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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군부대

개요

버마 군부대 개요:제목, 국가 / 지역, 지역 정보, 현주소, 강제동원 시설, 관련 기업·기관(과거, 현재) 피해 유형, 동원 방식, 피해 인원(추정)에 대한 표
제목 버마 군부대 국가 / 지역 미얀마 / 미얀마
현주소 미얀마
강제동원 시설 군부대 피해 유형 군인
관련
기업·기관
과거 육군 동원 방식 모집, 관알선, 징용
현재 육상 자위대 피해 인원(추정) 약 5,000명

설명

역사

버마(Burma)는 현재 미얀마(Myanmar)의 옛 지명으로, 1989년 6월부터 미얀마가 되었다. 자연환경은 바다에 접한 서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육지 면적은 약 68만k㎡에 달해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크며, 한반도의 3배에 달한다. 2021년 기준 인구는 5,380만 명 정도이며, 전체의 약 7할을 차지하는 미얀마족을 중심으로 샨(Shan)족, 꺼인(Kayin)족, 라카인(Rakhine)족, 몬(Mon)족 등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얀마는 15세기부터 유럽의 침략을 받기 시작했으며, 17세기 중엽까지 프랑스, 독일, 영국의 식민지로 존재했다. 그러던 중 1818년 영국이 미얀마 전 국토를 점령 및 합병하여 인도의 한 주로 편입시켰다. 이어서 영국은 인도인의 미얀마 이주 정책을 통해 미얀마인의 정체성을 상실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미얀마인들은 독립투쟁을 계속했고, 특히 아웅산(Aung San)이 시위를 주동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미얀마의 독립운동가 청년들을 모아 중국의 해남도에서 군사교련을 실시하고, 미얀마 30명으로 구성된 버마 독립 의용군(BIA)를 조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연합군이 중국에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통로인 '버마 로드'를 차단하여 중국의 생명줄을 끊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1941년 12월 14일 버마를 점령하고, 이듬해인 1942년 3월 8에는 수도 양곤을 점령했다.

양곤에서 중국 쿤밍으로 통하는 버마 로드를 일본에 빼앗긴 연합국은 새로운 수송로를 개설하고자 했고, 인도의 동북부 임팔에 가까운 비행기지를 통해 중국에 물자를 수송했다. 또한 연합군은 인도 아샘주와 중국 운남성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1943년 10월 인도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진공했고, 중국군도 살르윈 강을 넘어 미얀마로 진공했다. 이에 1943년 8월 22일 대본영은 미얀마 국경을 넘어 인도의 요충지인 임팔 공격 명령을 내렸고, 1944년 3월 임팔작전이 개시되었다.

조선인 강제 동원 실태

임팔작전이 마무리되어 가던 1944년 7월경 조선인 병사들이 버마 지역으로 끌려왔다. 조선인은 1944년 1월 조선에서 임시로 편성된 제49사단에 속해 있었으며, 그 수는 5,000여 명에 달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연합국 측으로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 파견된 제49사단의 조선인 병사들은 영국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지만, 전력에서의 열세와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상당한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의 계속되는 패배에 따라 제49사단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는데, 1945년 2월 영국군과 이라와디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3월 말 메이크틸라에서도 대회전을 벌였다. 특히 이 메이크틸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제49사단은 전체 병력의 3분의 2가량을 잃었다. 메이크틸라 전투 후 생존한 조선인 병사들은 각지로 흩어져 활동하다가 1945년 7월의 시탕강 굽이 전투에도 참여했고, 샨(Shan)고원 서록에서 해방을 맞았다.

위의 보고서에서는 버마 지역으로 끌려온 조선인 병사 중 사망한 인원은 2,700명에 달했으며, 전투에서 사망한 인원은 전체의 34%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나머지 인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 말라리아, 콜레라, 대장염 등 풍토병에 의한 병사와 굶주림에 의한 아사로 희생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머지 2,300명은 연합군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후에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진

버마 군부대 위치 area_map_89

※ 출처: Google Map을 바탕으로 필자 작성

참고문헌

  • 김도형, 『태평양전쟁기 격전지와 조선인 희생자에 관한 연구 –버마(미얀마)지역을 중심으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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