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일제강제동원 피해 진상조사 학술연구용역 최종보고서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책임연구원 김경남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강제동원의 개념에서 빠져있던 학생동원의 적나라한 실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자지원재단이 최근 대법원 판결 승소자 지원(‘제3자변제’)과 우키시
마호(浮島丸) 명부 분석 기관으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재단의 한시적
인 업무입니다.
재단의 고유업무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보듬는 일이고, 또 하나는 그 아픔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후세에
전하는 일입니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업이 전국합동위령제, 국내외 추도순례, 추모조형물
건립 및 관리, 유해조사, 위패관 운영 등이라면, 후자의 대표적인 사업이 국내외 학술대회와
연구활동, 진상조사, 구술채록사업 등입니다.
재단은 후자의 사업을 위해 2024년에도 4건의 학술연구용역을 진행했습니다. 연구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일제 강제동원 관련 유적 답사서 편찬(충청남북도 지역)
▶일제의 북한지역 병참기지화 정책과 한반도 내 동원실태
▶전시체제기 ‘다이쇼광업(大正鉱業)’의 조선인 강제동원과 임금 실태 분석
이 책자는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라는 연구보고서입니다.
일제는 1945년 패전이 다가오면서 조선인을 일본 본토나 아시아지역, 남양군도만이 아니
라 한반도 내에서 동원하는, 이른바 도내(島內) 동원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여지껏 일본
정부와 일본 학계는 도내 동원을 동원 개념에 넣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은 도내 동원을 포함해 강제동원 피해자를 연인원 780여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학계가 도내 동원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깊이 연구를 한 것도 아닙니다.
최근 학계에서 이를 문제 삼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도내 동원도 당연히 강제동원의 관점에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서는 복합적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거쳐 1945년 패망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는 도내 동원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대학생까지를 어떻게 강제동
원했는지를 80건의 당시 기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학생동원을
발 간 사
기존의 군인, 군속, 노무자, 위안부와는 별도의 카테고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
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보고서는 도내 동원과 학생 동원이라는 복합 동원의 배경과
메카니즘, 그리고 실제 동원 현장과 작업 내용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분석 대상을 경성권역(서울)의 학생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만, 당시 경성지역에
학교와 학생이 가장 많았다는 점에서 학생동원의 일반적인 구조를 살펴보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연구 결과 일제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내세워 학생
들을 강제동원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연병장과 군사시설, 군수품 생산 공장, 도로와 방공호
축조, 식량증산을 위한 논밭 개간 등에 동원했으며,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부여신궁을
신축하거나 조선신궁을 정비하는데도 동원했습니다.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4년에는
제4차 조선교육령을 개정해 수업을 전폐하고 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내몰았습니다.
이 연구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학생을 강제동원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위는 1932년
일본도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할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누구도 문제 삼지 않던 사안일지라도 사후에 명백한
잘못으로 밝혀졌다면, 학술적 차원의 연구를 통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고 봅니다.
이 보고서의 말미에는 학생동원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80건의
당시 기사를 첨부해 놓고 있습니다. 모든 기사는 크게 ‘사실’과 ‘주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생을 동원한 ‘사실’은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학생을 동원하는 이유와 평가인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제국의 승리를 위한 학생동원은 숭고한 일이며, 학생 모두가
충성심에서 참여하고, 그 성과는 매우 놀랍다는 식의 ‘주장’을 읽노라면 전쟁이 국가와 사회
를 어디까지 마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보고서
의 또 다른 교훈일지 모릅니다.
이 보고서가 학생동원에 대한 연구 영역을 넓히고, 그를 통해 강제동원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024년 12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
<총 설> ·········································································································· 1
Ⅰ. 연구개요 ····································································································5
1. 연구목적 및 필요성 ··································································································7
가. 연구과제 수행 동기 및 목적 ·············································································7
나. 연구의 필요성 ···································································································10
다. 연구 결과의 유용성 ··························································································12
2. 연구내용 및 범위 ····································································································13
가. 연구방법 ·············································································································13
나. 연구 범위 ···········································································································13
다. 주요 자료 ·········································································································15
3. 연구팀 구성 및 추진 일정 ·····················································································16
Ⅱ. 일제의 전쟁과 학생 강제 동원 시스템 ··············································19
1. 일제의 학생 강제동원 정책의 수립 ······································································21
2. 일제의 경성 지역 병참기지화 ···············································································25
1) 전시체제기 남부지역의 병참기지화 ·······························································25
2) 용산군사기지 및 육군 시설의 정비 ·································································28
Ⅲ. 일제의 학생동원 시행과 ILO 국제법 위반 ·······································31
1. 일제의 학생동원 시행 절차 ···················································································33
2. ILO 국제법을 위반한 일본정부 ············································································37
차 례
Ⅳ. 경성권역 학생 근로동원의 국제법적 불법 실태 ·······························39
1. 경성권역 학생의 동원 조직과 학생수 ································································41
1) 동원조직과 동원방법 ························································································41
2) 동원 대상 학생 수 ···························································································42
2. 학생 근로동원의 국제법적 불법 사례 ··································································46
1) 대표적인 불법 사례 ·························································································46
2) 연도별 국제법 위반 사례 ················································································49
Ⅴ. ILO 국제법 위반 증거 자료 목록(1938 ~ 1945년) ·······················53
1. ILO 국제법 위반 자료 목록 및 색인어 (1938~1945년) ·································55
2. ILO 국제법 위반 자료의 메타데이터 및 주요 내용 ··········································62
1) 1938년 ················································································································62
2) 1939년 ················································································································88
3) 1940년 ················································································································98
4) 1941년 ··············································································································110
5) 1942년 ··············································································································115
6) 1943년 ··············································································································125
7) 1944∼1945년 ·································································································156
Ⅵ. 연구성과와 활용방안 ··········································································171
1. 연구성과와 의의 ····································································································173
2. 활용방안 ·················································································································173
참 고 문 헌 ································································································175
표 목차
[표 1] 경성권역 학교·학생 수 (1938-1945) ··································································14
[표 2] 경기도의 공립 국민학교 (1938-1943) ·································································15
[표 3] 단계별 추진 일정 ·····································································································17
[표 4] 일제 강제 동원 정책의 중층적 결재 구조 ···························································22
[표 5] 1938∼1942년 학생 수 통계 ················································································42
[표 6] 경성지역 중등학교와 학생 수 ················································································43
[표 7] 경성지역 고등여학교와 학생수 ··············································································44
[표 8] 경성지역 실업학교 학생 수 ····················································································44
[표 9] 경성지역 전문학교·대학교 학생 수 ·····································································45
[표 10] 1938-1945년도 일제의 ILO 국제법 위반 사례 ··············································55
그림 목차
[그림 1] 조선 남부에 설치된 항공기지와 주요 병단 배치 ··············································8
[그림 2] 조선인 전시동원의 분류 ······················································································24
[그림 3] 일본 제로식 함상전투기와 일본의 세력권 ·······················································26
[그림 4] 일본군 용산기지 전경(1910년대) ······································································28
[그림 5] 삼각지쪽에서 바라본 보병 78연대와 보병 79연대 구역 ·······························30
[그림 6] 일제강점기 학생 근로 조직 및 기구 ·································································41
1
총 설
총
3
총 설
본 연구의 목적은 1937년 중일전쟁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전쟁 확대에 따라 전쟁
시설의 변화 양상을 검토하고, 서울권역(이하 당시 지명 경성으로 표기) 학생 강제동원을
사례로 일제가 ILO 국제법을 위반한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
내 학생 강제동원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과 일제의 ILO국제법 위반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자 한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강제동원 실태에 관한 조사 연구는 지역별로 어느 정도 진척되었으
며, 학생 강제 근로동원 문제는 ILO 국제법 위반 행위로서 강제동원 분야 연구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김경남, 2021, 2022). 하지만 학생 강제동원
이 이루어진 지역의 전쟁시설과 그 동원과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는 충분하지 못하다.
1937년 중일전쟁을 치루기 위해 일제는 조선을 대륙전진병참기지로 비정하였다. 이에
따라 그때까지 추진하고 있던 조선시가지계획령을 활용하여 한반도의 주요 거점지역에 군사
기지를 확충하였다. 당시 항공전이 전개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항공기지를 만들어나갔다.
주요 거점은 용산에 있는 경성군사기지를 비롯하여 나남군사기지, 대구군사기지, 광주군사
기지, 진해해양기지, 부산요새 등이었다. 이 거점지역의 도시개발정책을 변경하여 전쟁시설
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특히 1941년 미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하고 태평양 일대가 전쟁터로 되자, 일제는 조선을
일본 본토를 방위하는 후방병참기지로 위치 지으면서, 남한 지역 전쟁 시설도 강화하였다.
이에 경성은 물론 대구, 부산, 마산, 여수 등에 전쟁시설을 만들기 위한 강제동원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때 총독부는 제4차 조선교육령을 개정하면서 학교를 동원기구로 하여
수업을 전폐하고,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노동력을 충당하였다.
일제가 경성권 학생들을 강제동원한 것은 1938년부터 1945년까지이다. 중일전쟁을 준비
하면서 경인공업지대를 만들기 위한 도시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에 따라 경성과 부평 등에
주요 전쟁 관련 시설을 설치하고 강화하였다. 일본의 패전이 짙어진 1944년이 되면 학생들
은 수업을 전폐하고, 학교 운동장을 군사 연병장이나 식량공급지로 만들거나, 군수품 공장에
동원되었다. 또한 이른바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부여신궁을 축조하거나 조선신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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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정비하는데도 동원되었다. 더욱이 조선군사령부가 있는 용산부대의 연병장, 배수지, 도로,
방공호를 축조하는데도 동원하였다. 총독부는 경성권역 초·중등학교, 전문학교, 대학생까지
동원하여 전시체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학생동원은 ILO국제법 제11조 학생 강제 동원
금지 조항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는 사항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경성지역을 사례로 일제의 전쟁시설을 만들거나 군수품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학생 강제동원이 명백히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ILO의 국제법 조항을 검토하였고, 일본의 총동원체제 하에서 전쟁의 변화에 따른 경성지역
학생의 강제동원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당시의 자료를 근거로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5
Ⅰ. 연구개요
. 연구개
7
Ⅰ
연구개요
1. 연구목적 및 필요성
가. 연구과제 수행 동기 및 목적
인류는 유사 이래 무수한 전쟁을 경험해 왔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한국인은 일제의 전쟁
확대와 함께 그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
한 것 중 하나는 우수한 무기와 군인들의 일용품, 주거시설 등의 우수성이다. 군사적 목적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관리함으로써 전력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1)
아시아태평양전쟁기 한국인 강제동원 문제는 바로 일제의 전쟁을 위한 효율적인 물적·인
적 자원 조달을 위한 긴급 조치였다. 일제는 조선군사령부를 경성에 두고, 나남, 평양, 대구,
광주에 거점 군사기지를 만들어 전 조선의 군수 물자를 통제하였다. 그동안 일본지역의
탄광·광산 등에 대한 강제동원 실태는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었다. 또한 한반도 내 강제동원
연구도 서울, 인천, 부산, 대구는 물론 충남, 경기도, 경남지역 등 지역별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전시체제기 군사 시설과 군수 기업과의 연관 관계를 파악하면서 강제동원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더구나 학생들의 강제 근로 동원에 대해서는 대일항
쟁기 진상규명에서도 다루고 있지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강제 근로동원
은 주요한 강제동원의 범주에 넣어서 다룰 필요성이 있다고 사료된다.
1930년대 이후 일제는 세력권 내 고도의 국방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일본 본토와 식민지
전체를 군사적으로 재편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정부와 군부는 식민지 조선을 전쟁 목적
에 따라 전후방 대륙병참기지로 활용했다. 이에 따라 군사 거점이 변동하였으므로 군사시설
설치나 기업의 존폐에도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였다.
특히 1940년 이후 일본이 태평양지역으로 침공하기 시작하자, 미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하
게 되면서, 한반도의 전쟁시설 건설은 함경도 지역과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추진되
1) Richard Burt, New weapon
Technologeies, Adelphi Paper No.125, London, 1976.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8
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경성, 대구, 부산 등 조선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군사시설을
강화해나갔다. 이에 따라 일제는 남부지역에 약 22개의 항공군사기지를 건설하거나 확대하
였다.2)
도명
항공기지 명칭
경기도
제1 경성, 제2 김포, 제3 용산, 제4 시흥, 제5 수원,
제22 평택
충청도
제6 조치원, 제7 대전
경상도
제8 김천, 제10 금호, 제11 대구, 제12 울산, 제13
밀양, 제14 삼천포, 제15 부산, 제16 해운대, 제19
진주, 제20 사천
전라도
제9 군산, 제17 담양, 제18 목포, 제21 제주
✳ 출전: 陸軍省, 「軍管区部隊方面軍隸下部隊人員調査表 朝鮮軍人馬自動車槪數表」 『在南鮮日本
軍部隊槪況報告』 (1945.08.15.~1945.08.31.)
2) 조건,「전시체제기 조선 주둔 일본군의 防空조직과 활동」, 수요역사연구회, 『제국일본의 하늘과 방공·동원1』,
선인, 2012; 김경남,「전시체제기 일본의 항공정책 변화와 조선 내 항공기지의 건설 : 대한해협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역사와 경계』124, 2022; 조건,「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군의 한반도 내 항공기지 건설과 의미」,
『한국근현대사연구』104, 2023.
9
이렇게 후방병참기지의 전략적 항공기지 건설과 기업 정비에 따라, 일제는 필요한 노동력
을 긴급하게 조달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군인·군속·학도병을 동원하였으며, 전선(戰線) 확대
에 따라 부족한 노동력은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하였다.
학생 동원은 ILO(국제노동기구)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였다. ILO는 1932년에
제29호 협약(C029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을 근거로 학생근로금지를 발효하였고, 일본도
이 규정을 준수한다고 비준하였다.3) 하지만 일제는 이러한 국제 규정을 무시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가총동원령과 제3차‧제4차 조선교육령을 개정하면서 학생들을 강제 노동시킬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일본제국정부의 법령’에 따라 학생들은 학도근로동
원체제에 배속되었으며, 근로보국대, 여자근로정신대, 총력대 등 각종 명목으로 강제 동원되
었다. 학생은 일반 노무자와 다를 바 없이 항공기지 관련 시설이나 도로공사에 동원되었고,
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기 위한 노무자로 동원되었다.
그런데 학생 강제동원 시스템이 경성지역 내의 군수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실상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본 연구팀은 대구·경북지역(2021),
부산‧경남지역(2022) 학생을 사례로 일제 전쟁시설 강제동원 실태를 조사·연구한 바 있다.
본 연도에는 경성지역에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대상으로 일제의 전쟁시설에 강제동원한
실태를 조사하였다.
경성지역을 사례로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성은 일본제국정부와 군부가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남양군도(南洋群島) 등 남태평양까지 전선을 확대하였을 때,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공급의 요충지라는 점이다. 이곳에는 조선군사령부를 설치한 곳이며, 조선
병참기지의 컨트롤 타워로서 위치 지을 수 있다. 경성에는 철도 등 기간산업을 비롯하여,
섬유, 고무, 화학공업, 철공소 등 293개 기업(1942년 현재, 자본금 1만엔 이상)이 조선총독
부의 기업 통폐합 이후에도 상존하고 있어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군수기업들이 많이 설치되
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경성에는 일찍부터 근대 학교 시설을 많이 설치하였기 때문에
학생들을 동원할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3) ILO 제29호 협약 - C029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1930) (서인원, 「1930년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과 일제 강제동
원의 불법성」『한일군사문화연구』 35, 2022.에서 인용.) 학생근로금지 규정에 대한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조. 김경남,
『일제의 전쟁과 학생 강제동원 – 대구 전쟁시설 건설과 국제법 위반』, 역락, 2024, pp.90-95.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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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연구의 필요성
그동안 한반도 내 강제동원 연구는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일찍부터 모집, 관 알선, 근로보
국대의 형식으로 행해졌으며, 특히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군수공장, 광산
외에 토목공사에 동원되었고, 그 다수는 근로보국대가 차지하였다고 보고 있다. 1930년대
후반 전쟁이 확대됨에 따라 일본 본토에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어, 조선 내에서는 강제 동원
을 위한 법적 체제의 정비, 실질적 담당 기구의 기능 강화 등을 거쳐 강제동원이 ‘일상화’되었
다.4)
또한, 학생 강제동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 1938년부터 일제가 근로보국대 활동의 일환으
로 학생을 근로동원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일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근로보국대는 노동
력 동원의 유용한 방법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청·장년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동원 대상에서 제외해 왔던 남성과 여성, 학생, 나아가 아동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대폭
확대하여 ‘근로보국’이라는 이름으로 동원하며, 국민개로체제(國民皆勞體制)를 만들었다. 이
러한 학생근로동원정책의 성격 변화와 실상에 대해 식량 증산 중심의 일시적 근로동원에서
일상적 근로동원이 통년화·체계화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교 내에
존재했던 조직이 적극적으로 동원을 도왔던 사실도 밝혀진 바가 있다.5)
경성지역과 관련된 강제동원 연구는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전시체제기 경성부의 부정(府
政) 운영, 노동력 동원구조 등이 전반적으로 규명되었고, 애국반을 매개로 한 일상 통제
등 경성부민에 초점을 맞춘 미시적 연구도 진행되었다. 이외에도 동원에 대한 경성 지역민의
저항, 명부 분석을 통한 경성지역 노무자 동원 실태 등 동원과 관련된 연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폭넓게 다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6)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지역 일제의 전쟁시설에 학생들이 어떻게 강제
4) 김민영,『일제의 조선인노동력수탈연구』, 한울아카데미, 1995; 곽건홍, 『일제의 노동정책과 조선노동자
1938-1945』, 신서원, 2001; 이상의,『일제하 조선의 노동정책 연구』, 혜안, 2006; 정혜경,『일본 '제국'과
조선인 노무자 공출 :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 연구 2』, 선인, 2011; 전성현,「일제말기 경남지역 근로보국대
와 국내노무동원」,『역사와 경계』95, 2015; 동북아역사재단 일제침탈사 편찬위원회 기획 김윤미 편저,『매일신
보로 본 강제동원』, 동북아역사재단, 2023.
