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도쿄 아사이토 주식회사
개요
제목 | 도쿄 아사이토 주식회사 | 국가 / 지역 | 일본 / 시즈오카현 누마즈시 | |
---|---|---|---|---|
현주소 | 시즈오카현 누마즈시 오오카 1330-1 일대 (静岡県沼津市大岡1330-1 일대) | |||
강제동원 시설 | 방적 공장 | 피해 유형 | 노무자 | |
관련 기업·기관 |
과거 | 도쿄 아사이토 | 동원 방식 | 모집 |
현재 | 테이진 주식회사 | 피해 인원(추정) | 약 300명 |
설명
역사
도쿄 아사이토(東京麻絲)는 마포(麻布, 삼에서 뽑은 실로 만든 천)를 생산하던 방직 회사로 시즈오카현(靜岡縣) 누마즈시(沼津市)에 있었다. 1916년 2월에 세워졌고, 1933년경에 군수 경기가 호황을 맞이하여 아이치현(愛知縣)과 중국 만주 지역에 공장을 증설하기도 했다. 전쟁 물자 생산을 강화하기 위해 1943년 10월에 제정된 군수회사법(軍需會社法)을 통해 1944년 2월에 군수 공장으로 지정되었고, 도쿄 아사이토에서 생산된 마포는 텐트, 배낭, 낙하산, 비행기 날개용 천 등 군사용으로 사용되었다.
1945년 7월 17일에 미군의 누마즈 공습으로 인해 공장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패전 후인 1946년에 조업에 재개했으나 1954년부터 회사 경영이 악화하여 1991년 10월에 ㈜ 데이진(帝人)에 합병되었다. 현재 누마즈 공장 자리에는 쇼핑몰과 스포츠 센터가 세워져 있다.
조선인 강제 동원 실태
도쿄 아사이토는 조선 여공들을 따로 모집하거나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모집했다. 도쿄 아사이토는 1910년대부터 개별 모집으로 조선인 여공 모집하다가 1941년부터는 집단 모집을 진행했다. 1941년에 동원된 조선 여성은 13세~20세로 밀양, 양산, 통영, 김해 등 경상남도 지역에서 동원되었으며, 2년을 근무 기간으로 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1944년 4월부터 누마즈 공장에 동원되었는데, 부산, 진해, 창원, 동래, 진주 등 경상남도 지역에서 동원되었다. ‘후생성 조사 보고서’(厚生省調査報告書, 1946년)의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 결과’(시즈오카현 편)에 따르면, 도쿄 아사이토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수는 1939년에 45명, 1940년에 50명, 1941년에 174명, 1942년에 200명, 1944년에 302명이었다. 누마즈 공장이 공습당한 후 후지(富士) 방적 오야마 공장으로 334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이동했는데, 이는 기존의 조선인 여공과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자들이 포함된 수치이다. 구체적인 명단이 없기 때문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인원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고, 1944년의 할당 인원 300명에 대해 302명을 고용했다는 것에 따라 300명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동원되었다고 추정되며, 정확한 인원은 알 수 없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정방(精紡), 정련(精練), 조방(粗紡), 방적 기계 청소 작업 등에 동원되었고 별도의 훈련 기간 없이 작업장의 경력자들에게 직접 교육받으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어리고 키가 작은 여성들은 실을 뽑아내는 정방(精紡) 작업에, 체격이 큰 사람은 삼을 씻는 작업인 정련(精練) 작업에 주로 배치되었고, 가는 섬유에서 굵은 실을 만드는 조방(粗紡) 작업을 몇 개월 한 후에 정방 작업에 배치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8시부터 18시까지의 주간반과 18시부터 새벽 3~4시까지의 야간반으로 나뉘어 2교대로 노동했지만, 임금을 모두 받지 못했다. 방직 작업을 하다가 피부가 찢기거나 타박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2층 건물로 된 기숙사에서 생활했으며 외출 제한이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조선인 여공 3~4명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5명 또는 조선인 여공 1명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6명 정도가 한 방에 배치되었다. 식사는 깨 묵밥, 당근 밥, 된장국 등에 제공되었으나 그 양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향에서 보내주는 쌀이나 미숫가루를 먹기도 했다.
한편 누마즈 공장이 1945년 7월에 미군의 공습을 받으면서 대부분 파괴되어 공장을 가동할 수 없게 되자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같은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슌토군(駿東郡) 오야마(小山)의 후지 방적 오야마 공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오야마 공장은 구두끈, 군복 등을 생산하는 면방직 공장이었고 피해자들은 정련, 연사(練絲) 작업을 담당했다. 약 한 달 후 일본이 패전하면서 당시 오야마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를 포함한 254명의 조선인 여성은 9월 30일에 귀국했다.
사진
※ 출처: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그 경험과 기억』, p.82.
※ 출처: Google Map
- 중앙의 도로를 끼고 좌측에는 마트, 우측에는 스포츠 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 출처: Google Map.
참고문헌
- 김미현,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방식에 의한 노무동원에 관한 조사』,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8.
-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그 경험과 기억』,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