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강제동원
도요스 탄광
개요
제목 | 도요스 탄광 | 국가 / 지역 | 일본 / 후쿠오카현 다가와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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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소 | 후쿠오카현 다가와군 가와사키마치 (福岡県 田川郡 川崎町) | |||
강제동원 시설 | 탄광 | 피해 유형 | 노무자 | |
관련 기업·기관 |
과거 | 가미타카 광업 (上尊鉱業) | 동원 방식 | 미상 |
현재 | 없음 | 피해 인원(추정) | 약 1,500명 |
설명
역사
도요스 탄광(豊州炭鉱)은 1890년경 일본 후쿠오카현 다가와군 가와사키마치에서 처음 개발된 석탄 채굴지로, 일본의 석탄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탄광 중 하나였다. 초기에는 ‘이케지리 탄광(池尻炭鉱)’으로 불렸으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거쳤다. 미야자키 도요스 탄광(宮崎豊州炭鉱), 후쿠다 도요스 탄광(福田豊州炭鉱) 등으로 불리다가 최종적으로 우에다 손노스케(上田尊之助)가 이 탄광을 경영하게 되었다. 도요스 탄광은 최전성기에는 약 8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으며, 월간 약 1만 2,000톤의 석탄을 생산하는 대규모 탄광이었다. 생산된 석탄은 주로 일본 국철과 규슈 전력에 공급되며 일본 내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도요스 탄광은 1960년 9월 20일에 발생한 대규모 침수 사고로 그 역사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 사고는 주간지(中願寺) 강의 강바닥이 붕괴되면서 강물이 갱도로 유입되어 발생하였으며, 당시 작업 중이던 220명의 광부 중 67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사고는 새벽에 발생했으며, 갱도 내 작업자들에게 긴급 대피 명령이 내려졌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연락이 두절되어 구조 작업이 지연되었다. 사고 직후 구조 작업이 시도되었으나, 갱도 붕괴와 암반의 약화로 인해 추가적인 구조 작업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 사고는 전후 일본에서 발생한 가장 큰 탄광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사고의 원인은 오래된 채굴 갱도(古洞)로 인해 강물이 유입된 것이었다. 해당 갱도는 이미 오래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채굴 시점이나 구조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사고 발생 이전에도 탄광 주변에서는 땅이 붕괴되거나 주택이 무너지는 등 이상 현상이 여러 차례 발생했으나, 탄광 경영진은 이를 무시하고 운영을 지속해왔다. 이러한 경고 신호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탄광 운영이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안전 관리의 실패가 지적되고 있다.
이 사고 이후, 도요스 탄광은 1960년 9월에 공식적으로 폐광되었다. 67명의 실종자 시신을 모두 수습하지 못했으며, 일본 정부는 추가적인 구조 작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재 도요스 탄광의 유적 중 일부는 주간지 강 주변에 남아 있으며, 일부 개인 소유지 내에도 탄광 입구와 관련된 흔적들이 남아 있다.
도요스 탄광의 역사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이 대형 사고는 일본 석탄 산업이 직면한 안전 문제를 다시 한번 강조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을 통해 탄광 작업의 위험성과 관리 소홀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가 널리 알려졌으며, 이후 일본의 석탄 산업 전반에 걸쳐 안전 대책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조선인 강제 동원 실태
도요스 탄광도 일제 강점기 동안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한 현장 중 하나였다. 이 탄광에는 후루나가갱(古長坑)과 우에다갱(上田坑)이라는 주요 갱이 있었으며, 두 갱으로 강제로 연행된 1,5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각각 교와료(協和寮)와 신와료(親和寮), 닛신료(日新寮)와 세이와료(清和寮) 등 기숙사에 수용되었다. 이러한 기숙사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운영되었으며,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인 노동자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며 생활해야 했다.
도요스 탄광에는 특별훈련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도망을 시도하거나 저항하는 조선인들을 군대식으로 훈련시키는 시설이었다. 훈련소에서는 20일간의 훈련을 통해 조선인들에게 ‘야마토혼(大和魂)’을 주입하려 했으며, 군사적 훈련을 통해 그들의 노동력을 통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실제로는 훈련 기간이 40일에서 100일로 연장되는 경우도 빈번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엄격한 통제와 억압 속에서 노동을 강요받았다.
도요스 탄광에서 조선인 강제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가혹했다. 우에다갱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던 조선인 노동자 안용한(安龍漢, 작고)씨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전해주는 증언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조선인 강제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2000년 12월에 설립된 무궁화당(無窮花堂) 설립에 기여한 배동록(裵東録)씨가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증언자들의 활동을 통해 도요스 탄광에서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도요스 탄광에서 벌어진 강제 동원과 노동 착취는 일본의 전쟁 수행 과정에서 나타난 조선인 노동자들의 비극적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오늘날 이러한 역사는 증언자들의 활동과 역사적 기록을 통해 조명되고 있으며,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은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어야 할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사진
※ 출처: 규슈대학 부속도서관
※ 출처: 이즈카시/ 이즈카 디지털 뮤지엄
※ 출처: 이즈카시/ 이즈카 디지털 뮤지엄
참고문헌
- 竹内康人,『調査·朝鮮人強制労働 ① 炭鉱編』, 社会評論社, 2013.
- 肥後義弘,「第24回 週刊金曜日ルポルタージュ大賞 佳作入選作 沈黙の坑口」,『週刊金曜日』21(49), 株式会社金曜日, 2013.
- 飯塚観光協会ホームページ https://kankou-iizuka.jp/topic_15/
- 飯塚市/飯塚市デジタルミュージアムホームページ https://adeac.jp/iizuka-city/top/
- 九州大学附属図書館 https://www.lib.kyushu-u.ac.jp/ja/exhibition/co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