5) 신주백, 「1945년도 한반도 남서해안에서의 ‘본토결전’ 준비와 부산ㆍ여수의 일본군 시설지 현황」,『군사』70,
2009. ; 전성현,「전시체제기 학교 隊조직의 변화와 집단 노동력 동원-조선총독부의 학생동원정책을 중심으로」
『석당논총』62, 2015.
6) 이종민,「전시하 애국반 조직과 도시의 일상 통제 –경성부를 중심으로-」『동방학지』124, 2004; 이병례,「일제강
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정책 ;일제하 전시체제기 경성부의 노동력 동원구조」『사림』24, 2005; 김영미,『동원과
저항-해방 전후 서울의 주민사회사』, 푸른역사, 2009; 조건, 「전시 총동원체제기 조선주둔 일본군의 조선인 통제와
동원」,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이연식 외,『일제 말기 경성지역의 강제동원과 일상』, 서울역사편찬원,
2020.
11
동원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 연구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일본이 경성지역 학생을
강제동원한 사실은 ILO 국제법을 위반하였다’는 것에 주목하여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았으
므로, 학교별로 구체적인 상황을 밝히고 증거를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7)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연구의 필요성을 다음 몇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경성지역의 일제
전쟁 시설에 대한 조사, 학교와 학생 수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 ILO(국제노동기구)에서
조약한 학생 근로동원에 대한 국제법적 불법 사례 조사, 한반도 내 강제동원 실태에 대한
구체적인 지역적 차원에서의 접근 등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학생 동원에 대한 수요를 밝히기 위하여 경성지역의 일제 전쟁시설과 군수시설에
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당시 일제 당국의 전쟁시설은 한반도
내 경성, 대구, 나남, 광주 등에 설치된 주요 군사지구와 부산·제주·여수 등 주요 요새를
활용하여 항공전과 해상전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추진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쟁시
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둘째, 경성지역 학생 강제동원에 대한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이 지역의
학생 강제동원 기구와 초등학교, 중등학교, 실업·전문학교 등 학교의 학생 수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학도동원기구는 경성부와 경기도청을 중심으로 각 학교에 시달되었
고, 일본인 학교와 조선인 학교 등에 할당된 업무가 어떻게 편성되었는지에 대한 실태도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이를 통해 경성 학생 강제동원의 특성과 민족적 차별성 등에 대하여
파악하였다.
셋째, 위의 조사를 바탕으로 전쟁 시설과 군수기업, 도로공사, 농촌 활동 등에 어떤 학교의
학생들이 동원되어 근로 행위를 강요당하였는지 그 연관 관계에 대하여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경성은 용산 연병장 확대, 배수지 공사, 도로 공사 등 다양한 공사를 담당해야 했다.
또한 학교를 병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운동장 정지(整地)작업을 학생들에게 시켰다. 이러한
작업은 경성부와 경기도청, 조선군의 전쟁시설·기업군수물자 조달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 이러한 연관 구조를 구체적으로 파악한다면 학생들의 강제 동원지와 피해 실태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경성지역 학생 강제동원의 피해 실태에 대한
기초데이터와 근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고, 향후 일본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증거 자료로써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7) 학생 근로동원의 국제법적 불법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김경남,「대구·경북지역 학생 강제동원의 군사적
특성과 국제법적 불법성」,『영남학』 81, 2022; 서인원,「1930년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과 일제 강제동원의
불법성」,『한일군사문화연구』35, 2022.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2
넷째, 경성지역의 강제동원 피해자 발굴과 관련 자료 축적에 대한 DB 구축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성지역에서 자행된 학생 강제동원 피해자 발굴은 당시에
발행된 신문이나 학교사 관련 책자 등을 통해 발굴하였다. 이처럼 지역에 흩어져 있는 기록
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피해자를 발굴하고 그 자료를 DB로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긴요한 일이다.
다. 연구 결과의 유용성
첫째, 일제의 전쟁 확대에 따른 학생 강제동원의 구조적 특질을 설명할 수 있다. 1938년
총동원체제에서 한반도 남부지역 일대 군사기지의 구심점으로 변하고 있었던 경성 군사지구
의 전략적 편성 현황에 대하여 조사하고, 경성지역의 일제 전쟁시설과 군수공장, 농장 등에
강제로 동원된 학생들의 실태를 명확하게 규명하였다.
둘째, 한반도 내에서 자행된 일제의 강제 근로동원의 피해보상 문제는 해방 이후 79년이
지났으나 아직 한·일 간 외교협상 테이블에서 제기되지 않은 문제로서,【대일항쟁기 강제동
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의 피해자
정의에서도 빠져 있다. 따라서 한·일 간 식민지배상(보상)과 관련한 국제적 차원의 논의와
한국의【특별법】에도 강제 노무동원에 대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논리적 객관적 증거
자료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특히 주목되는 것으로 학생에 대한 강제 근로 동원이 국제법적 불법 행위라는 점을
제기하였다. 일본은 1932년 ILO의「강제근로협약(Forced Labour Convention)」8) 에 비
준하였는데, 제11조 학교 교사 및 학생, 행정관청 직원의 근로동원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의 국내외에 비친 이중성과 학생 강제동원의 불법성에 대하
여 문제 제기하였다. 특히 이러한 학생 강제동원의 피해사례에 대한 국제법적 불법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강제동원 피해의 범주 속에 포함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는 일제의 학생 강제동원이 1932년 시행된 ILO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ILO 규정에 노동할 수 있는 연령은 18세부터 45세로 규정되어 있고
이는 일본도 동의하였다. 특히 학교의 학생 근로동원은 제11조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8) 국제노동기구 총회가 1930년 6월 28일 채택하여 1932년 5월 1일 효력이 발생(일본 포함 174개국 비준) ;
고용노동부 국제기구담당관실, 『ILO 주요협약』, 문원기획, 2012.
13
일본 내각과 총독부는 18세 미만인 중등학교 학생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시행된 학생들의 병영훈련과 교련 수업도 이견이 있으나, 해당 과정에서 행해진 이른바
‘노력 봉사’나 수업 진행으로 간주한 노동행위는 강제동원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2. 연구내용 및 범위
가. 연구방법
본 연구는 국내 강제동원에 대해서 지역사적·미시사적 방법론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한반
도 내 강제동원은 연 추산 780만 명 이상이 동원된 방대한 동원사업이었다. 이렇게 추산한
인원에 학생 강제동원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연구의 패러다
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별, 학교별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본 연구는 향후 체계적
인 국내 학생 강제 근로동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DB 구축을 만들기 위한 기초조사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연구대상과 범위는 경성지역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나. 연구 범위
구체적인 연구 범위와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내각과 총독부의 학생 근로동원 정책의 수립과 변천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
학생 근로노동의 국제법적 불법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강제동원의 시스템적 변화 양상은
일본정부의 고노에[近衛] 내각과 조선의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 시기 법률과 칙령, 제령을
통한 국가적 강제동원 시스템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국가총동원법 시행 이후 경성권역의
일제 전쟁시설과 학생 근로동원 기구에 대하여 방위성 방위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육군
성 자료와 일본 국회도서관, 국가기록원의 총독부 공문서를 토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학생 근로동원은 ILO에서 어떻게 금지되어 있는지에 대하여 검토하고 학생 강제
근로동원의 불법성에 대하여 명확히 하고자 한다.
둘째, 경성지역에서 학생들이 강제동원된 일제의 주요 전쟁시설 확대와 노무수요의 동원
실태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용산군사지구를 비롯하여 경성의 시가지 확대
와 관련하여 진행된 군수 물자 생산 시설에 대한 실태를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4
셋째, 국제법적으로 불법으로 진행된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그 사례로 경성지역
학생 근로동원의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경성 관할구역이 어떻게 편성되어 있으며, 일제
군사시설, 군수 관련 기업, 신사, 광산, 비행장 도로공사, 농장 등과 학교의 학생 강제동원
연관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1939년부터 경성권역의 공사립 초·중등, 전문학교, 대학교 학생에 대한 전체적인 동원상황
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와 관련된 경성권역(경기도 포함) 학생 수는 50만 명이 넘지만, 조선
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중등학교 이상 학생은 약 16,619명(1943년 현재)으로서, 연도별
학생 수의 추이는 다음과 같다.
[표 1] 경성권역 학교·학생 수 (1938-1945)
공사립 중학교 공사립 고등여학교 경성제국대학
총합(공립 및 사립7개교)
연도
학급수
학생수
1938
42
2,189
1939
42
2,196
1940
42
2,215
1941
42
2,261
1942
42
2,274
1943
41
2,263
총합(공립·사립고등여학교)
연도
학급수
학생수
1938
96
5,295
1939
98
5,549
1940
104
5,849
1941
113
6,184
1942
122
6,897
1943
129
7,386
연도
학생수
전체
한인
일인
1938
501
174
327
1939
558
208
350
1940
634
250
384
1941
714
308
406
1942
817
395
422
1943
779
335
444
경성 공립실업학교(농업, 상업, 공업, 직업학교)
(총합 공립실업학교)
연도
학급수 학생수
1938
34
1,447
1939
54
2,347
1940
90
3,509
1941
99
3,621
1942
100
3,825
1943
98
3,712
농업학교
연도
학급
학생수
1938
10
439
1939
12
513
1940
14
600
1941
15
651
1942
15
673
1943
15
695
상업학교
연도
학급
학생
1938
11
597
1939
12
642
1940
12
689
1941
14
730
1942
17
900
1943
18
904
공업학교
연도
학급
학생수
1938
-
-
1939
8
327
1940
32
867
1941
38
1,057
1942
36
1,170
1943
40
1,215
15
[표 2] 경기도의 공립 국민학교 (1938-1943)
공립국민학교(1부)
연도
학교수
학생수
1938
50
23,460
1939
51
24,305
1940
52
24,459
1941
52
24,837
1942
53
25,705
1943
53
26,320
공립국민학교(2부)
연도
학교수
학생수
1938
278
121,205
1939
283
137,691
1940
290
155,935
1941
291
174,873
1942
299
195,327
1943
302
223,121
총합(공립)
연도
학교수
학생수
1938
328
144,665
1939
334
161,996
1940
342
180,394
1941
343
199,710
1942
352
221,032
1943
355
249,441
※ 경기도에 경성이 포함되어 있음
본 연구 기간에 이 모든 학교에 관한 실태를 조사하기는 무리가 있으므로 약 20여 개
경성권역의 학교 상황을 파악하고, 국제법적으로 학생을 강제동원한 불법적인 증거에 대해
서는 이 가운데 자료가 남아있는 학교를 대상으로 그 실태를 밝히고자 한다.
다. 주요 자료
자료는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통계연보를 비롯해 총독부와 경성부, 경기도, 경찰과
군대에서 생산된 공문과 학교에 하달된 시행공문, 학교가 생산한 학적부 등으로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당시 신문과 잡지, 학교사에 수록된 강제 동원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보충하고자 한다.
첫째, 문헌 자료 조사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국내 강제
근로동원과 관련한 자료는 당시 일본 내각이 생산한 문서류와 총독부가 생산한 문서류,
신문, 잡지 등이 있다.
둘째, 한반도 내 강제동원 현황은 일본제국 정부와 참모본부가 강제동원을 총괄 지휘하고
있으므로 일본 국립공문서관, 방위성 방위연구소, 국회도서관 등에 소장된 기록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한반도 내 학생 강제동원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조사가 필요하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는 「긴급학도근로동원방책요강」 등 한반도 내 동원을 위한 각종 칙령과 관련
공문서가 존재하며, 국회도서관에도 정무총감 오노 로쿠이치로[大野緑一郎]의 총동원 정책
관련 문서가 존재한다. 국가기록원에는 학생동원을 명령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학도동
원비상조치요강에 관한 건 통첩」, 1944.3.18.) 이렇듯 일본과 한국에 산재하고 있는 정책
관련 자료를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6
셋째, 학교사에는 아시아태평양전쟁기의 암울했던 학교와 학생들의 강제동원 상황에 대하
여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학교와 학생들의 사상통제와 강제 학교 동원과 학생
동원의 실태를 살펴볼 수 있다. 조사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중등·고등학교
직업학교·전문학교·대학교
경성고등공업고등학교:서울대 공대(60년사, 2007),
무학여고(60년사, 2000), 경성제일여고
경기여고(100년사, 2009), 경성제이여고
수도여고(60년사, 2006), 경성제삼여고
창덕여고(50년사, 1995), 경신중·고 (130년사,
2016), 동덕여자의숙:동덕여고 (30년사, 1980),
배재학당, 배재중·고등(100년사, 2011),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숙명여고(100년사, 2006),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진명여고(70년사, 1981),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배화여고(100년사, 1999),
경기공립고등여학교(100년사, 2009),
경기고(90년사, 1990),
광신중:정보산업고(110년사, 2015),
경동중·고(80년사, 2020), 중앙중·고(100년사, 2008).
조선비행학교:대한항공(50년사, 2019).
경성광산전문고:서울대 공대(60년사, 2007),
경성법학전문학교:서울대 법대(100년사, 2004),
경성사범학교:서울대 사범대학(50년사, 1996),
경성약학전문학교:서울대 약대(100년사 2016),
경성여자사범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서울대
의대(60년사, 2008) 경신학교(연희전문학교):
연세대(100년사, 1985), 연세대 간호대(100년사,
2008), 경성제국대학: 서울대(70년사 2016),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서울대 의대(60년사, 2008),
숭실학당: 숭실대(100년사, 1997), 이화학당:
이화여대(100년사, 2010), 경학원(명륜학원):
성균관대(600년사, 1998).
3. 연구팀 구성 및 추진 일정
연구팀은 연구책임자와 연구원, 연구보조원 등 4인으로 구성하였다. 연구책임자인 김경남
교수는 한국근대사 전문 연구자로서, 30여 년 이상 근대사 관련 저서와 연구논문을 다수
발표하고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김경남 교수는 2000년부터 국가기록원에서 공무 수행차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사회보장연금, 저축금 등 강제동원 증빙을 위한 관련 자료를 추적,
조사한 바 있다. 또한 일본에서 가쿠슈인(學習院)대학 연구원, 호세이(法政)대학 교수로 재직
하고 있을 당시 강제동원시민네트워크와 함께 자료조사반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과정에서 GHQ와 종속된 일본정부 사이에서 전개된 공탁금이 한국인 미불금에 기반
한 것이었고, 한일회담 과정에서도 작동했다는 것을 밝혔다.(김경남,『경제협력 한국 105』조
선인 공탁금명부 분석을 중심으로, 2008) 이후 한국에서도 일본내각과 조선총독부 사이의
중층적 결재구조를 밝히고 강제동원 관련 논문과 저서를 출간하였다. 최근에는 학생 강제동
17
원의 국제법적 불법성을 집중적으로 규명한 저서(『일제의 전쟁과 학생 강제동원 – 대구
전쟁시설 건설과 국제법 위반』, 역락, 2024.)를 집필하는 등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다층적이
고 실질적인 분석을 시행하고 있다.
