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다카시마 탄광
개요
제목 | 다카시마 탄광 (메이지 산업유산 시설) | 국가 / 지역 | 일본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 |
---|---|---|---|---|
현주소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다카시마초 (長崎県 長崎市 高島町) | |||
강제동원 시설 | 탄광 | 피해 유형 | 노무자 | |
관련 기업·기관 |
과거 | 미쓰비시 광업 주식회사 (三菱鉱業株式会社) | 동원 방식 | 모집, 징용 |
현재 | 미쓰비시 머티리얼 (三菱マテリアル) | 피해 인원(추정) | 약 4,000명 (하시마 탄광 포함) |
설명
역사
다카시마 탄광(高島炭鉱)은 일본 국내에서 근대적인 석탄 채굴 방법을 최초로 도입한 일본 근대 석탄산업의 원점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나가사키현(長崎県) 나가사키시(長崎市)의 다카시마(高島)섬 일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국내에 군함도(軍艦島)로 널리 알려진 하시마 탄광(端島炭鉱)과 마찬가지로 섬 주변의 바다 밑에 만들어진 해저 탄광이다.
다카시마에서는 에도 시대(江戸時代) 때부터 채굴이 시작되었으며, 1874년부터 메이지 정부가 운영하다가 1881년에 미쓰비시(三菱)가 불하받아 본격적으로 석탄을 채굴했다. 미쓰비시는 다카시마 탄광 사무소를 설치하고 1884년에는 후타고시마(二子島) 탄광과 나카노지마(中ノ島) 탄광을, 1890년에는 하시마 탄광을 인수하면서 해당 지역의 해저 탄광들을 운영했다. 미쓰비시는 1893년에는 미쓰비시 합자회사를 설립하고 다카시마 광업소가 다카시마 탄광과 하시마 탄광을 관리하게 했다.
다카시마 탄광은 1944년부터 개시된 미군의 일본 본토 공습 등으로 피해를 입어 1946년 1월까지 채굴을 중지했다. 일본의 패전 이후 미쓰비시 광업(三菱鉱業, 1918년 설립)이 다카시마 탄광을 운영하면서 1966년에 127만 톤을 채굴하는 등 196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후 주요 에너지원이 석유로 바뀌면서 석탄 수요가 감소하여 1986년에 폐광되었다.
다카시마에는 다카시마 탄광에서의 노역 중에 사망한 조선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인 공양탑이 있다. 공양탑에는 다카시마 탄광과 하시마 탄광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유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위패가 사라져 사망자의 인적 사항을 알 수가 없으며, 공양탑으로 가는 길은 2016년 1월에 폐쇄되었다. 그리고 다카시마 탄광은 하시마 탄광과 함께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산업’(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製鉄·製鋼, 造船, 石炭産業)을 구성하는 유적에 포함되면서 2015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 관련 유적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 ‘강제노역’ 또는 ‘강제징용’을 설명할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해당 설명을 싣지 않고 있다.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
다카시마 탄광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실태는 하시마 탄광 참조.
사진
※ 출처: Google Map
※ 출처: Google Map
※ 출처: Google Map
※ 출처: Google Map
※ 출처: 국가기록원, 『기억해야 할 사람들-강제동원, 김광렬 기록으로 말하다』, 2020, p.123.
참고문헌
- 국가기록원,『기억해야 할 사람들-강제동원, 김광렬 기록으로 말하다』, 2020.
- 오일환,『일본 근대 산업시설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실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2021.
- 연합뉴스
- 九州の世界遺産ホームページ https://www.welcomekyushu.jp/world_heritage/
- 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製鉄·製鋼, 造船, 石炭産業ホームページ http://www.japansmeijiindustrialrevolu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