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하기 성하도시
개요
제목 | 하기 성하도시 (메이지 산업유산 시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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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야마구치현 하기시 | 시설 유형 | 거주 시설 |
현주소 | 야마구치현 하기시 호리우치 (山口県 萩市 堀内) |
설명
하기 성하도시(萩城下町)는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県)에 위치한 성곽 도시로, 에도시대에 조슈번(長州藩)을 통치했던 모리(毛利) 가문과 관련된 중요한 장소이다. 조슈번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시기 중심적인 역할을 한 번 중 하나로, 사쓰마번(薩摩藩), 도사번(土佐藩) 등과 함께 에도막부(江戸幕府)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신정부 수립에 기여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같은 인물들이 조슈번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과 이후 일본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들로 잘 알려져 있다.
하기 성하도시는 2015년, 세계유산(UNESCO)으로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철강, 조선 및 석탄 산업’(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製鉄·製鋼, 造船, 石炭産業)의 일부로 포함되었으며 ‘구역 1: 하기’에 속해 있다. 이곳은 조슈번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그 당시에 형성된 도시 구조와 건축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일본 에도시대의 삶과 문화를 보여준다. 하기 성하도시는 성지(城跡, 하기성 터), 구 상급무가지(旧上級武家地, 상급 무사 거주지), 구 조닌지(旧町人地, 상공업자 거주지)의 세 가지 주요 구역으로 나뉜다.
먼저 성지(城跡)는 하기 성(萩城)의 혼마루(本丸, 성의 중심 구역)와 니노마루(二の丸, 혼마루 외곽을 둘러싼 구역)가 위치했던 곳이다. 하기 성은 1604년,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세운 성으로, 조슈번 번주들의 주요 생활 및 정치 활동의 중심지였다. 혼마루에는 과거 14.4미터 높이의 천수각(天守閣)이 존재했으나, 1874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폐성이 명령되면서 성의 망루와 천수각이 해체되었다. 현재는 석벽과 해자의 일부만 남아 있으며, 그 터는 시즈키 공원(指月公園)으로 정비되었다.
이 성지는 일본 지정사적(指定史跡)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조슈번의 번주를 기리는 시즈키야마 신사(志都岐山神社)가 1874년에 창건되었다. 공원 내에는 나시바가 다실(梨羽家茶室), 반세이바시(万歳橋), 도엔(東園)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정원과 건물들도 남아 있어 당시 번주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상급무가지(上級武家地)는 상급 가신들이 거주했던 구역으로, 하기성의 방어를 담당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상급 가신들이 성 가까이 거주하는 것은 당시 사회적 신분 구조를 반영하고 있으며, 신분이 높은 가신일수록 번주의 성에 가까이 거주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번의 정치적 중심지로서, 정책이 형성되는 중요한 장소였으며, 조슈번을 이끌던 상급 가신들이 거주했던 중요한 건물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특히 구치바 가문의 주택(口羽家住宅)은 당시 상급 가신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전시에 대비해 설계된 방어적인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호리우치가이마가리(堀内鍵曲)와 같은 전통적인 거리와 집들은 당시 상류층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며, 하기 박물관(萩博物館)을 통해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구역은 1976년 일본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重要伝統的建造物群保存地区)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그리고 구 조닌지(旧町人地)는 상급무가지의 동쪽에 위치하며, 상공업자(町人)들과 중하급 가신단이 거주했던 구역이다. 이 구역은 경제적 중심지로 기능했으며, 조슈번의 어용 상인이었던 기쿠야 가문의 주택(菊屋家住宅)을 비롯한 역사적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특히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가쓰라 고고로[桂小五郎])가 살았던 주택도 남아 있어, 메이지 유신을 이끈 인물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조닌지 구역은 당대 조슈번의 상업과 경제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하기 성하도시는 한국과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조슈번이 주도한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이는 이후 한일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근대화는 단순한 내재적 발전이 아니라 지배층의 강력한 국가 통제 하에 진행된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며, 이러한 과정은 식민지 지배에서도 강제동원과 같은 비인도적 행위로 이어졌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조선 침략과 한일병합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조슈번 출신 인물들이 일본의 정치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만큼, 조슈번과 관련된 지역은 일본의 대외 정책과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같은 조슈번 출신 인물은 한일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이토는 한일병합 과정에서 조선 통감부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며, 조선 침략의 길을 열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인물들이 배출된 조슈번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한일 양국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데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사진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
※ 출처: 하기시 관광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