연구원과 연구보조원은 한국근대사 및 기록학 전공자로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강제
동원과 관련해서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에서 다년간 활동하였다. 이들 연구자는 데이터
처리 자격증을 소지하여 강제동원과 같이 다량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법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현지조사 활동을 전개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연구팀은 모두 학계의 관련 연구 성과
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일본어 문헌의 해독과 분석, 인터뷰 조사, 보고서 집필 등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이다.
책임연구원
·책임연구원 : 1명
·연 구 원 : 1명
·연구보조원 ; 2명
· 계 ; 4명
김경남
(경북대 사학과 교수)
연구원
연구보조원 1
연구보조원 2
손효진
(히도쓰바시 박사수료/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주지훈
(경북대 사학과 박사수료)
권현준
(경북대 사학과 석사과정)
연구내용
월별 추진 일정
04월
05월
06월
07월
08월
09월
10월
11월
자료 조사 및 수집
분석 및 내용작성
중간보고회
최종보고서 작성 및 제출
추진율(%)
10%
20%
30%
50%
60%
75%
90%
100%
[표 3] 단계별 추진 일정
19
Ⅱ. 일제의 전쟁과
. 일제의 전쟁과
학생 강제 동원 시스템
학생 강제 동원 시스
21
Ⅱ
일제의 전쟁과 학생 강제 동원 시스템
1. 일제의 학생 강제동원 정책의 수립
일본 관동군이 조작한 1931년 류타오후[柳条湖] 사건을 기점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는 15년간 전쟁이 전개되었다. 일본제국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장기전을 수행하기 위해, 일본 본토와 식민지, 점령지 등지에서 다수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였다. 요컨대, 일본제국의 세력권 내에서 한국인 동원은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로’ 전개되었다.
경성지역의 강제동원은 수도 경성과 인천항을 연결하는 경인공업지대 건설과 항공기지
건설을 통한 전쟁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전략 전술과 관련이 깊다. 일제는 효율적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중일전쟁기에는 조선을 대륙병참기지로 만들어 중국과 전투하기 효율적인
체제로 만들었고, 태평양전쟁기에는 조선을 남태평양으로 가는 물자와 인력을 제공하는
병참기지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전시체제기 경성지역은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주요한 지구로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이 지구는 경인지역의 군사지구를 방비하고, 일본과 만주로 갈 물자
를 생산하는 중심지로 활용되었다. 총독부는 여의도, 용산, 김포에 항공기지를 배치하였으
며, 군복이나 군화, 총을 생산하는 공업지구를 만들거나 확대하였다. 일제는 경성권의 전쟁
시설을 건설하거나 식량을 증산하는 활동 등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것은 물론 학생
까지 동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강제 동원은 법적 제도의 정비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제국정부의 고노에 내각은
「국가총동원법(國家總動員法)」(1938년 4월 1일 공포, 5월 5일 시행)을 만들어 총력전 수행
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통제 및 운용과 관련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강제 동원의
법적 기반이 된 국가총동원법은 제국의회를 거쳐 법률 제55호로 제정되었고, 히로히토 일왕
이 최종적으로 결재하였다. 더불어 법안을 식민지에도 적용하기 위해서 칙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총동원법을 조선, 타이완, 가라후토(樺太)에 시행하는 건’이
다. 이외에도 ‘국민징용령’과 ‘직업소개소관제’, 제3차 조선교육령(1938∼1943년), 제4차
조선교육령(1943∼1945년) 개정을 통해 학생 강제 동원의 법적 체계를 만들고, 동원을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22
위한 일수도 늘려갔다.
학생동원은 일제가 1932년도에 제정된 ILO(국제노동기구)의 제11조 학생 근로 금지 조
항을 위반하면서 취한 조치였다. 이렇게 일반인 동원과 마찬가지로 학생 강제동원도 일본정
부와 조선총독부의 중층적 결재 구조 속에서 철저하게 법을 통해 집행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표, 그림과 같다.9)
9) 김경남, 「전시체제기 중층적 결재구조로 본 강제동원」『한일민족문제연구』35, 한일민족문제학회, 2018,
pp.187~193.
결재일
법령
건명
내각
최종
결재
주무 기관
1938.03.31
법률 제55호
국가총동원법
近衛
쇼와
일왕
내각총리 및 각 성
1938.05.03
칙령 제316호
국가총동원법을 조선, 타이완,
가라후토에 시행하는 건
近衛
상동
내각총리, 후생성
1938.05.03
칙령 제317호
남양군도 국가총동원에 관한 건
近衛
상동
내각총리, 척무성
1938.05.03
칙령 제319호
국가총동원심의회관제
近衛
상동
내각총리
1938.06.28
칙령 제450호
직업소개소관제
近衛
상동
내각총리, 후생성
1939.07.07
칙령 제451호
국민징용령을 정함
平沼
상동
내각총리, 후생성, 척무성
1939.07.25
칙령 제493호
총동원업무 사업주계획령
東條
상동
내각총리, 각 성
1939.09.29
칙령 제672호
국가총동원법 등 시행의 통할에
관한 건
東條
상동
내각총리, 문부성, 농림성,
척무성, 체신성, 대장성, 상
공성, 철도성, 내무성
1940.03.05
칙령 제094호
국민근로동원령을 정함
東條
상동
내각총리, 대동아성, 내무성,
문부성, 군수성, 후생성
1942.11.01
칙령 제729호
조선총독 및 타이완 총독의 감독
등에 관한 건
東條
상동
내각총리, 각 성
[표 4] 일제 강제 동원 정책의 중층적 결재 구조
23
출전 : 김경남,「전시체제기 중층적 결재구조로 본 강제동원」『한일민족문제연구』35, 2018, p.193.
이처럼 일제의 강제동원은 철저한 법적 절차에 따라 강압적으로 수행되었다. 경인지역의
전쟁시설을 만들거나 확대하는 정책도 모두 당시의 총독부와 일본내각의 공무원들이 만든
것이었다. 경인지역에는 김포공항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용산부대에는 연병장이나 배수구
를 만들거나 육군병원에서 종사할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더욱이 일제는 1944년 이후 학교를 병영으로 만들었다. 각 학교의 학생을 동원하여 교내
정지작업을 시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제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1945년 4월까지 경성
사관구 사령부를 중심으로 경기도 일대를 장악하였다. 당시 이 사관구의 관할 구역은 수원,
부평, 인천 등까지 걸쳐 있었다. 이러한 진행을 통해 모든 정치 행정의 중심지인 경성과
주변 부평의 조병창을 연결하고,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경인공업지구를 군사적 거점과 연결
하는 작업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전쟁시설에 일제와 군부는 학생을 경성학도근로본부에 배속시켜 강제 근로 동원하
였다. 그러므로 기존 연구에서는 조선인 전시동원의 분류를 병력동원, 노무동원, 여성동원으
로 하고 있지만, 거기에 학생동원을 별도로 추가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24
[그림 2] 조선인 전시동원의 분류
출처: 山田昭次, 古庄 正, 桶口雄一, 『朝鮮人戦時労働動員』, 岩波書店, 2006, p.38.
비고: 기존의 분류방식에 학생동원을 추가함.
연도
내용
1937.08.24.
국가정신총동원실시요강
1938,04.01.
국가총동원법
1938.05.03.
국가총동원법을 조선·대만·가라후토에 시행하는 건(칙령 제316호)
1938.05. ∼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에 대한 동원 계획
1938.06.11.
조선 각 지역에 대한 동원 계획 하달(정무총감)
1938.06.26.
국민정신총동원근로보국운동 실시 요강 발표(정무총감)
1938.07.07.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결성
1940.10.16.
국민총력조선연맹(조선총독 중심) 발족 및 국민총력운동 전개
1941.08. ∼
국민개로운동 계획 시작
1941.09.04.
국민개로운동 실시요강 발표(정무총감)
1941.11.12.
국민근로보국협력령 제정 공포
1941.12.01.
국민근로보국협력령 법령 및 시행규칙(조선총독부령 제313호)
출전: 김경남, 『일본의 식민지배와 역사적 책임 - 중층적 결재 구조로 본 식민지배』, 경북대학교 출판부, 2020;
김윤미,「근로보국대 제도의 수립과 운용 : (1938∼1941)」, 부경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 전성현,「전
시체제기 학교 隊조직의 변화와 집단 노동력 동원」,『석당논총』62, 2015.
○ 근로보국대 관련 정책
25
당시 한반도에서는 1943년도 노동 가용 인원이 백만 명 이상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입장에
서도 전쟁에 인력 자원을 적극적으로 동원한 것이다. 전국 노동 가용인원 1,106,536명
중에서 노동을 주업으로 하는 자는 141,296명이고, 기타 유업자가 419,420명이다. 전라남
도가 423,122명으로 노동 가능자 수가 1위이고, 경상남도가 2위이다. 경성은 그 다음이
다.10)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이외의 노동 가용 인원으로 학생과 여성을 상정하였다는 것이다.
학생은 전쟁시설과 황민화를 위한 신궁 조성에 동원하였고, 여성 중에서는 근로동원은 물론
이른바 ‘일본군위안부’로서도 강제 동원하였다.
2. 일제의 경성지역 병참기지화
1) 전시체제기 남부지역의 병참기지화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장장 15년간 이어진 일제의 팽창 전쟁은 한반도의
군사거점화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요컨대, 1930년대 한반도를 대륙전진병참기지로 삼았다
가, 1941년대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남부지역을 후방병참기지로 전략적으로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 도시 건설 정책의 변화도 나타났다. 바로 방공과 보안을 중시하여 전략
적으로 필요한 군사기지를 위주로 개발을 진행한 것이다.11)
남부지역의 전쟁시설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항공기지의 확대 및 신설이었다. 전장의 확장에
따라, 일제는 항공전을 준비하기 위하여 남한의 거점에 항공기지를 확대하거나 신설하였으
며, 군수물자를 신속하게 수송하기 위해 부산과 인천의 항만을 확대하고 항공기지를 건설하
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되었다. 일본 육군성은 일본의 세력권 전체에 항공로를 개설하였다.
이에 따라 한반도 남부 지방에도 주요 병대가 배치되어, 인천항을 비롯하여 김포공항도
만들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의 변화로 남한지역 일대의 전략적 위치가 더욱 중요해졌다. 경성에
는 여의도, 용산, 김포에 항공부대를 배치하였고, 인근 시흥과 수원, 평택에도 항공부대를
10)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調査月報』9-4, 1938, pp.425~427.
11) 한반도 도시 개발은 1941년 태평양전쟁의 확전 이후 경성, 부산, 대구, 나진 등 전략적 군사 지역 중심
개발로 전환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경남, 「아시아태평양전쟁기 대구의 시가지계획과 군사기지화 정책」,
『영남학』78, 2021을 참고.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26
배치하였다. 대구에는 동촌 비행장, 부산에는 수영과 김해 비행장을 만들었다. 항공기지와
도심, 항만으로 연결하기 위하여 항공로와 도로를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시 일제의
도시계획은 경성과 인천을 잇는 경인공업지대를 만드는 것이 주요 골자였기 때문에 인천항
에서 부평과 김포, 용산, 여의도를 잇는 해양과 항공노선을 연결하고, 도로망을 연계하는
작업에는 많은 노무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제 말기가 되면 경성 북부는 관동군이, 남부는 조선군이 관할하게 되었다. 일본 육군성
의 「南朝鮮主要兵団配置要圖」에 따르면 한반도 남부지역에 다수의 항공부대가 배치되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주로 경기-경상도를 중심으로 배치가 되었는데, 제1항공부대는 경성
여의도에, 제2항공부대는 김포, 제3항공부대는 용산에 배치하였다. 이는 한반도 남부 지방
이 항공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부산과 남해안의 요새지대에 항공기지
를 집중적으로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한반도의 후방병참기지의
역할이 더욱 증대했기 때문이다.
[그림 3] 일본 제로식 함상전투기와 일본의 세력권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러 전투의 양상에서 항공전과 신속한 보급이 중요해졌고, 특히
태평양전쟁에서 전개되었던 많은 해전에서도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전투기의 전개가 전략
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래서 항공모함에 사용하기 위해 기존의 96식 함상전투
기의 차기 전투기로 미쓰비시사(三菱社)는 기동성과 항속거리를 개선한 영식(零式) 함상전투
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해당 전투기는 제식 명칭보다는 ‘제로센(零戰)’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7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재편이 너무나 급속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일제는 항공 전력에
필요한 도로, 비행장 등을 건설하기 위해 상당한 노동력을 동원해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경성과 인천의 군수품을 생산하고 실어 나르기 위하여 김포에 비행장을 확대하게 되었다는
것과 부평에 대규모의 조병창 군수공장을 만들었다는 것이 증명해준다. 수도 방비의 전략적
중요성은 관내 일본군의 항공부대를 상당히 많이 편성했다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12)
이외에도 단순한 비행전대나, 중·대대를 제외하고도 방공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되어 군사
엄폐시설과 포대가 설치되었다.13) 일본은 전쟁이 막바지에 달해갈수록 전선의 유지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전쟁을 위한 인력, 물자의 충당은 물론 전선이 점점 일본 열도로
좁혀져 왔기에 수비를 위한 시설의 마련 또한 고려된 것이다. 그러므로 강제동원은 동원된
사실 또한 중요하지만, 동원을 수행한 시설에 관련한 내용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방공 문제가 거론되었다는 사실은 일본의 전쟁 수행 과정에서 한반도 주민
의 안전 보장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전시에 경성사관구에는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임무가 하달됨으로써, 8천여 명
이상의 군인 군속을 동원하였으며, 학생들도 강제 동원되었다.14) 특히 주목할 만한 부대가
조선군 임시병참사령부로서, 일본 육군의 수송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경인지역은
군사수송을 위한 병참선이 시작되는 공간으로서 이는 조선 주둔 일본군 병참사령부가 지부
에 업무를 지시하는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가 전쟁 말기에 이르면서 최후까지 싸우기 위해 1945년 1월 22일 한반도에 제17방면
군을 창설하였다. 이들은 조선 주둔군으로 활동했는데, 사령관도 조선군관구 사령관이 겸직
하였다. 이후 소련과 전쟁이 발발하자 관동군 예하로 편입되었다가 일제 패망 후 미군 제24
군단에 의해 무장 해제되며 해산되었다.15)
12) 防衛廳防衛硏修所, 『在南鮮日本軍部隊槪況報告』, 航空部隊配置要圖(1945.8.31.).
(수요역사연구회, 『제국 일본의 하늘과 방공 동원 1』, 선인, 2012, p.126)
13)
朝鮮總督府, 『官報』, 1937년 11월 4일자(제3242호), 「告示」
14) 陸軍省,『朝鮮軍人馬自動車概数表』, 防衛省防衛研究所(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C13020868300)
15) 第十七方面軍朝鮮軍管区参謀部,「第17方面軍」,『第17方面軍朝鮮軍管区諸部隊通称号所在地一覧表 昭和20年
7月10日現在』, 1945, 防衛省防衛研究所(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C12121093500).자세한 것은 김윤미, 「일
제시기 일본군의 대륙침략 전쟁과 부산의 군사기지화」, 부경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p.167 참조.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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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산군사기지 및 육군 시설의 정비
일본이 용산에 주목한 것은 러일전쟁시기이다. 1904년 일본은 러시아에 선전포고 한
후, 2주 만에 육군임시철도감부(陸軍臨時鐵道監部)를 설치하였다.16) 1908년 10월에는 한국
주차군사령부를 용산에 건설된 새로운 군사기지로 이전하였다. 당시 용산기지에는 군 사령
부, 군사령관 관사, 사단 사령부, 사단장 숙사, 직원 숙사, 보병연대 본부, 보병연대 병영,
기병중대 병영, 야포병중대 병영직원 숙사 등이 건축되어 있었다. 이후 용산병기지창(1908
년 11월), 육군창고(1908년 11월), 위수병원(1908년 9월), 위수감옥(1909년 9월), 군악대
의 건물과 각 숙사 및 마사, 사격장 등이 건설되었다.17)
[그림 4] 일본군 용산기지 전경(1910년대)
용산은 상주사단의 심장부로서, 제20사단 사령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용산기지에 사단
관련 부대와 건축물이 늘어났다. 1921년 당시 용산기지에 주둔 중이던 제20사단 산하 부대
는 보병 제39여단(평양) 산하의 제78연대, 보병 제40여단(용산) 산하의 제79연대, 공병
제20대대, 기병 제29연대, 야포병 제26연대이다.
