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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슈세이칸
개요
제목 | 구 슈세이칸 (메이지 산업유산 시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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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 | 시설 유형 | 공업 시설 |
현주소 |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 요시노초 9700-1 (鹿児島県 鹿児島市 吉野町 9700-1) |
설명
구 슈세이칸(旧集成館)은 에도시대 말기 사쓰마번(薩摩藩)의 번주였던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가 1851년부터 서양 열강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서양식 공장 단지를 조성한 산업 시설이다. 슈세이칸 사업은 일본이 서구 열강의 침략적 위협에 직면하자 군사력과 산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된 대규모 산업화 프로젝트로, 특히 철제 대포 주조와 서양식 함선 건조를 비롯한 여러 산업 활동을 통해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노력은 일본이 에도시대 말기부터 서양 기술을 받아들여 근대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구 슈세이칸은 2015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철강, 조선 및 석탄 산업’(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製鉄·製鋼, 造船, 石炭産業)에 포함된 ‘구역 2: 가고시마’의 주요 구성 요소다. 이 시설은 단순히 서구 열강의 기술을 수용한 성과에 그치지 않으며,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위한 자주적 기술 개발과 이를 통한 제국주의적 군사 기반 확립의 과정을 상징한다.
우선 구 슈세이칸 반사로 터(旧集成館反射炉跡)는 사쓰마번이 서양식 군사 기술을 받아들여 철제 대포를 주조하기 위해 네덜란드 기술서를 참고해 제작한 시설로, 슈세이칸 사업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 당시 일본은 제1차 아편전쟁(1840~1842) 이후 서양 열강의 강력한 군사력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특히 철제 대포와 군함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1851년 번주에 취임한 후, 서양식 공장 단지 건설을 통해 대형 철제 대포 주조와 군함 건조를 목표로 한 슈세이칸 사업을 추진했다.
1856년, 구 슈세이칸 반사로는 서양식 주조 기술을 도입해 사쓰마번에서 처음으로 대형 철제 대포를 주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일본이 서양의 군사 기술을 수용하고 이를 자체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중요한 시도로, 일본의 근대 군사력 형성에 기여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리고 구 슈세이칸 기계공장(旧集成館機械工場)은 1858년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사망과 1863년 사쓰마-영국 전쟁 이후 슈세이칸 사업이 축소되었다가 재흥된 과정에서 건설된 시설이다. 사쓰마번은 영국과의 전쟁에서 서양의 군사적 우위를 경험하며 서양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로 방침을 전환했다. 그 결과 1864년부터 금속 가공, 선박 수리, 부품 가공을 목적으로 기계공장 건설이 시작되었고, 이듬해인 1865년에 완성되었다.
구 슈세이칸 기계공장에서는 서양에서 수입한 기계들이 도입되어 가공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일본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시설은 육군제조소와 가고시마 조선소로 이용되었고, 나중에는 민간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현재는 시마즈 가문의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는 쇼코 슈세이칸 박물관(尚古集成館博物館)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음으로 구 가고시마 방직소 기사관(旧鹿児島紡織所技師館)은 1867년 일본 최초의 서양식 방직 공장인 가고시마 방직소에서 기술 지도를 맡았던 영국인 기사들의 숙소로 건설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목조 2층 구조로, 외관은 서양식이지만 내부 구조와 골조는 일본식으로 설계된 점에서 서양과 일본의 건축 양식이 절충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일본이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국의 전통적인 건축 기술과 문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구 가고시마 방직소 기사관은 서양식 건축이 일본에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현재 건물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부지는 사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구 슈세이칸은 일본이 에도시대 말기 서양 열강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서양의 산업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자국 내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 시도한 최초의 대규모 산업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특히 철제 대포 주조, 서양식 군함 건조, 방직, 유리 제조 등 다양한 산업 활동을 통해 일본의 부국강병을 추구한 이 프로젝트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구 슈세이칸의 시설은 일본이 서양의 기술을 수용하고 이를 자국의 상황에 맞게 적응시키는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기술적 발전을 상징하며,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된 장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산업혁명과 군사력 증강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구 슈세이칸은 일본의 근대화와 군사력 증강의 상징적 유산 중 하나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확장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일본은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근대화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과 중국에 대한 군사적·정치적 압박을 강화했다. 구 슈세이칸에서 진행된 서양식 대포와 군함 건조 기술은 일본이 이후 한반도를 침략하고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사쓰마번 출신 인물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대외 팽창을 주도했으며, 한일병합과 같은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구 슈세이칸과 같은 근대화 유산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정책을 추진하게 된 기술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진
※ 출처: 가고시마현 관광 사이트
※ 출처: 가고시마현 관광 사이트
※ 출처: 가고시마현 관광 사이트
※ 출처: 가고시마현 관광 사이트
※ 출처: 가고시마현 관광 사이트
참고문헌
- 鹿児島県観光サイト https://www.kagoshima-kankou.com/
- 九州の世界遺産 https://www.welcomekyushu.jp/world_heritage/spots/industrial
- 尚古集成館博物館 https://www.shuseikan.jp/
- 文化遺産オンライン https://bunka.nii.ac.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