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오에야마 광산
개요
제목 | 오에야마 광산 | 국가 / 지역 | 일본 / 교토부 요사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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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소 | 교토부 요사군 요사노초 타키 일대 (京都府与謝郡与謝野町滝) | |||
강제동원 시설 | 광산 | 피해 유형 | 노무자 | |
관련 기업·기관 |
과거 | 오에야마 니켈 광업 주식회사 | 동원 방식 | 모집 |
현재 | 일본야금공업주식회사 | 피해 인원(추정) | 약 383명 |
설명
역사
오에야마 광산(大江山鉱山)은 교토부(京都府) 요사군(与謝郡) 요사노초(与謝野町) 부근에 있는 오에야마에 위치한 광산이었다.
1934년에 오에야마가 규산 니켈광(珪酸Nicke鉱) 산지로 알려지게 되자 당시 일본화약공업(日本火薬工業)이 같은 해 9월에 오에야마 니켈 광업 주식회사(大江山ニッケル鉱業株式会社)를 자회사로 설립하고 오에야마의 니켈광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오에야마 니켈 광업 주식회사는 1940년에 육군의 요청으로 니켈 전용 제련 시설과 제련소를 만들어 니켈 광산 채굴과 제련 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했고, 전쟁의 격화로 일본 내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전쟁 포로들을 오에야마 광산에 동원하기도 했다. 일본화약공업은 회사명을 일본야금공업주식회사(日本冶金工業株式会社)로 변경하는 한편 오에야마 니켈 광업 주식회사를 합병하여 니켈 광산 채굴과 제련 사업을 이어나갔다.
일본 패전 이후 오에야마 광산은 폐광되었고, 관련 시설들은 오에야마 제련소(大江山製錬所)로 활용되고 있다.
조선인 강제 동원 실태
교토 지역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수와 강제동원 실태 등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문헌 자료를 통해 다소나마 추정할 수 있는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4,873명이었으며, 그중 1945년 6월 1일 현재 남아 있는 조선인들은 4,192명이었다. 그중 오에야마(大江山) 광산에는 383명의 조선인이 동원되었고, 1945년 6월 1일 현재 81명의 조선인이 남아 있었다.
한편 오에야마 광산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시기 당시 일본군의 포로가 된 연합군 군인들과 중국인들 강제동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오에야마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영국인 포로의 수기가 1985년에 영국에서 발간되었고, 2009년에는 『증오와 화해의 오에야마-한 영국인 포로병의 수기』(『憎悪と和解の大江山-あるイギリス兵捕虜の手記』)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에는 포로들에 대한 강제노동과 폭력, 배고픔 등 포로들의 비참한 수용소 생활이 드러나 있었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 납치되어 오에야마 광산으로 동원된 중국인들의 모습이 2006년에 출간된 『오에야마 광산-중국인 납치·강제노동의 진실』(『大江山鉱山―中国人拉致・強制労働の真実』)이라는 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실태에 대해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강제동원된 영국인 포로와 중국인들의 생활에서 조선인들의 강제동원 실태를 다소나마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출처: https://ja.wikipedia.org/wiki/大江山鉱山#/media/ファイル:Mount_Oe_Nickel_Mine.JPG
※ 출처: Google Map
참고문헌
- 伊藤正,「大江山製造所におけるフエロニッケル製錬」, 日本鉱業会,『日本鉱業会誌』84巻 963号, 1968.
- 京都府,「新居前知事·三好知事事務引継演説甚」, 1945年 6月.
- 在日朝鮮人史硏究會, 『在日朝鮮人史硏究』 1980年6月號資料編.
- 日本冶金工業ホームページ https://www.nyk.co.jp/
- 福知山市ホームページ https://www.city.fukuchiyama.lg.jp/onihaku/kouzan/sonota/sonotakouza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