전시체제기에 들어와 1931년 만주사변으로 조선군은 제20사단 사령부를 일시적으로 용
산에서 만주로 이전하였다가, 1932년 4월에 용산기지로 복귀시켰다. 1937년 일본군이 중
국 본토를 침략함에 따라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도 강화되었다. 이에 용산기지는 총동원체
16) 신주백, 「용산과 일본군 용산기지의 변화 (1894~1945)」 『서울학연구』 29, 2007. ; 김천수, 「일제시기 용산기
지 형성 과정에 대한 기초 연구」『서울과 역사』 87, 2014. ; 서민교, 「일제강점기 용산기지의 군사전략적
기능에 대하여 -1904년 러일전쟁에서 1930년대 만주사변기의 ‘조선군’의 역할과 기능-」 『서울과 역사』
98, 2018. ; 김윤미,「용산기지 일대 근현대문화유산」 『Urban planners』 8-2, 2021. ; 문혜진 외, 「근현대
용산기지를 둘러싼 神社의 변천사」『서울과 역사』 117, 2024.
17) 김천수, 「일제시기 용산기지 형성 과정에 대한 기초 연구」『서울과 역사』 87, 2014, p.173.
29
제라는 상황 하에 조선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정책집행기지로
변화하였다. 1938년을 경계로 조선군이 관동군의 후방 지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태평양전쟁으로 장기화됨에 따라, 1942년 7월 16일 제19사단과 제20사단에 동원령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조선군은 유수사단을 편성하고 위수지에서의 작전준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이후 9월 일본군이 사단 편제 방식(1개 사단 내 4개 연대 편성 → 3개 연대
편성)을 바꿈에 따라, 제19사단 보병 제74연대와 제20사단의 보병 77연대는 제30사단(사
령부 : 평양)의 창설 부대로 편입되었다(1943년 5월 편성명령). 이후 전황이 악화되면서
제20사단은 뉴기니아 방면으로 파견되었다.
한편, 일본의 대본영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1944년 5월 조선군사령부를 전시부대로 편제
하도록 지시하였다, 일본의 본토가 연합군의 전투기의 공습을 당하는 상황에서 대본영은
1945년 1월「제국육해군작전계획대강」을 제정하였다. 「제국육해군작전계획대강」에서 조선
군은 본토결전을 위한 준비에 동원되었다. 이에 따라 용산기지에는 조선군사령부 대신 제17
방면군사령부와 조선군관구사령부가 설치되었다.
당시 용산은 지원기지로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1945년 8월 15일 당시 용산기지에는
제320사단, 박격 제30대대, 고사포 제152대대, 제12공병대사령부, 경성사관구부대, 조선
포로수용소, 경성구금소, 육상근무 제183부대, 제210부대, 제13부대, 특설육상근무대 109
부대 등이 주둔하였다. 또 조선총독관저, 조선군사령관 관저, 사단 및 여단장의 관저, 경성육
군병원, 경성사령부, 조선헌병대사령부, 조선화물창, 제2장갑열차, 제5철도감부, 경성육군
연료부 등이 있었다. 주둔 부대 및 시설의 면면은 당시 용산이 지원기지이자 방공기지였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위의 시설 가운데 학생을 동원하기 위한 시설로는 용산 연병장, 배수지, 경성육군병원,
조선군사령부 등이 있다. 또한 학교 시설을 활용한 전쟁시설로는 육군병지원자훈련소가
있다. 이 훈련소는 1938년 6월 경성제국대학 내에 처음 설치되었다. 이후,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현 태릉 육군사관학교, 1939년 3월)18)와 평양부 신양정(1942년)에도 훈련소
가 설치되었다.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제도>에 의해 동원된 조선인 청년들은 경성제국대
학 강당에서 입소식을 시행했다. 넓은 부지를 보유한 학교는 유사시 군사적 목적을 위해
활용되었다.19)
18) 이 지역에 설치된 육군병지원자훈련소 부지에는 군무예비훈련소(1944년 4월), 남조선 국방경비대(1946년
1월), 국방경비대사관학교(1946년 5월)이 설치된 바 있다.
19) 조건,「일제 말기 일본군의 경성지역 조선인 군사동원과 관련 유적 현황」『일제 말기 경성지역의 강제동원과
일상』, 서울역사편찬원, 2020, pp.293-305.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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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9일 조선총독과 제17방면군사령관이 미군에 정식으로 항복함에 따라, 일본
군은 용산기지를 포기하였다.
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출전 : 김윤미,「용산기지 일대 근현대문화유산」『Urban planners』 8-2, 2021, p.50.
[그림 5] 삼각지쪽에서 바라본 보병 78연대와 보병 79연대 구역
31
Ⅲ. 일제의 학생동원 시행과
. 일제의 학생동원 시행과
ILO 국제법 위반
ILO 국제법 위
33
Ⅲ
일제의 학생동원 시행과 ILO 국제법 위반
1. 일제의 학생동원 시행 절차
학생 강제동원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교육정책을 우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교육령은 공포된 시점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제1차 식민지 교육의
토대를 세우는 시기', '제2차 문화통치로의 전환 가운데 나온 방안', '제3차 중일전쟁의
발발. 전시체제 기반 구축 목적', '제4차 태평양전쟁 이후 군사목적에 따른 개정'이다. 전쟁
말기에는 교육을 포기하고 전시체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교육현장을 이용했는데, 중고등학
생, 전문학교 학생은 물론 국민학교 4학년 이상 학생들을 동원하였다. 이것은 ILO (국제노동
기구) 제29호 협약의 제11조 학생 강제 근로동원 금지 조항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일본은 산업 전반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한 절차를
마련하고자 했다. 1938년 경성지역에서도 이른바 ‘근로봉사’가 진행되었다. 활동의 대부분
은 근로보국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집단 노동에 의한 근로정신을 함양시키고, 신사를 청소
하는 작은 일부터 공장이나 사업장의 작업을 충당하는 일로 점차 확대되었다. 학생의 경우
처음에는 방학을 이용해 단체생활을 하면서 농사 일을 하거나 도로공사와 같은 일에 동원되
었다. 특히, 학생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체득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육체노동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20)
당시 경성지역의 주요 산업은 섬유산업, 고무산업. 화학산업, 군수창고 등이었다. 그중에
서 먼저 경성지역 노무동원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비행장 등 전쟁시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여의도, 김포, 용산 등에서 동원된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해당 시기 이루어진 노무동원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전개되었는지에 대하여 확인할 필요
가 있다. 또한 경성지역의 노무동원 창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추가할 필요성이
있다.
일제는 중국과의 일전을 치르기 위해 한반도 내 군사 거점과 공업지를 ‘개발’하기 시작하
면서, 지역의 학생들을 대거 동원하였다. 그들은 중일전쟁을 위해 한반도 북부 지역을 중심
20) 홍순권 외 5명, 『부산·울산·경남지역 항일운동과 기억의 현장』, 선인, 2011, pp.275~278.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34
으로 개발하였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개시되자 남태평양과 일본 본토를 사수하려는
목적 아래 한반도 남부 거점 지역도 후방병참기지로 활용하고자 하였다.21) 여기서 학생근로
동원의 역할은 제4차 조선교육령 개정을 거치면서 전면적이고 중심적인 역할로 전환되었다.
기본적으로 1938년부터 1941년까지는 법령을 통해 전국의 학생들은 '학도근로보국대'라는
형태로 동원되었다. 이후 1941년부터 1945년까지는 '학교총력대'라는 조직으로 동원되면서
동원 일수도 점차 늘어가고 있었다. 동원조직은 일왕을 원수로 하여, 일본 육·해군성과 조선군,
조선총독부, 학도근로동원기구가 조직되었으며, 상명하달식 교육시스템을 활용하였다.
【학도근로보국대 실시요항】
1. 총독부에 학도근로보국대 지도 총본부를 설치하며 이 총본부는 학교에 대한 사업 배당
기타 필요한 조사 등을 실시한다.
2. 각도에는 ‘지도본부’를 설치하며 지도본부는 구체적인 실시계획 및 동원량 등을 총본부에
보고한다.
3. 학교에서는 학교장이 근로보국대 대장이 되고, 20명 단위의 반을 조직, 지휘계통은 군대식
으로 한다. 학생은 원칙상 재학 중 2회 이상 근로보국대에 동원되어야 한다.
총동원과 관련된 교육령은 1938년 3월 3일부터 실시된 제3차 교육령과 이듬해 3월 8일부
터 실시된 제4차 교육령이 해당한다. 이들의 목적은 전시체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학생들
을 이른바 '황국신민'으로 양성하고, 군사적인 목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전쟁
말기 일본정부는 교육을 포기하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박탈하면서까지 전시체제를 위해
교육 시스템을 학생 동원에 활용하였다.
이러한 조선교육령 개정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교육령이 당시 ILO의 국제법을 명백하
게 위반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의 국가총동원법 자체가 강제 동원의 명확한 증거이지만,
이들의 행위가 당시의 국제법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ILO에서는
1932년부터 학생 근로 금지를 선언하였고, 일본 역시 비준하였다. 그러나 당국은 제3차
조선교육령에서 30일 이내로 학생들에게 근로를 시킬 수 있다는 조항을 통해 ILO 제29호
협약(C029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제11조 학생 근로 금지 조항을 위반하였다. 이 과정은
'근로교육'이나, '근로봉사' 등으로 표현되며 은폐되었다.22) 이후 제4차 교육령에서는 수업
을 전폐함으로써 더욱 심각하게 ILO 국제법을 위반하게 되었다.
21) 김경남, 『일제의 식민도시 건설과 자본가』, 선인, 2015. 참조.
22)『每日申報』, 1938.8.13.
35
다음으로 학생들이 언제부터 강제동원되었는지 살펴보자. 일본의 총동원체제가 형성되기
직전인, 1937년 8월 24일 국민정신총동원실시요강이 실시되었다.23) 그리고 총동원법이
발효되기 전인 1938년 3월 3일 조선교육령에는 30일 이내로 학생 근로를 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24) 이후 일본정부는 1938년 4월 1일 법률 제 55호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였
고25), 5월 5일에는 해당 법령을 식민지 조선, 타이완, 가라후토(樺太, 사할린)에도 적용하였
다.26) 국가총동원법과 국민근로동원령은 내각총리가 총책임을 맡고 대동아성, 내무성, 문부
성, 군수성, 후생성이 각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일본 본토와 식민지의
근로보국대 관련 정책 시행 메뉴얼도 만들어졌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책의 시행과 동시에
바로 중등학교 이상 학생에 대한 동원 계획이 조선 각 지역 학교에 하달되었다는 점이다.
6월에는 국민정신총동원근로실시요강이 정무총감의 명으로 하달되었고, 7월 7일에는 국민
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학교에도 학도근로동원본부가 만들어지면서 청
년들도 동원되었다.
총독부는 총동원법과 제3차교육령을 근거로 '집단근로운동'이라는 것을 고안하였다. 학
생 동원 정책의 주무국은 학무국이다. 학무국은 이미 조직화, 제도화되어 있는 학교와 학생
들을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6월 11일 정무총감은 '학생생도의 근로 봉사 작업실시에 관한
건'을 각 지사와 학교장에게 하달하여 학생등을 동원하도록 하였다. 28일에는 각 도 학무과
장 회의를 통해 '학생은 재학 중 2회 이상 근로보국대로 동원해야 한다'라는 등 구체적인
방침을 수립하였다. 이후 '학도 근로보국대 실시요강'을 발표하고, 여자 중등학교도 포함하
여 한반도 전역에서 시행하였다.27)
일본정부는 본토에 국민정신총동원본부를 만들고 각 식민지에 연맹을 만들었다. 한반도에
는 조선연맹을 행정구역, 일본단체, 학교를 기본단위로 조직하였다. 총독부-도지사-부윤/군
수-직할 학교장으로 하달되는 구조로 조선총독부 아래에 일반인, 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다.
이 시기, 군부 중심의 일본 내각은 미국과의 일대 결전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식민지에
서 강제 동원을 더욱 빈번히 추진하고, 국민근로보국협력령을 제정하였다. 총독은 정무총감
을 본부장으로 하는 학도근로동원본부 설립을 지시하였으며, 각 지역에는 '학교총력대(대장:
23) 朝鮮總督府, 「國民精神總動員實施要綱」, 1937.8.24.
24) 內閣, 「第3次朝鮮敎育令改正」, 1938.3.3.
25) 內閣, 「國家總動員法を施行する件」, 1938.4.1.(法律 第55號)
26) 內閣, 「國家總動員法を朝鮮·臺灣·樺太に施行する件」, 1938.5.3. (勅令 第316號).
27) 허수열,「일제말 조선 내 노동력동원의 강제성에 관한 고찰」『국제심포지엄 발표논문집』, 일제강점하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 2005, p.328.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36
교장)'를 만들어 학생들을 일상적으로 통제하고 동원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1941년 6월
7일 총독은 '국민총력운동에 대한 관리의 솔선수범에 대한 건'을 내무, 산업, 경찰부장,
부윤, 군수, 도지사, 경찰서장, 공사립 중등학교장, 각 업무소장, 청 내 각 과장에서 하달하였
다.28) 또한 18일에 총독부는 전시국민생활체계 확립에 관한 건을 내무부장, 부윤, 군수,
도지사, 각 공사립 중등학교장에게 배포하였다. 요컨대 총독부는 학교동원본부 기구를 구성
하여 학생 동원을 지시하였다. 또한 학교총력대를 활용하여 학교장이 대장이며, 교감, 교사,
학생반 반장과 부반장이 학생을 지시·감독하는 체제를 구축하였다.
한편 수업연한과 학생 상시 근로 동원의 획기적 전환점은 1943년 3월 8일 제4차 조선교
육령의 개정이다. 교육령의 목표는 학교를 군대의 보조기관으로 만들어, 전체주의적·군사주
의적·국가주의적 교육을 강제로 추진하는 것이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교육은 즉 근로봉사'
라면서 학생들을 노무동원에 내몰았다. 제4차 교육령에 따라 학생 동원은 임시적인 이른바
'근로봉사'에서 상시적이고 집중적인 동원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7월부터 실시된 학도전시
동원체제확립요강에 따라 분명해졌다. 기본적으로 학생근로동원은 1941년 6월의 '근로보
국대활동강화요강'에 입각하여 추진되고 있었고, 1943년부터는 학도병이, 1944년부터는
학도지원병이 동원되었다.
이처럼 1943년 이후 근로동원은 체계적으로 강제화되었고, 학생들에게도 더 많은 일수를
동원하는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4년 1월부터는 근로동원
기간을 10개월 이내로 연장하고, 2월에는 '전문학교·중등학교의 전환정비요강'이 시달되었
다. 3월 15일에는 학무국장이 '학도동원비상조치에 따른 중등학교 교육내용에 관한 조치요
강'에 기초하여 중학생 이상 학생을 1년간 계속 동원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학교에서의 교육
과정은 정지되었다.29)
4월 28일에는 조선총독부 훈령 제43호 '학도동원체제경비에 관한 훈령', 훈령 제44호
'조선총독부학도동원본부규정', 학무국통첩 제92호 '학도동원체제정비에 관한 건' 등이 각
각 공포되었다. 이로써 '학도동원본부규정'이 공포되면서, 각도마다 학도동원 본부를 설치하
는 동시에 정무총감 통첩으로 학교별 학생 동원 기준이 정해지고 동원체제가 강화되었다.30)
그해 6월에는 '학생근로동원 출동요령'이 공포되었고, 10월부터 '학도근로령'으로 법적 귀
결되었다.
28) 朝鮮総督府, 「国民総力運動に対する管理の率先垂範に関する件」, 1941.6.7.
29) 이상의, 『일제하 조선의 노동정책 연구』, 혜안, 2006, p.297.
30) 허수열, 앞의 논문, 2005, p.330.
37
2. ILO 국제법을 위반한 일본정부
일제가 단행한 식민지 사람들의 강제동원은 노동력을 임금을 주고 사는 자본주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인데, 한국의 학생들을 강제 동원한 것은 당시 국제적으로 협약한 학생 강제
노동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다. 그 위반한 중심법은 1938년 식민지 조선에
시행한 국가총동원법과 학생을 동원하기 위해 개정한 제3차, 제4차 조선교육령이다.
