남양군도 지역 한인노무자 강제동원 실태에 관한 조사(1939~1941)』,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9.
- -----, 「일제말기 조선인의 남양군도 이주와 그 성격(1939~1941)」,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64집, 2010.
- -----, 『1944년도 남양청 동원 조선인 노무자 피해실태 조사』,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2012.
- 今泉裕美子, 「パラオ諸島をめぐる民間人‘引揚げ’」, 『日本帝國崩壞期‘引揚げ’の比較硏究』, 日本經濟評論社,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