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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

개요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 개요:제목, 소재지, 시설 유형, 현주소에 대한 표
제목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 (메이지 산업유산 시설)
소재지 야마구치현 하기시 시설 유형 제철 시설
현주소 야마구치현 하기시 시부키 오이타 257-1 (山口県 萩市 紫福 大板 257-1)

설명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大板山たたら製鉄遺跡)는 일본 에도시대에 조슈번(長州藩)에서 운영되었던 재래식 제철소의 흔적이다. 이 제철소는 일본 전통의 ‘다타라 제철’ 기술을 이용해 철을 생산하던 곳으로, 다타라 제철법은 철광석 대신 사철(砂鉄)을 원료로 하고, 목탄을 연료로 하여 풀무(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를 사용해 철을 제련하는 방식이다. 이 제철소는 조슈번이 근대화를 추진하기 이전 전통적인 방식으로 철을 생산하며, 당시 일본의 철 생산 기술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다.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는 2015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철강, 조선 및 석탄 산업’(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製鉄·製鋼, 造船, 石炭産業)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이 시설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일본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지배계층의 주도로 이루어진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유산으로, 단순히 서구 열강의 위협에 자구적으로 대응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는 조슈번이 서양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철을 생산하던 시설이었다. 이 제철소가 위치한 장소는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목탄 생산에 필요한 풍부한 산림 자원을 쉽게 확보하기 위한 이유였다. 다타라 제철소에서 사용되는 목탄은 철을 제련하는 데 필수적인 연료였으며, 제철소의 가동에는 풍부한 자연 자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는 항상 가동된 것이 아니라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세 차례에 걸쳐 운영되었다. 첫 번째 가동 시기는 18세기 중엽인 1751년에서 1764년 사이였으며, 두 번째 가동은 19세기 초인 1812년에서 1822년까지였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가동 시기는 1855년에서 1860년대 초반까지로, 이는 일본이 서양식 군함 건조를 본격적으로 시도하던 시기와 겹친다. 제철의 원료가 되는 사철은 주로 시마네현(島根県)에서 선박으로 운송되었으며, 이를 이용해 철을 제련했다.

1981년, 야마구치현 교육위원회(山口県教育委員会)에 의해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가 발굴되었고, 1988년에는 현지정사적(県指定史跡)으로 지정되었다. 발굴을 통해 다타라 제철소의 다양한 시설과 작업 방식이 밝혀졌으며, 이를 통해 당시 조슈번이 서양식 기술 도입 이전에 시행한 전통적인 철 생산 방식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의 중심 시설은 다카도노(高殿)로, 이곳에서 철을 제련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다카도노에는 철을 제련하기 위한 용광로와 풀무, 재료를 보관하는 창고, 직원 휴게소 등이 위치해 있었다. 다카도노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업 공정이 이루어졌으며, 사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척장(砂鉄掛鳥洗場), 완성된 철괴를 식히기 위한 연못(鉄池), 철괴로 공구를 제작하는 대장간(大鍛冶場), 사무소(元小屋), 직원 숙소(下小屋) 등이 주변에 위치했다. 이러한 시설들은 다타라 제철소의 다양한 공정을 통해 철을 생산하던 당시의 작업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서 생산된 철은 조슈번의 다양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에비스가하나 조선소에서 건조된 조슈번 최초의 서양식 군함인 헤이신마루(丙辰丸)의 철제 못 등으로 사용되었다.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에서 생산된 철은 서양식 군함 건조에 필요한 재료로 쓰였으며, 이는 일본이 근대화의 초입 단계에서 전통적인 제철 기술을 이용해 서양식 군함 건조를 시도한 사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는 일본 전통 제철 기술인 다타라 제철법을 이용해 철을 생산하던 장소로, 근대화 이전 일본의 철 생산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다. 특히 서양식 기술 도입 이전의 일본 전통 기술이 어떻게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활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일본의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가 이러한 전통적 기술적 기반 위에서 실현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제철소에서 이루어진 철 생산은 서양의 기술을 수용하기 전에 일본 전통 기술을 통해 자국 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본격적인 서양식 제철 기술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과 근대 기술이 혼재하던 시기의 산업적 전환점을 보여주는 시설이다.

그리고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는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식 기술을 도입해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제국주의적 팽창을 추구하며 조선 침략과 한일병합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근대화와 군사력 증강은 단순히 자구적 노력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지배계층이 주도한 상층부의 통제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이후 조선에서도 강제동원과 같은 비인도적 행위로 이어졌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군사력과 산업 역량을 키우기 위해 시도한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이후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침략 정책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에서 이루어진 전통적 철 생산 기술은 일본이 서양 기술을 도입하기 이전에도 자체적인 군사력과 산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보여준다. 이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급속한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조선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진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 위치 area_map_33

※ 출처: Google Map을 바탕으로 필자 작성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터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사철세척장(砂鉄掛鳥洗場) 사철세척장(砂鉄掛鳥洗場)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용광로 용광로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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