일제가 국제법을 위반한 근거는 국제노동기구 (lnternational Labour Organizaion 이
하 ILO)의 학생강제노동 금지조항이다. ILO는 누가 무슨 연유로 만들게 되었고, 이 기구에
서는 어떻게 강제 노동금지 조항을 국제적으로 협약하였는지 살펴보자. 지금까지 학생 강제
노동이 이러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인식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 추이에 대하여 살펴보
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ILO가 만들어진 것은 러시아혁명이 발생하여 사회주의가 식민지 여러 나라에 커다
란 영향을 미치게 된 것과 각국의 노동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된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조선에서도 총독부의 무단 지배에 반대하여 많은 조선인들이 거대한
3.1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그해 4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는 영국, 미국, 프랑스
등 46개국이 모였다. 그들은 17세기 이래 추진해 온 산업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노동문제와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하였고, 사회 운동가들이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러시아혁명
으로 사회주의가 식민지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 협조를 통하여 노동자
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퍼져갔다.
이러한 인식은 제1차 세계대전을 갈무리하는 파리 강화 회의에서 거론되어, 회의에 참여
한 각국은 국제 연맹의 자매기관으로서 국제노동기구 설립을 합의하였다. 이것은 베르사유
조약 등의 강화 조약 제13편 노동에 약관 PART XⅢ Labour로 기재되었다. 국제노동기구
의 목적은 헌장의 전문에 나타나는데,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에 기초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국제노동기구 헌장)
여기에는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소련, 일본 등 세계 150개국이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나 학생들에 대한 강제 근로동원 금지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공유하였다.
국제노동기구 총회는, 국제노동기구 사무국 이사회가 1930년 6월 10일 제네바에 소집한
제14차 회의에서, 회기 의사 일정의 첫 번째 의제인 강제근로에 관한 제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이 제안을 국제협약의 형식으로 취할 것을 결의하여, 1930년 6월 28일에 강제근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38
로 협약을 채택하였다.
ILO는 1930년 제29호 강제 근로 폐지를 목적으로 노동에 관한 협약을 이끌어낸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미성년자나 학생들에 대한 강제 동원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다만, 18세 이상
45세 이하의 성년들을 강제 동원할 수 있다는 조항이 남아 있는 것은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이 법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ILO에서 말하는 강제근로라 함은 처벌의 위협 하에서
강요받거나 임의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 모든 노무로서, 의무 군복무, 공민으로서의 특정의
무, 교도소내 강제근로, 비상시 강제근로, 소규모 공동체 노무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 요점은 강제근로의 불법적인 강요는 형사 범죄로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1조
제1항을 보면, 이 협약을 비준하는 국제노동기구 회원국은 가능한 한 조기에 모든 형태의
강제근로 사용을 폐지한다. 제2항에는 강제근로의 완전한 폐지를 위하여 강제근로는 경과
기간 동안 공익의 목적을 위해서만, 또한 예외적 조치로서 사용할 수 있으며, 다음에서
규정하는 조건 및 보장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
·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계속된 발전을 위해 제약할 수 없다.
·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험하게 한다.
· 결핍과의 전쟁은 각국 안에서는 불굴의 의지로, 노동자 및 사용자의 대표는 정부 대표자
와 동등한 지위에서 일반 복지를 중진하기 위해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인 결정에 함께
참여하고, 지속적이고 협조적인 국제적인 노력에 따라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국제협약을 선언하였지만, 식민지 한국인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독일
과 일본 등은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독일의 나치는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 각국을
침략하였으며, 유태인을 강제노동수용소에 처넣어 강제 동원하였다. 그리고 일본정부는 식
민지에서 초등학교 학생까지 노무 동원하였다.
미국과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일본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사이판, 괌
등 태평양 섬에 수십 개의 군사기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조달하려고 하였다. 한국인들은 이 전쟁의 가장 밑바닥에서 희생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39
Ⅳ. 경성권역 학생 근로동원의
. 경성권역 학생 근로동원의
국제법적 불법 실태
국제법적 불법 실
41
Ⅳ
경성권역 학생 근로동원의 국제법적 불법 실태
1. 경성권역 학생의 동원 조직과 학생수
1) 동원조직과 동원방법
제3차 조선교육령 시기인 1938년부터 1941년까지는 기본 강제동원 법령을 토대로 전국
의 학생들을 ‘학도근로보국대’라는 형태로 동원하였다. 이후 제4차 조선교육령 시기인 1941
년부터 1945년까지는 전국 학생들을 ‘학교총력대’라는 조직으로 동원하였다. 특히 1944년
부터는 국민학교 4학년 이상으로 동원 대상을 늘렸다. 이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은
학생 동원이 일제의 국가총동원법령을 기반으로, 조선교육령을 통해 동원 일수를 점차 늘려
가는 방식을 보였다는 것이다. 학생 근로 조직과 기구는 다음과 같다.
본부장(정무총감)
참여參與(문서과장, 재무·광공·농상·법무·
경무·체신·교통국장)
차장(학무국장)
참사參事(參與 소속의 과장課長)
총무부
(부장:학무과장)
일반동원부
(부장:上席親學官)
기술동원부
(부장:上席敎學官)
기
획
반
연
락
반
경
리
반
국방
시설반
군수
증산반
식량
증산반
광
공
반
의
료
반
농
산
반
출처: 朝鮮敎育硏究會, 『文敎の朝鮮』22, 「朝鮮總督府學徒動員本部規程」, 1944.05, p.5.
[그림 6] 일제강점기 학생 근로 조직 및 기구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42
이들은 여러 작업에 동원했는데, 가장 많이 동원된 곳은 모내기나 벼 베기와 같은 식량증
산 보조 작업과 학교 병영시설에 동원되어 정지작업을 하거나 세탁, 바느질 등을 하였다.
이외에도 공장 및 탄광, 조선소, 군수창고, 비행장, 대피소 건설, 도로공사와 같은 전쟁준비
에 동원된 바가 있다.
ILO에서는 학생을 근로 동원을 시키면 안된다는 것을 국제법 제11조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학도근로봉사대를 조직하여 동원하였고, 1943년 이후에는 학도총력대를
조직하여 체계적으로 동원하였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근로에 동원되었다. 국민학교
학생은 4학년 이상을 동원하였다고 하고 있지만 저학년 학생들도 동원될 때가 많았다.
(1942년 현재 학생 수 2,016,756명) 이 학생들은 주로 피 뽑기, 종자채취 등에 동원되었는데,
보도에 따르면 종래 하던 청소 등 단순작업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근로를 시킨다고 하였다.31)
이렇게 학도근로봉사대라는 명목으로 국민학생들을 강제동원한 것은 ILO의 학생 근로동
원 금지 조항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 금지조항도 위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살
짜리 국민 학교 1학년 학생도 동원한 것을 보면, 일본은 전쟁을 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강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동원 대상 학생 수
당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학생수가 1938년에 1,229,523명이던 학생이 1942
년이 되면 거의 두 배인 2,016,756명으로 늘어난다. 이 시기가 학생들을 노동력 동원으로
조직화했던 것을 고려하면,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들여 무상으로 노동력을 취하려던 일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짐작된다.
연도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합계
조선인
일본인
조선인
일본인
조선인
일본인
1938
1,050,371
92,991
51,420
29,353
2,980
2,408
1,229,523
1939
1,215,340
96,156
57,555
31,564
3,443
2,572
1,406,630
1940
1,385,944
97,794
68,281
33,075
3,865
2,766
1,591,725
1941
1,571,990
99,316
76,031
35,328
4,166
3,124
1,789,955
1942
1,779,661
103,831
86,110
39,147
4,505
3,502
2,016,756
출처: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 統計年報』, 1912∼1942.
[표 5] 1938∼1942년 학생 수 통계
31)
부산일보, 위와 같음. 자세한 것은 전성현,「일제말기 경남지역 근로보국대와 국내노무동원」 『역사와경계』
95, 2015, p.195 참조.
43
전시체제기 경성사회를 바라볼 때, “물자 공출과 인력 동원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기사가
학원·학교 및 학생·생도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동원’에 관한 것이었다.32) 경성은 식민지의
수도로서 조선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모여드는 ‘학원도시’였다. 1941년 9월 부내 학생의 숫자가
159,000여 명에 달했다는 점에서, 학생 동원 연구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33)
식민기구는 ‘학생’들에 주목하고 있었다. 기사에서 이들은 ‘훈육과 지도의 대상’이 아니라,
‘감시’의 대상 혹은 ‘예비 동원인력’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전쟁이나 식민지라는 제반 조건이
학생들의 성장 가능성과 성장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보다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전시체제기의 식민지 권력은 학생들을 ① 미래 동원
자원으로 파악함으로써 유사시 노동력을 동원함과 동시에 ② 유력한 식민지 반대 세력으로
인식함으로써 감시하고 억압하였다.
그러면 경성의 학교와 학생수에 대하여 살펴보자. 중등학교, 고등여학교. 전문·대학교로
나누어 조사하였으며,『조선총독부통계연보』1938-1942년판을 활용하여 조사하였다. 지면
상 1942년을 기준으로 제시하였으며, 향후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34)
[표 6] 경성지역 중등학교와 학생 수
1942년 경성지역 중등학교 일람
연번
학교명
연도
분류
직원수
학생수
총계
조선인
일본인
총계
조선인 일본인
총계
1
京城中學校
1942
공립
-
42
42
25
1,110
1,135
1,177
2
龍山中學校
1942
공립
-
37
37
32
1,107
1,139
1,176
3
京城城東中學校
1942
공립
1
30
31
34
790
824
855
4
旭邱中學校
1942
공립
2
27
29
307
328
635
664
5
京畿中學校
1942
공립
12
33
45
1,145
-
1,145
1,190
6
景福中學校
1942
공립
7
34
41
1,111
-
1,111
1,152
7
養正中學校
1942
사립
30
5
35
781
-
781
816
8
培材中學校
1942
사립
30
5
35
886
-
886
921
9
普成中學校
1942
사립
22
6
28
796
-
796
824
10
徽文中學校
1942
사립
33
-
33
849
-
849
882
11
中央中學校
1942
사립
27
5
32
848
-
848
880
총 계
164
224
388
6,814 3,335 10,149
32) 김경호, 「전시체제기 경성 사람들의 저항」 『일제 말기 경성지역의 강제동원과 일상』, 서울역사편찬원, 2020,
pp.136-147.
33) 「학도 15만 9천, 경성부내의 초, 중, 대학생의 총수」『매일신보』1941년 9월 9일.
34) 초등학교(당시 국민 학교)에 대해서는 추후 조사 필요.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44
[표 7] 경성지역 고등여학교와 학생수
연번
학교명
연도
분류
직원수
학생수
총계
조선인 일본인
총계
조선인 일본인
총계
1
京城第一公立高等女學校
1942
공립
-
36
36
-
1,098 1,098
1,134
2
京城第二公立高等女學校
1942
공립
-
34
34
5
1,094 1,099 1,133
3
京城舞鶴公立高等女學校
1942
공립
3
15
18
237
240
477
495
4
京城第三公立高等女學校
1942
공립
-
13
13
11
328
339
352
5
龍谷高等女學校私立高等女學校 1942
사립
-
26
26
32
925
957
983
6
淑明私立高等女學校
1942
사립
15
14
29
684
-
684
713
7
進明私立高等女學校
1942
사립
15
4
19
445
-
445
464
8
梨花私立高等女學校
1942
사립
21
4
25
661
-
661
686
9
培材私立高等女學校
1942
사립
18
2
20
456
-
456
476
10
同德私立高等女學校
1942
사립
21
4
25
711
-
711
736
총 계
93
152
245
3,242 3,685 6,927
[표 8] 경성지역 실업학교 학생 수
1942년 경성지역 실업학교 일람
연번
학교명
연도
분류
직원수
학생수
총계
조선인
일본인
(외국인)
총계 조선인 일본인
총계
1
京城工業學校
1942
공립실업
24
73
97
549
621
1,170 1,267
2
京城農業學校
1942
공립실업
10
38(1)
49
528
145
673
722
3
京城商業學校
1942
공립실업
-
31
31
-
900
900
931
4
德壽(商業)實業學校 1942
공립실업
6
3
9
329
1
330
339
5
京城職業學校
1942
공립실업
15
30
45
1,063
19
1,082 1,127
6
京城女子職業學校
1942
공립실업
3
14
17
326
43
369
386
7
善隣實業學校
1942 사립실업(상업)
3
27
30
764
477
1,214 1,244
8
東星實業學校
1942 사립실업(상업)
15
3
18
520
-
520
538
9
京城女子實業學校
1942 사립실업(상업)
22
3
25
688
-
688
713
10
大東實業學校
1942 사립실업(상업)
19
3
22
595
-
595
617
11
漢城實業學校
1942 사립실업(상업)
11
1
12
394
-
394
406
12
德成女子實業學校
1942 사립실업(직업)
15
1
16
-
-
-
16
13
向上實業學校
1942 사립실업(직업)
9
8
17
348
-
348
365
총 계
152
235(1)
388 6,104 2,206 8,283
45
[표 9] 경성지역 전문학교·대학교 학생 수
1942년 경성지역 전문학교·대학교 일람
연번
학교명
연도
분류
직원수
학생수
총계
조선인
일본인
(외국인)
총계
조선인
일본인
총계
1
京城法學專門學校
1942
관립
2
11
13
137
122
259
272
2
京城醫學專門學校
1942
관립
75
76
151
70
272
342
493
3
京城高等工業學校
1942
관립
9
55
64
80
425
505
569
4
京城高等商業學校
1942
관립
-
22
22
96
238
334
356
5
普成專門學交
1942
사립
18
3
21
546
-
546
567
6
京城鑛山專門學校
1942
관립
29
24
53
95
174
269
322
7
旭醫專門學交
1942
사립
20
1
21
239
-
239
260
8
延禧專門學校
1942
사립
53
7
60
505
-
505
565
9
梨花女子專門學校
1942
사립
55
6
61
527
1
528
589
10
京城齒科醫學專門學交 1942
사립
4
43
47
208
272
480
527
11
京城藥學專門學校
1942
사립
1
23
24
113
224
337
361
12
惠化專門學校
1942
사립
12
4
16
301
3
304
320
13
京城女子醫學專門學校 1942
사립
57
8
65
235
59
294
359
14
淑明女子專門學校
1942
사립
5
18
23
195
92
287
310
15
明倫專門學校
1942
사립
10
-
10
54
1
55
65
16
京城帝國大學校(本科)
法文學部
1942 대학교
11
83(3)
97
166
148
314
411
17
京城帝國大學校(本科)
醫學部
1942 대학교
216
253
469
204
210
414
883
18
京城帝國大學校(本科)
理工學部
1942 대학교
37
90
127
25
64
89
216
19
京城帝國大學校(豫科)
文科, 理科
1942 대학교
8
50(2)
60
201
342
443
503
총 계
622
777(5)
1,404
3,997
2,647 6,544 7,688
출전: 『조선총독부통계연보』 1938-1942년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42년 현재 경성지역 중등학교 이상 총 학생 수는 31,903명
이었다. 그 가운데 경성지역 중등학교의 학생은 10,149명으로, 조선인이 6,814명, 일본인
이 3,335명이었다. 고등여학교의 학생수는 6,927명으로 조선인이 3,242명, 일본인이
3,685명으로서 일본인이 더 많다. 실업학교는 일본인이 2,206명이고 조선인이 6,104명으
로서 총 8,283명으로 일본인에 비해 3배로 많았다. 전문학교·대학교는 조선인이 3,997명,
일본인이 2,647명으로 총 6,544명이었다. 전시체제기 학생 동원은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함께 동원되었으며, 조선인들에 대한 감시는 더욱 엄격하게 진행되어 그에 대해 반발을
했다가 퇴학을 당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46
2. 학생 근로동원의 국제법적 불법 사례
1) 대표적인 불법 사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경성권역의 학생 강제 동원의 국제법적 불법 사례는 전 방위적
으로 폭넓게 벌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용산군사기지 연병장 시설 정비 공사, 육군병원
운동장 조성, 배수구 공사, 육군묘지 정비, 조선군사령부 방공호 구축, 군 사령부 내 토목공
사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황민화정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부여신궁 조성 공사, 조선신궁
청소 및 도로 정비등에도 동원시켰다. 용산군사기지 시설 정비와 조선군사령부 방공호 구축
등에는 경성약전, 경성사범 등과 경복중, 경성중, 선린중 등 거의 모든 중등학교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황민화교육을 위해 주안점을 두었던 조선신궁 관련 동원은 봉찬전 확장공사, 비석닦기,
주변 청소 등이었으며, 부여신궁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숙명여자전문대학과 실업학교 학생들
이 동원되었다. 이 관폐(官弊) 신궁 조성에는 경성제일공립여고, 동덕여고 등 여자중고등학
교 학생들도 많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38년에서 1939년까지는 1일에서 10일까지로 하계방학을 이용하여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동원하였으며, 1941년 이후 점차 기간도 30일, 60일로 늘어났다. 특히 1944년부터는
학교 자체를 병영화하였기 때문에 수업을 전폐하고 강제동원되었다. 다음은 대표적인 국제
법적 불법 사례로서, 경성지역 학생 강제 동원을 표로 나타낸 것이다.
