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
개요
제목 |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 (메이지 산업유산 시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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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야마구치현 하기시 | 시설 유형 | 조선 시설 |
현주소 | 야마구치현 하기시 진토 5159-14 (山口県 萩市 椿東 5159-14) |
설명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恵美須ヶ鼻造船所跡)는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県) 하기시에 위치한 에도시대 조슈번(長州藩)이 서양식 군함을 건조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소의 흔적이다. 이 조선소는 1856년, 당시 서양 열강의 위협에 대비해 조슈번이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노력 일환으로 건설된 시설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5년,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는 세계유산(UNESCO)에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철강, 조선 및 석탄 산업’(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製鉄·製鋼, 造船, 石炭産業)에 포함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에도시대에 일본을 통치하던 막부(幕府)는 다이묘(大名)가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는 각 번(藩)이 대형 선박을 보유하게 되면 군사력을 증강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일본에 개국을 요구하며 위협을 가한 이래, 막부는 국방상의 필요성에 따라 각 번에서의 대형 선박 건조를 허가하게 되었다. 1854년에는 막부가 조슈번에 군함 건조를 명령하였고, 조슈번 내부에서도 서양식 군함 건조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1855년,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가쓰라 고고로[桂小五郎])가 서양식 군함 건조에 대한 의견을 조슈번에 제출하면서, 조선소 설립의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이에 따라 1856년, 조슈번은 서양식 군함을 건조하기 위한 조선소를 에비스가하나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에비스가하나 조선소가 건설되기 전, 러시아 해군 장교 예프피미 바실리예비치 푸차틴(Yevfimy Vasilyevich Putyatin)이 일본에 정박한 군함 디아나 호(Диа́на)가 쓰나미와 강풍으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푸차틴은 막부의 허가를 받아 이즈반도(伊豆半島)의 헤다무라(戸田村)에서 새로운 함선, 헤다 호를 건조했다. 이때 조슈번은 푸차틴의 조선 기술에 주목하고, 기술자들을 파견해 러시아식 조선 기술을 배웠다.
1856년, 에비스가하나 조선소에서 처음으로 러시아식 조선 기술을 도입하여 헤이신마루(丙辰丸)를 진수했다. 헤이신 호는 길이 25미터에 달하는 서양식 목조 범선으로, 조슈번이 처음으로 서양식 군함을 건조한 사례다. 이후 1860년, 에비스가하나 조선소는 네덜란드식 조선 기술을 도입하여 두 번째 서양식 목조 범선인 고신마루(庚申丸)를 진수했다. 고신 호는 길이 43미터로, 일본에서 건조된 서양식 군함 중 비교적 큰 규모의 선박이었다.
에비스가하나 조선소는 러시아식과 네덜란드식 두 종류의 서양 조선 기술을 도입한 독특한 조선소로, 당시 일본이 서양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국방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노력을 잘 보여준다. 다만, 조선소 건설과 서양식 군함 건조는 단순한 자구적 대응이 아닌, 상층부의 강력한 국가 통제 아래 이루어진 ‘위로부터의 근대화’ 시도로서, 일본의 근대화가 지배계층 주도로 진행되었음을 상징한다.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는 일본 에도시대 말기 서양식 범선 조선소 중에서도 유일하게 유구(遺構)가 남아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두 종류의 서양식 조선 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은 근대적 군사력 증강을 시도했다. 조선소 터에는 당시 만들어진 석조 방파제가 남아 있으며, 이는 일본의 조선 기술이 서양의 영향을 받아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일본은 서양 열강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서양 기술을 받아들였으며, 에비스가하나 조선소는 이러한 기술적 도입과 실험의 현장이었다. 이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식 산업화와 군사력 강화에 나선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한편, 에비스가하나 조선소는 일본이 서양 기술을 도입하여 군사적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였다. 이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와 군사력 증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고, 이는 조선 침략과 한일병합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적 팽창의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군사력 증강 과정은 식민지 지배로 이어졌으며, 조선에서도 강제동원과 같은 비인도적 행위로 나타났다. 조선 침략의 주요 인물들 중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같은 조슈번 출신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메이지 신정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에비스가하나 조선소에서의 군함 건조와 서양 기술 도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그 결과가 한일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본이 서양 기술을 바탕으로 군사적 역량을 키워 주변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추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조선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사진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