(1) 용산군사기지 및 육군관련 시설 학생 강제 동원
연번
시작일(동원기간)
학교 분류
학교명
동원 내용
1
1938년 7월 11일(6일)
전문학교
경성약전
용산 78연대 뒤쪽 도로 수리
2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경복중
용산육군병원 운동장 조성
3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경성중
용산육군병원 운동장 조성
4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선린중
용산육군병원 운동장 조성
5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용산중
용산 연병장 배수구 개수공사
6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경기상
용산 연병장 배수구 개수공사
7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양정중
용산 연병장 배수구 개수공사
8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배재중
용산 연병장 배수구 개수공사
47
(2) 조선신궁 관련 학생 강제 동원
연번
시작일(동원기간)
학교 분류
학교명
동원 내용
1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경성중
조선신궁 비석 닦기
2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용산중
조선신궁 비석 닦기
3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경기상업
조선신궁 비석 닦기
4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양정중
조선신궁 비석 닦기
5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배재중
조선신궁 비석 닦기
6
1938년 7월 21일(10일)
남자중등학교
경성상업
조선신궁의 울타리 청소
7
1939년 7월 2일(1일)
전문대학
경성법전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8
1939년 7월 4일(2일)
전문대학
보성전문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9
1939년 7월 5일(2일)
전문대학
연희전문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0
1939년 7월 8일 (1일)
실업학교
경성고등상업학교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연번
시작일(동원기간)
학교 분류
학교명
동원 내용
9
1939년 7월 21일(7일 이상)
사범학교
경성사범
용산국군묘지 참도수리, 개조 작업, 묘역
송충이 퇴치
10
1939년 7월 21일(7일 이상)
실업학교
도립상업
용산국군묘지 참도수리, 개조 작업, 묘역
송충이 퇴치
11
1939년 7월 21일(7일 이상)
중등학교
경기중학
용산국군묘지 참도수리, 개조 작업, 묘역
송충이 퇴치
12
1939년 7월 21일(7일 이상)
실업학교
경성상업
용산국군묘지 참배도로 수리, 개조 작업,
묘역 송충이 퇴치
13
1939년 7월 27일(-)
남자중등학교
양정중
용산 연병장 봉사작업
14
1939년 7월 27일(-)
남자중등학교
보성중
용산 연병장 봉사작업
15
1939년 7월 27일(-)
실업학교
경기상업
육군 묘지 확장 공사
16
1940년 7월 14일(8일)
실업학교
선린상업
용산 연병장 배수용 기둥 밑부분 준설
17
1940년 7월 14일(8일)
중등학교
중동
용산 연병장 배수용 기둥 밑부분 준설
18
1940년 7월 21일(7일)
실업학교
동성상업
용산 연병장 배수용 균선개천 준설
19
1940년 8월 23일(8일)
사범학교
경성사범
육군묘지 정리 및 제초
20
1941년 10월 11일(2일)
남자중등학교
경성중
조선군사령부 방공호 축조 작업
21
1941년 10월 11일(2일)
남자중등학교
경기중
조선군사령부 방공호 축조 작업
22
1943년 7월 27일(-)
사범학교
경성사범
군사령부 내 토목 작업 및 철재 등 자재 정리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48
(3) 부여신궁 학생 강제 동원
연번
시작일(동원기간)
학교 분류
학교명
동원 내용
1
1943년 4월 15일(1일)
실업학교
경성여자실업
부여신궁 조영
2
1943년 4월 16일(1일)
고등여학교
경성무학고등여학교
부여신궁 조영
3
1943년 10월 9일(1일)
실업학교
경성여자공립실업
부여신궁 조영
4
1943년 10월 10일(3일)
고등여학교
동덕여고
부여신궁 조영
5
1943년 10월 13일(2일)
고등여학교
배화여고
부여신궁 조영
6
1943년 10월 15일(1일)
실업학교
경성덕수공립상고
부여신궁 조영
7
1943년 10월 17일(2일)
실업학교
경성여자상고
부여신궁 조영
8
1943년 10월 19일(1일)
실업학교
성신가정여자
부여신궁 조영
9
1943년 10월 20일(1일)
실업학교
경성원예학교
부여신궁 조영
11
1943년 10월 25일(1일)
실업학교
경성제일공립상업
부여신궁 조영
12
1943년 10월 28일(3일)
고등여학교
경성제일공립여고
부여신궁 조영
13
1943년 10월 31일(1일)
전문학교
숙명여자전문학교
부여신궁 조영
연번
시작일(동원기간)
학교 분류
학교명
동원 내용
11
1939년 7월 10일 (2일)
고등학교
경성제대예과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2
1938년 7월 12일(1일)
전문학교
경성의전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3
1938년 7월 13일(1일)
전문학교
경성광산전문학교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4
1938년 7월 14일(1일)
전문학교
경성약전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5
1938년 7월 15일(1일)
전문학교
경성치전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6
1938년 7월 16일(1일)
실업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7
1938년 7월 17일(1일)
실업학교
경성공업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8
1938년 7월 18일(3일)
사범학교
경성사범
조선신궁 봉찬전 확장공사
19
1940년 7월 14일(8일)
여자실업학교
성신가정여
조선신궁 건물 및 경내 청소
20
1940년 7월 15일(-)
전문대학
경성치전
조선신궁 참배도로 개수
21
1940년 7월 21일(7일)
남자중등학교
성동중
조선신궁 순시 도로 수리
22
1940년 7월 21일(7일)
남자중등학교
성남중
조선신궁 비석 청소 및 해충 구제
23
1940년 7월 21일(7일)
실업학교
선린상업학교
조선신궁 비석 청소
24
1940년 7월 14일(8일)
실업학교
경성원예학교
조선신궁 임원(林苑)간벌
49
2) 연도별 국제법 위반 사례
1938년 경성지역 학교근로보국대의 노동력 동원 현황을 살펴보자. 먼저 남학교의 사례이
다. 남학교는 용산군사기지 정비공사를 비롯하여 학교 운동장 정비공사, 농도와 실습지 개설
에 동원, 학교 주변 도로 공사, 통상 도로의 개수, 신사 정비 등에 폭넓게 동원되었다. 또한
‘만주개척단’과 경성-안동간 도로 개수 등 북쪽의 중국침략과 관련된 일에도 동원된 특징이
있다.
다음으로 여학교의 사례이다. 공설운동장의 블록 정지작업, 실습지 손질 작업, 신사 경내
청소. 메탄 발생 장치 공사 작업, 출정 군인 가족 봉사, 승강구 공사 작업, 군복 수선 등에
폭넓게 동원되었다.35)
1939년 경성지역 학교근로보국대의 노동력 동원 현황을 살펴보자. 먼저 남학교의 사례이
다. 학교림 벌채 작업, 제방수리, 학교부지 정지공사에 투입되었다. 임도 개수 공사, 도로공
사, 하천준설공사에 동원하였다. 다음으로 여자 학교의 사례이다. 공설운동장 정비 작업,
작업도구 세탁, 공장 수리 공사, 신사, 도로, 학교 내외 청소, 도로 청소, 세탁 봉사, 가사
재봉 등에 동원되었다. 부여신궁 조영작업에도 동원되었다. 1940년도는 1939년과 거의
비슷하다.36)
1941년 5월 22일에는 조선신궁 앞에서 경성청년단 남녀 도합 약 10만 명이 발단식을
가졌는데, 3만 5,000명이 동원되어 총독 앞에서 분열행진을 하였다. 1943년 10월에는
경성에 있는 많은 학교들이 부여신궁을 조영하기 위하여 경성에서 부여까지 가서 근로를
강요당하였다.37) 동원된 학교와 시기는 다음과 같다.
▲ 9일 경성여자공립실업학교
▲ 10일 동덕고등여학교(1반)
▲ 11일 동덕고등여학교(2반)
▲ 12일 동덕고등여학교(3반)
▲ 13일 배화고등여학교(1반)
▲ 14일 배화고등여학교(2반)
▲ 15일 경성덕수공립상업학교(1반)
▲ 16일 경성여자상업학교(1반)
▲ 17일 경성여자상업학교(2반)
▲ 18일 경성여자상업학교 (3반)
▲ 19일 성신가정여학교
▲ 20일 경성원예학교
35) 매일신보, 「非常時克服意氣로 男女學徒愛汗奉公, 全鮮中等以上學校가 一齊動員하여 學園勤勞報國熱高潮化」
(1938.7.17.)
36) 조선시보, 「學校勤勞報國隊作業實施計劃成る, 私立學校も參加す 七月卄三日より十日間」(1940.7.4);조선시보, 「生徒
四千名總出動汗の勤勞奉仕作業大體二十一日に開始式」(1940.7.19.).
37) 매일신보, 「조영 근로봉사대, 부여신궁에 금년 가을도 성초부대원」(1943.10.5.).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50
▲ 21일 한영중학원
▲ 22일 경성 덕수공립상업학교(2반)
▲ 25일 경성제일공립상업학교(1반)
▲ 26일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2반)
▲ 27일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3반)
▲ 28일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4반)
▲ 29일 동인중학원
▲ 30일 조선교화학원
▲ 31일 숙명여자전문학교
▲ 11월 1일 동아공과학원
학생에 대한 근로동원은 1938년 정무총감의 ‘학생의 근로봉사 작업실시에 관한 건’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파악된다. 학생근로동원의 목적은 전술한 바와 같이 표면적으로는 육체
노동의 신성함을 교육하는 것이었지만, 그 실상은 학생의 노동력까지 동원해야 했던 전쟁
상황에 따른 ‘필요’와 학생의 ‘집단화’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점차 학생의
본분인 교육보다 노동의 비중이 강화되었다. 초기부터 학생은 재학 중 2회 이상 근로보국대
동원에 응해야 했고, 공휴일과 방학마다 수시로 동원되었다.
1941년에 이르러서는 일제는 총력전 체제에 학생을 편입시켜 학도근로보국대를 결성했
고, 연간 날짜를 정해둔 규정을 점차 상시적인 동원으로 전환하여 30일이던 기간도 60일로
연장하였다. 일제의 통치가 종국에 이르던 말기에는 수업이 중지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대부
분의 학생이 강제로 근로동원 되었다.38)
❍ 경기여자고등보통학교 (현 경기여고)의 근로동원 현장
경기여고 학생들이 ‘몸빼’ 입고 작업, 모내기 작업하는 광경
출전: 경기여자고등학교,『경기여고100년사』
38) 홍순권 외 5명, 앞의 책, 2011, pp.277∼281.
51
❍ 방공훈련에 동원된 학생들
「보라! 鐵壁의 이 防衛陣-全員이 防空 戰士-學園은 戰塲에 通한다」 『매일신보』 1944년 6월 21일.
❍ 경성상업학교 학생들의 동원 현장
「京城商業の勤勞奉仕」 『조선신문』 1938년 07월 28일.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52
❍ 경성사범학교 학생들의 동원 현장
「陸軍墓地擴張 京城師範生勤勞奉仕」 『매일신보』 1940년 8월 24일.
❍ 소 결
이렇게 일본 참모본부가 경성학도근로동원본부를 통해 학교라는 시설에 학생들을 모아두
고 실제로는 강제 노동을 시킨 사실은 명백히 ILO의 국제법 제11조 학생 근로 동원 금지
조항과 제7조 미성년자 근로동원 금지 조항을 위반한 행위이다. 이렇듯 일본은 국제적으로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면서 그들의 병참기지를 만들려고 하였다. 조선의 학생들은 ‘근로가
곧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일본의 전쟁에 명백히 총동원되었으며, 강제 동원된 조선인 중
가장 밑바탕에서 희생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53
Ⅴ. ILO 국제법 위반
. ILO 국제법 위반
증거 자료 목록
증거 자료 목 (1938 ~ 1945년)
(1938 ~ 1945년
55
Ⅴ
ILO 국제법 위반 증거 자료 목록(1938~1945년)
1. ILO 국제법 위반 자료 목록 및 색인어
다음은 각 학교의 학교사(史)에서 강제동원과 관련된 ILO 국제법 위반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다음은 각 신문과 학교사에 나타나 있는 학교별 강제동원 실태를 정리한 것이다.
[표 10] 1938-1945년도 일제의 ILO 국제법 위반 사례
전거제어번호
(ILO위반사례)
기사 날짜
제목
신문명
색인어
경성_001
1938년
06월 12일
여름방학을 이용하는 집단근로 대보
국운동, 2만 소학교원과 5천 학생을
동원하여, 학무국에서 구체안 작성
매일
신보
학무국, 애국노동봉사작업, 총독부,
시오바라 학무국장, 중등학교
경성_002
1938년
06월 14일
조국애에 총동원되는 『학교근로보국
대』 학교에서 가까운 농산어촌에서,
하휴 중 봉사의 구체적 내용
매일
신보
학무국, 사업 종류, 노동 기간, 생
활지도 기관, 보국대 편성 실시상
주의사항
경성_003
1938년
06월 16일
땀흘리는 여름방학 실천으로, 교수 학
생이 하나된 성대(城大)의 근로보국진
경성
일보
경성제대, 학무국, 우이동 사방
공사, 개성약초원, 회춘원 테니
스코트
경성_004
1938년
06월 28일
사변 1주년 기념일을 기점으로 12세
부터 40세까지 근로보국대로 총동원,
목표 6개조와 시행 요령 발표
매일
신보
지나사변 1주년, 국민정신총동
원운동, 참가범위와 조직, 봉사
사항, 실시방법
경성_005
1938년
07월 01일
경기도의 근로보국대, 3만 남녀 학생
동원, 오는 21일에 조선신궁에 참집,
성대한 결성식 거행
매일
신보
학교근로보국대, 경기도내 18개
남녀 사립 중등학교, 용산 육군연
병장, 남산주회도로, 육군병원
경성_006
1938년
07월 15일
전진하라 학생근로대, 펜 대신 삽을
들고 신교사와 운동장의 땅고르기 봉
사, 오늘 경성고상과 의전에서
경성
일보
경성, 조선신궁, 경성고상, 경성
의전, 청량리, 종암리, 뚝도면 구
의리
경성_007
1938년
07월 15일
경기도 6천 중학생 매일, 6시간 근로
보국 남자는 토목, 여자는 청소작업
21일부터 10일간 / 동원수와 작업지별
동아
일보
경기도 관하 남녀 중등 22개교,
남자 중등 20개교 생도 4,449명
380반(班), 토목공사, 여자 중등
12개교 1,882명 92반, 신사경
내의 청소작업
경성_008
1938년
07월 16일
학생·생도들의 힘찬 근로보국, 휴가를
이용해 봉사
조선
신문
경성의전, 경성고상, 청량리학
교, 세브란스 의전, 경성고공, 용
산중학, 경성중학, 경성고농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56
전거제어번호
(ILO위반사례)
기사 날짜
제목
신문명
색인어
경성_009
1938년
07월 17일
비상시 극복 의기로, 남녀 학도 애한
(愛汗)봉공, 전 조선 중등 이상 학교가
일제 동원하여, 학원 근로보국열 고조화
매일
신보
경성제대, 경성사범학교, 대전중
학, 대전여고, 전주남중, 이리농
림, 부산중학, 부산여고, 평양제2
중학, 나남중학
경성_010
1938년
07월 22일
6천 남녀학생참집리 근로보국대결성
식 경기도내 32교에 대기(隊旗)수여
조선신궁 앞의 장관
매일
신보
인천, 경성, 남녀중등학교생, 학
교근로보국대본부장 간자(甘蔗)
지사, 시오바라(鹽原)학무국장,
경중 이외 32대
경성_011
1938년
07월 22일
학생근로보국대 일제히 맹활동 개시,
총후 학생 의기 드높아
조선
신문
경성사범, 경성중학, 용산중학,
경기상업, 선린상업
경성_012
1938년
07월 23일
경기 각 군 근로보국대, 공사장으로
총진군, 광주, 이천서는 벌써 출동 자
세, 노력봉사에 매진! / 노동보국대에
대기를 마침내 부송
매일
신보
여주, 중앙선 철도공사장
경성_013
1938년 7월
24일
우리들의 학교는 우리들의 땀으로, 경
성여자사범의 근로보국
경성
일보
경성여자사범 근로보국대, 용두
정 신교사
경성_014
1938년
07월 26일
미나미 총독의 격려에 학생근로보국
대 큰 힘
경성
일보
미나미 총독, 용산연병장, 조선
신궁
경성_015
1938년
07월 31일
혹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장 개설
등등, 경중 생도의 근로 봉사
조선
신문
경성중학교, 육군병원 운동장,
교내 스탠드
경성_016
1938년
08월 01일
경성공업의 헌금
경성
일보
경기도, 경성공립공업학교, 경기
도 학생 근로보국대, 영등포번 대
방정
경성_017
1938년
08월 13일
학생근로보국대 작업 상황 양호, 예기
이상 효과!
조선
신문
경기도, 용산연병장, 인천, 학생
근로보국대, 조선신궁, 용산육군
병원
경성_018
1938년
09월 08일
소학, 중학생 총동원 “근로보국” 매월
실시 경기도서 통첩 발송
동아
일보
학교 근로보국대, 도시지대 도로
수선, 농촌 농작 조력
경성_019
1938년
10월 19일
근로봉사로 우물 조사, 약전교학생
경성
일보
경성약학전문학교, 우물 수질검사
경성_020
1939년
06월 04일
전 조선 학생 10만 명 동원, 국책에
바치는 땀방울, 남녀 중등학교 3학년
이상과 전문대학 등 동원, 금년에도
학생근로보국대
매일
신보
학생들의 근로작업, 학무과, 경기도
중등남녀학교 3학년 이상 1만
2,300여 명
경성_021
1939년
06월 04일
제1착 신궁 봉찬전 확장, 학생·생도·
청년단근로대 출동
매일
신보
조선신궁봉찬전, 제1착 출동,
400평에서 850평으로, 봉찬전
확장공사
경성_022
1939년
07월 22일
학원에서 공사장으로 3만 학생대 동
원! 오늘부터 근로봉사수업/ “향상의
임간(林間)”에 학생대들이 근로공사
동아
일보
근로봉사, 중등학교 서빙고 모래
파기, 육군묘지 확장공사, 조선
신궁 확장공사, 소학교 4, 5, 6학년
아동동원, 풀뽑기
5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사례)
기사 날짜
제목
신문명
색인어
경성_023
1939년
07월 27일
미나미 총독 근로학생대 격려
경성
일보
미나미총독, 경기중학, 경성상업,
경기상업, 양정중학, 보성중학
경성_024
1939년
07월 28일
불볕더위 아래 근로 돌진, 미나미 총
독도 대만족 오늘 중등학생 수천명이
작업
매일
신보
미나미 총독, 경성사범, 경성중학,
경성상업, 양정중학, 보성중학,
근로보국작업, 용산육군묘지
경성_025
1939년
07월 28일
『남자다운 색이다』라고 미나미 총독
학생근로대 격려
경성
일보
미나미 총독, 시오바라(鹽原) 학
무국장, 곤도(近藤) 비서관, 간샤
(甘蔗) 도지사, 고(高) 경찰부장,
경성사범, 경기중학, 경성상업,
도립상업
경성_026
1939년
07월 31일
수훈갑 하계학생근로대, 난관 2킬로
미터 개척한 멋진 애국도로, 대동상업
땀의 봉사
경성
일보
대동상업학교, 한강, 시흥군 동
면 봉천리, 도로, 산중턱 개간, 잔
디심기, 관악산, 도로개통
경성_027
1939년
08월 01일
근로 작업을 마친 학생부대 귀성 - 어
젯밤에 경성역을 출발
매일
신보
중등학생, 경성역, 특별 객차, 청
진행, 경의선, 경부선
경성_028
1939년
12월 19일
출정유가족 상점, 생도의 근로 봉사
개시
조선
신문
경성부, 경기상업학교, 경성상공
회의, 경기상업학교 조선신궁
경성_029
1940년
03월 16일
젊은 땀의 봉사대여 나오라, 부여신궁
어조영(御造營)에 9만여 명을 동원,
학교에서 관청에서
매일
신보
부여신궁, 전 조선, 총독부 문서
과장실, 6개월 간 9만 명, 중학교
이상 전문대학생 1만 9천명, 총
독부와 충청남도 총관할
경성_030
1940년
05월 24일
소학 출신을 동원, 총동원적 노력 보
충에 각 도 사회과장 회의에서 지시
매일
신보
각도 사회과장회의, 노력보충부
대, 소학교 졸업, 동원활용, 취직
알선
경성_031
1940년
06월 06일
힘차게 전개될 땀의 봉사 / 이앙부터
적극 협력, 부여신궁·호국신사 등 근
로 작업에 이달부터 남녀 학생 총동원
매일
신보
소학교 아동 동원, 농번기, 부여
신궁, 정지공사, 만주국
경성_032
1940년
07월 14일
청춘 부대 땀의 봉사, 남녀중등학생
13,000여 명 총동원 근로 작업
조선
신문
경성중, 용산중, 경기중, 경복중,
성동중
경성_033
1940년
07월 14일
땀으로 빛나는 젊은이, 불볕더위 아
래, 1만 7천의 봉사, 중학교의 근로보
국대
경성
일보
경기상업학교, 경기상업학교, 경
성농업학교, 양정중학교, 보성중
학교
경성_034
1940년
07월 16일
땀에 젖은 제복! 학생근로봉사 시작
조선
신문
조선신궁, 경성치과의전
경성_035
1940년
07월 19일
하휴는 “땀의 봉사”로 만여 중학생 동
원 남녀생도 수해 도로 의복 수리에
동아
일보
휘문, 중동, 대동, 이화, 진명, 숙
명, 정신, 인천, 개성의 각 고여
및 한성여실
경성_036
1940년
08월 12일
만주국 건설 봉사, 학생근로대 귀환
일반반 19일, 특기반 20일에
매일
신보
만주국건설, 학생근로봉사대, 각
전문학교, 특기반, 일반반, 지하
자원 개발, 의료사업, 경성역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58
전거제어번호
(ILO위반사례)
기사 날짜
제목
신문명
색인어
경성_037
1940년
08월 18일
학생들 근로봉사로 전력향상에 공헌-
경성사단 보도부장 담(談)
매일
신보
경기도, 남자중학교, 연병장의
배수공사, 연습도로 구축, 용산
부대
경성_038
1940년
08월 24일
근로에 돌진, 경사학생 여름 봉사
조선
신문
경성사범학교, 육군묘지 정리 및
제초,
경성_039
1941년
02월 14일
증산운동정신대로 1,000만 학도의
원군, 소학생까지 근로보국
매일
신보
문부성, 식량증산 보국운동, 학
생생도, 농림성, 중학교, 여학교,
고등전문학교, 대학, 근로일수는
수업시간으로,
경성_040
1941년
07월 05일
귀만(歸滿) 학생봉사대 파견 일정 그
외 결정
조선
신문
국방건설, 흥아정신, 대학의학부,
경성의전, 대구의전, 평양의전,
세브란스, 상공, 광전, 대동공전,
수원고농
경성_041
1941년
07월 13일
근로학생부대 출발
조선
신문
만주국근로봉사대, 조선학생부
대, 조선신궁, 경성역
경성_042
1941년
10월 12일
학생들 근로봉사-군사령부 방공호 축조
매일
신보
조선군사령부, 방공호 축조, 경
성중학교, 에가시라(江頭) 교장,
구라시게(倉茂) 보도 부장, 경기
중학교
경성_043
1942년
03월 13일
4만 인의 성초(聖鍬:성스러운 근로
(역자주)), 각 도서 4월부터 부여에
근로봉사
매일
신보
부여신궁, 국민총력조선연맹, 조
선애국반원, 부여신궁 창립에 관
한 성지봉체(聖旨奉体), 부여 내
선일체 역사
경성_044
1942년
05월 05일
작년엔 600만 동원, 경기도의 개로운
동 금년도 준비
매일
신보
학생들 동원, 농사공동작업, 도
로수선, 하천 제방수리, 신사와
신사경내 청소, 황무지 개척, 광
산항내 작업
경성_045
1942년
07월 04일
교련으로 근로봉사로 하휴중 연성을
강행 각 전문학교에서 구체방안을 결
정 / 전 조선 각 국민학교에 국어강습
소 부설 징병제 실시 앞두고 청소년
위해
매일
신보
고야마(小山)경성고등공업학교
교장, 야마다(山田)대좌, 경성공
업고등학교, 연희전문학교, 보성
전문학교, 아사히(旭)의학전문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혜화전문학교
경성_046
1942년
07월 12일
연 인원 35만 동원, 경기도 학도들 근
로 작업에 총진격
매일
신보
관공립사립전문학교, 총독부, 경
성부, 경기도, 조선신궁, 도로, 토
목공사, 신궁·신사 경내 수리작
업, 참배도로 조약돌 씻기
경성_047
1942년
08월 16일
중등학생 5천 명으로 월월금금의 연
성(鍊成), 8월 개교를 장식한 특별집
단근로
경성
일보
선린, 보성중, 동성상, 대동상, 배
재중, 휘문중, 중앙중
경성_048
1942년
12월 23일
징병제 실시에 대비, 청훈(靑訓:청년
훈련소 역자주)을 전면적 확충, 내년
부터 청년학교로 승격
매일
신보
징병제도, 총독부, 공립청년훈련소
1,743개소, 사립 99개소, 청년
훈련소규정
59
전거제어번호
(ILO위반사례)
기사 날짜
제목
신문명
색인어
경성_049
1943년
03월 09일
농사에 학생보국대, 적극적 동원계획
을 수립, 연인원 7만 명, 4월부터 진군
매일
신보
조선학도 생도를 총동원, 고이소
총독, 경성제대, 신사 청소작업,
도로수선, 총독부 학무국, 농림국
경성_050
1943년
04월 01일
학도부대도 총동원, 전시 식량증산 출
동 요강 결정
매일
신보
작업부대, 학교부대, 성대, 성대
예과, 법전, 고공, 의전
경성_051
1943년
04월 15일
5만 명이 성한(聖汗) 봉사, 부여신궁
근로 작업, 금일부터 개시
매일
신보
오야(大家) 연성부장, 미시마(三
島) 중견청년수련소 부소장, 가
와시마(川島) 내무과장, 총독부
부여신궁 봉찬회, 경기도파주군
연맹, 경성여자실업학교, 경성무
학고등여학교
경성_052
1943년
06월 30일
농촌에 학도의 원군, 경기 관하의 각
학교 농보대 출동 준비
매일
신보
학도전시증산동원계획, 국민학
교, 중등학교, 61만 근로대, 제
초, 퇴비만들기, 개간공사, 논 밭
둑 축조
경성_053
1943년
07월 04일
송탄유(松炭油) 증산운동, 근로보국대
학도도 일역
매일
신보
송탄유, 군수품, 선박용, 다나카
(田中)정무총감, 산림과, 학생부
대
경성_054
1943년
07월 12일
수업에 근로에 훈련에 학도들 지표를
평정, 필승 태세를 정비할 3교장 회의
매일
신보
교문은 곧 군문, 고이소(小磯) 총
독, 오노(大野) 학무국장, 시노다
(條田) 성대총장, 총독부학무국
학도전시동원체제, 징병제
경성_055
1943년
07월 15일
하휴를 증산에 헌납, 경기도 관하 학
원의 총동원 준비 완료
매일
신보
학원총동원, 학교는 곧 군문으로
통한다, 남녀중등학교, 경기도
관하 각종 50여 남녀 중등학교
경성_056
1943년
07월 18일
8만 산보대 진군, 강화군서 이앙에 최
후의 돌격
매일
신보
원호대, 우경반, 가네마츠(金松)
강화군수, 사토(佐藤) 서장, 산업
보국대
경성_057
1943년
07월 18일
송탄유 생산에 10만 군민 총동
매일
신보
송탄유 제조법, 소나무, 가지, 그
루터기, 와사용 목재
경성_058
1943년
07월 22일
1만 9,000의 학도, 송탄유 원료 채취
에 동원
매일
신보
석유, 까소링(가솔린), 총독부,
송탄유, 총독부, 관솔채취, 중등
학생 동원
경성_059
1943년
07월 27일
“학교 즉 병영”의 태세 정비, 전 반도
학도 총궐기, 대망의 전시학도동원 체
제 요강 발표
매일
신보
결전교육체제, 학도전시동원체
제확립요강, 정무총감통첩, 해군
특별지원병제, 유사시에 즉응할
체제를 확립할 것
경성_060
1943년
07월 27일
전선을 생각하며 성한(聖汗), 학도들
군사령부로 봉사
경성
일보
군사령부, 경성사범학교생도, 대
화숙생
경성_061
1943년
08월 10일
귀향 학생 땀의 진군 타도(他道)에 선
편(先鞭), 경기도 내에 근로봉사
매일
신보
기계화국방협회, 조선본부 경기
도, 답십리 기갑 조정훈련장, 경
성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60
전거제어번호
(ILO위반사례)
기사 날짜
제목
신문명
색인어
경성_062
1943년
09월 07일
780만 학생, 생도를 추수 근로봉사에
동원 - 출동 전에 모두 신체검사를 실시
매일
신보
국민학교 4학년 이상, 성대, 농림
국, 총독부 학무국, 출동 전 신체
검사, 도립의원, 공의
경성_063
1943년
09월 18일
대피호 시설에 총력, 애국반 학도 봉
사로 부내 일제 착공
매일
신보
항공보급전, 방공연습, 방공 기
재정비, 방공호, 대피호설비. 개
인용대피호, 공공대피호
경성_064
1943년
10월 03일
기류지에서 징병검사, 학도 징집에 관
해 군 보도부에서 주의
매일
신보
재학중 학생 징집 연기 중지, 임
시 징병검사, 조선군 보도부,
1943년 도 임시 징병검사에 관
한 요항, 병역법 제41조 제4항,
칙령공포
경성_065
1943년
10월 05일
조영 근로봉사대, 부여신궁에 금년 가
을도 성초(聖鍬)부대원
매일
신보
부여신궁, 동덕고등여학교, 배화
고등여학교, 경성덕수공립상업
학교, 경성여자상업학교, 성신가
정여학교, 경성원예학교
경성_066
1943년
10월 14일
이제야말로 학교는 병영화, 결전 즉응
의 강력한 태세 완성되다 / 이공계 이
외는 정리 청훈서도 생산전사 양성 /
지원에 의해 군무 복역 근로봉사 1년
에 4개월
매일
신보
과학전, 다나카(田中) 정무총감,
이공계 학교 확충과 법문계 교육
축소, 청년훈련소, 각종 학교와
사설 학술강습소 정리
경성_067
1943년
10월 21일
반도학도에 특별지원병제, 적령 경과
자에 은전, 금일 육군성령 공포 실시
- 특별지원병제 실시 내용
매일
신보
특별지원병제 실시, 1943년도
육군특별지원병 임시 채용규칙,
육군성령 제48호, 지원 방법, 채
용 검사, 입영 시기
경성_068
1943년
10월 29일
송탄유 생산 성적 만점, 경기도는 제3
위를 확보
매일
신보
송탄유, 경북, 황해, 경기도, 와사
용목탄
경성_069
1943년
11월 06일
불멸의 함성 『가자! 결전장으로』 고
상, 법전, 고수 3교는 적격자 전원 용
약 출원, 감격, 지원병에 반도학도 총
진군
매일
신보
병역법, 특별지원병, 경성제국대
학 법문학부, 고등상업학교, 경
성고등상업학교
경성_070
1943년
11월 21일
지원병에 영광 있으라, 출진 학도들에
2,500만 단성(丹誠)의 기원
매일
신보
출진결의 학병, 황국신민, 대동
아건설, 새조선의 첨병
경성_071
1943년
12월 22일
입영 전의 준비훈련, 금일, 지원학도
임시 연성소 개소식
매일
신보
입영, 대학, 전문학교, 특별지원
학도임시 연성소, 오보리(大堀)
대좌, 고이소(小磯)총독, 이다가
키(板垣)군사령관
경성_072
1944년
02월 06일
교실은 병영으로 통한다. 학도 군사교
육 강화, 반도서도 오는 4월부터 실시
준비
매일
신보
마셜제도, 아동들, 교문 곧 군문,
군사훈련, 교육에 관한 전시비상
조치방책에 따르는 학도의 군사
교육 강화 요강
6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사례)
기사 날짜
제목
신문명
색인어
경성_073
1944년
03월 20일
학도근로동원 19일 발표, 신학기 실
시
매일
신보
징병 적령 하양, 총독부, 긴급학
도근로동원 방책요강, 학도동원
실시 요강, 국민학교 4학년 이상
경성_074
1944년
05월 24일
근로 정신이 제일 - 경기도 학도동원
실시요강 결정
매일
신보
근로는 곧 공부며 훈련, 경기도,
학도동원 비상조치, 초등학교 학
동들의 동원
경성_075
1944년
06월 04일
징용과는 다르다. 나가자 여자정신대,
경인에서도 모집, 내지에 파견하기로
매일
신보
노다(野田) 경기도노무과장, 여
자근로정신대, 경성, 인천, 도야
마현(富山), 경기도, 낭자군
경성_076
1944년
07월 08일
경기 여자정신대 목적지 안착, 입장식
매일
신보
경성역, 노다(野田) 경기도노무
과장, 경기도여자정신대, 도야마
현 공장, 생산전
경성_077
1944년
07월 14일
주석산(酒石酸)제조에 근로학도동원
매일
신보
머루, 주석산, 경성공업, 경성약
학전문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경성_078
1945년
03월 27일
긴급증산책 평정 27일, 각 도 광공부
장회의 개최, / 80만학도 동원 송근,
송탄유 증산전
매일
신보
송탄유, 송근유, 긴급증산방책,
총독부, 시오다(鹽田) 광공국장,
고이소(小磯) 수상, 항공연료, 초
중등남녀학도
경성_079
1945년
04월 02일
여자는 징용 않고 남자 50까지 대상,
반도 개로체제 확립의 “국민동원령”
매일
신보
국민근로동원령, 요원제도, 만
12세 이상 50세 미만의 남자 징
용, 총독부, 다하라(田原) 사무관
경성_080
1945년
08월 09일
남녀 군속 모집
매일
신보
조선군관구사령부, 군속모집, 남
자고용인, 여자 고원, 용인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62
2. ILO 국제법 위반 자료의 메타데이터 및 주요 내용
1) 1938년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1
제목
여름放學을 利用하는 集團勤勞大報國運動 二萬小學校員과 五千學生을 動員하야 學務局
에서 具體案作成
(여름방학을 이용하는 집단근로 대보국운동, 2만 소학교원과 5천 학생을 동원하여,
학무국에서 구체안 작성)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8년 06월 12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63
기사
주요내용
비상시하의 총후를 지키는 건전한 학생들에게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알바이트(아르
바이트), 데인스트’(집단근로)와 ‘레버, 써뷔쓰’(근로보국)를 하도록 총독부 학무국에서
는 이에 대한 구체 방법 안을 만드는 중이며 문부성에서 결정한 여러 가지 실천사항에
준해서 조선에서도 실시하기로 되었는데 대체로 오는 20일이나 혹은 이달 말일경 관계
자들을 회동시켜 구체적 안을 결정하리라고 한다.
그리하여 총후 학생들로 하여금 또는 총후 교육보국에 힘쓰는 교원들로 하여금 사변
하의 여름휴가를 국가를 위하여 바치도록 하는 일대 봉사운동을 전 조선적으로 일으키
리라고 하는데 그 내용의 중요한 것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2만 소학교원 동원-
현재 조선 안에는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원이 2만여 명인데 이번 시오바라
학무국장이 조선교육 개정에 대한 취지를 각 도로 다니며 설명 부연하여 그 종국의
목적은 국체명칭, 내선일체, 인고단련에 있으며 또한 황국신민 양성에 있다는 것을 철저
히 인식시킨바 여기에 감격한 2만여 명은 여름휴가 동안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근로봉사
를 하여 비상시의 긴장된 생활을 하겠다는 기운이 농후해 졌음으로 이들에게 적당한
기회와 장소를 주어 이 취지에 큰 결과가 드러나도록 하리라는 것이다.
-5천 학생 봉사 출역-
별항과 같이 2만여 명 소학교원이 동원되는 것에 따라 전 조선 전문학교 생도는
물론 중등학교 학생 일부를 합하여 약 5천여 명이 동원되어 근로봉사운동에 참가하리라
는 것이다. 대체로 학생들인 관계도 있고 하므로 2주일을 기한으로 하여 산간에 들어
신체 훈련을 겸한 근로를 하도록 하였다는 바 북조선 임도 개발과 북조선의 지하자원을
발굴해 내는 산업도로에 종사하게 할 방침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산속에 들어가 괭이와
부삽을 들고 기운찬 일도 하게 될 것이라 자연히 체위 향상에도 좋은 운동이 될 것으로
그 결과는 크게 기대되고 있다.
이와 같이 근로봉사에 종사할 중등 전문 학생들은 대체로 2주일 기간을 작정하여
편대를 해서 활동하게 할 터인데 2주일간의 일이 끝나면 그들의 ‘유니폼’(교복)에 영예
있는 휘장을 달아 주어서 근로봉사에 2주일간 힘썼다는 것을 표시하리라고 한다. 그뿐
더러 상급 학생들에게는 졸업장과 한 가지 이력서에 '2주일간 근로봉사'라는 한 줄을
반드시 기입하게 해서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게 하리라고 한다.
-시오바라 학무국장의 말씀-
시오바라 학무국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비상시국하의 학생인 만큼 긴장된 정신과 학생다운 기개를 가지고 근로봉사에 힘써
보는 것도 크게 뜻있는 일인 줄로 안다. 전문·중학생 합해서 1만 5,000명가량 동원을
시키고자 하였으나 금년은 처음 시험이라 5,000명 가량만 동원시켜 볼 작정이다. 물론
매년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체위 향상도 되는 좋은 운동을 겸한 근로봉사에 참가하게
하는 1석 2조 안을 생각한 것이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줄 확신한다.
키워드
학무국, 애국노동봉사작업, 총독부, 소학교원, 시오바라 학무국장, 중등학교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6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2
제목
祖國愛에 總動員되는 『學校勤勞報國隊』 학교에서 가운 농산어촌에서 夏休中奉仕의
具體的內容
(조국애에 총동원되는 『학교근로보국대』 학교에서 가까운 농산어촌에서, 하휴 중 봉사의
구체적 내용)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8년 06월 14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5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65
기사
주요내용
근육노동에 대한 시간을 아끼려는 관념의 함양과 견인지구의 체력을 연마하여 국가
봉사의 정신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비상시국하의 학생 된 본분을 지키게 하자고 하는
1석 3조의 명안을 세워 하기 휴가를 이용하는 애국노동봉사 작업에 대한 것은 기보한 바와
같거니와 드디어 13일 총독부 학무국이 실시에 대한 것을 발표하는 동시 정무총감의
명으로 이것을 각 도에 통첩하였다. 이번 집단적인 애국노동봉사로서 조선교육의 3대
강령인 '인고단련'의 철저를 기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비상시 학생으로서 조국애에
불타는 젊은 혼을 총동원하자는 것이니 어제 그 내용을 들어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이번 학무국으로부터 발표된 학생 생도들의 애국노동 봉사작업은 전 조선 중등학생
과 전문학교 학생들을 총동원하게 할 것으로 이름도 학교근로보국대라 하였고, 그 방법
과 사업의 종류들도 학생 생도들에게 적합한 범위 내에서 실천하게 하였는데 상세한
것을 보면 이러하다.
1. 방법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일정한 기간동안 학생 생도로 하여금 될 수 있는 대로 소속
학교에 가까운 농산어촌에서 규율적인 단체생활을 하도록 할 것.
2. 사업의 종류
사업의 종류는 연령, 건강, 지방 실정을 고려하여 정하되 대체로 도로공사(농도와
임도 등의 신설), 사방 공사, 황무지 개간, 매립공사, 수로공사 등이고, 그 외에 공익에
적당한 공사를 하도록 하며 근육노동의 신성한 것을 체험하게 할 것
3. 노동기간 및 생활
가. 노동기간은 대체로 10일간 정도로 하고 경우에 따라 변경할 수 있음
나. 숙사는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운 소학교나 간이학교의 교사를 임시로 사용할 것
다. 자취제도로 조석을 해 먹게 하되 당번으로 할 것
라. 침구와 작업복은 각자 준비할 것
마. 하루 노동시간은 6시간으로 하고 남는 시간은 학과, 자습, 오락, 좌선을 하도
록 할 것
바. 학과 공부는 실제 공부보다도 위인걸사의 언행 사실(言行 史実)등 실천을 중심
으로 한 일본정신에 관한 강화를 할 것
사. 노동생활은 스스로 취미와 쾌락을 가지도록 지도할 것이며 건전한 오락을
가지게 할 것
아. 생활은 극히 규칙적으로 하여 훈련, 절제를 중요시할 것이며 건강에 유의하게 할 것
4. 지도기관과 보국대 편성
1) 학교근로보국대 지도총본부는 총독부 학무국에 두고 여러 가지 사업과 노동력
의 조사사업에 대한 편대 등을 지휘통제
2) 각도에는 학무과 내에 지도본부를 두어 도내 각 학교의 보국대를 지도할 것
3) 각 학교에는 근로보국대를 조직하여 교장이 대장이 되고 대원으로 1대를 20명
씩으로 하고 3대에 교직원 한 사람을 배치할 것
4) 재학 중에는 2회 이상 근로보국대에 참가하여 일할 것을 원칙으로 함
5. 실시상의 주의
1) 단체생활을 시작할 때는 엄숙한 식을 거행할 것
2) 작업은 순서 있게 하여 처음부터 급격하게 하지 말 것
키워드
학무국, 사업 종류, 노동 기간, 생활지도 기관, 보국대 편성 실시상 주의사항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66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3
제목
汗の夏休み實踐へ, 敎授學生を一丸に城大の勤勞報國陣
(땀흘리는 여름방학 실천으로, 교수 학생이 하나 된 성대(城大)의 근로보국진)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8년 06월 16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前略) 경성제대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괭이를 들고 근로보국
의 정신을 실천하려고 전 학년을 6반으로 나누어, 1반은 부전(赴戰)고원에 산막(山幕)을
본거지로 하고, 고원의 고산 식물원을 건설하고, 2반은 우이동에서 사방공사에 나섰으
며, 3반-6반은 개성 약초원 보수, 운동장 보수, 회춘원 테니스코트 시설 등의 노역에
종사하는 등, 7월 1일의 실시에 앞서 전 대학이 비상시국인 것처럼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後略)
키워드
경성제대, 학무국, 부전고원 산막, 우이동 사방공사, 개성 약초원, 회춘원 테니스코트
6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4
제목
事變一週年記念日을 起點으로 十二歲부터 四十지 勤勞報國隊로 總動員 目標六個條와
施行要領發表
(사변 1주년 기념일을 기점으로 12세부터 40세까지 근로보국대로 총동원, 목표 6개조와
시행 요령 발표)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8년 06월 28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총독부에서는 7월 7일의 지나사변(중일전쟁) 1주년 기념일을 계기로 하여 국민정신
총동원운동을 실천하는 한 방책으로서 조선 2,300만 민중을 동원하여 근로보국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운동은 12세로부터 만 40세까지 남녀를 전부 참가시키되 각 부락
등에는 근로보국대를 결성하여 통제적으로 지도할 방침이라 한다.
조선에는 옛날부터 부역제도에 의한 민중의 공역 봉사의 습관이 있는데 이 부역에
대한 관념을 순전한 봉사의 관념으로 전환시켜 새로 생긴 국면을 타개하려는 애국심의
함양을 도모하며 국력의 증강에 힘쓸 것은 물론 내선인이 참으로 일체가 되어 국책
수행에 적극 협력을 할 수 있는 황국신민으로서 신념을 배양하려는 것이다. 즉 이 운동
의 목표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1. 국가 관념의 함양, 내선일체의 강화
2. 근로호애, 인고단련, 희생봉공의 함양
3. 공동일치적 행동의 훈련
4. 체력의 증진
5. 지방의 개발
6. 비상시국 인식의 철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68
등인데 다음과 같은 시설과 행사를 함에 전원이 일치 매진하여 인고단결의 정신을
더욱 진작하여 내선인의 결합을 더욱 굳게 하여 가지고 어떠한 사태가 발생하든지 또는
시국의 어려움이 도래하여도 조금도 동요를 하지 않는 국방의 근기를 확립하려는 것으
로 반도 청소년이 국방의 일단을 담당하는 동시에 사회봉사의 의미에서 근로에 노력하
는 것은 실로 2,300만민이 근로보국운동 실시에 대한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참가 범위와 조직
만 12세부터 만 40세까지 남녀는 전부 참가할 것을 주지로 하여 우선 청년단 갱생공
여부락, 갱생지도부락 등에서부터 점차 근로보국대를 결성한다. 보국대의 조직 내용에
관해서는 각지의 실정에 따라 실행시킬 터이나 장래는 점차 통제적 지도를 가한다.
(2) 봉사 사항
대략 아래와 같은 작업에 봉사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농번기와 어번기에는 농산
어촌민의 봉사 작업은 영농과 어업 개선에 관계있는 이앙, 병해충의 구제, 비료 저장소
의 설치 또는 개선, 공동 양식장의 수선 등과 같은 부락적 일제 작업으로 대신한다.
(가) 황무지의 개간
(나) 식림, 식수
(다) 도로, 하천 등의 개수
(라) 못과 늪 또는 용배수로의 준설
(마) 신원(神苑)의 청소
(바) 기타 본 운동 목표와 합치하고 토지의 개량에 필요한 작업
(3) 실시 방법
이 운동의 지도는 청년단, 향약, 진흥회 등의 집단을 단위로 하는 곳에는 그 단체의
장이 이행하고 기타의 부락에서는 부락에서 지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이 이행하며, 면,
읍, 도(島,), 군, 부, 도의 장관은 관계 구역 전반의 지도에 담당한다. 작업에 대해서는
(가) 애국일의 행사에 본 운동을 합치시켜 애국일 강화시에는 지도자부터 본 시설운
동에 관한 취지를 철저히 하고 근로봉사의 신성한 정신에 관한 강화를 하는
동시에 1개월간 작업 성적에 관한 강평을 한다.
(나) 지방의 실정에 비추어 연령 등에 의하여 반을 나눈다.
(다) 작업용구는 각자가 지참한다.
(라) 작업횟수는 지방의 실정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1개월 1차의 애국일 집합시에는
이것을 반드시 실행시키고 봉사 시간은 매회 2시간 이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
로 하나 지방의 실정에 따라 적당하게 결정한다.
(마) 작업은 참가 연령 해당자의 잉여 노동력을 이용하고 점차 근로량을 증가하는
기풍을 양성시킨다. 더욱이 작업을 실시할 때는 근로와 연이 먼 부호의 자질
등과 평소 대기하는 가운데서 활동할 기회가 적은 실내 노무자들을 특히 참가시
키도록 한다.
(바) 작업 개시 전후 보국대원 일동은 대기하는 중 집합하여 대장의 지휘에 따라
농구를 손에 든 채로 엄숙신직(愼直)한 태도로써 황거요배, 간단한 설화,「황국신
민서사」의 제창, 천황폐하 만세 봉창 등의 행사를 거행한다.
69
(사) 보국대원은 작업에 의하여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만일 받는
경우에는 공사(工事) 헌금을 하거나 애국 저금을 하거나 대의 비용에 사용하거나
하고 절대로 사적 용도로는 소비하지 못한다. 작업 중에는 대장의 명령에 따라
규율을 지키되 쾌활한 정신으로 기쁨에 넘치는 근로에 종사하는 풍속을 일으키
도록 가요, 무용, 음악, 체조, 경기 등을 적당히 임의로 가미해도 좋다.
(4) 시설의 조성
본 시설의 조성을 위하여 다음의 방법을 강구한다.
(가) 기구류는 각자 소유의 간단한 것을 사용시키고 기계류는 피한다.
(나) 지방당국과 지도적 입장에 있는 자는 개간할 임야, 황무지 등을 알선하여 될
수 있는 대로 무상불하의 방도를 강구하고 정지(땅고르기) 후에는 이것을 부락민
의 공동 경작으로 하여 그 수입을 보국대의 경비에 충당시킨다.
(다) 보국대 중 성적이 우수한 자는 본부와 지방당국에서 장려하고 선정할 방법을
강구한다.
(라) 지방당국은 지도를 겸한 장려를 위하여 직원 출장시에는 보국대의 상황을 시찰
하도록 독려한다.
(마) 본 시설의 교육적, 사회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본부에서는 보국대 지도 관계자의
실수요를 계획 중이다.
키워드
지나사변 1주년, 국민정신총동원운동, 12세부터 만40세까지, 참가 범위와 조직, 봉사
사항, 실시방법, 시설의 조성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70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5
제목
京畿道의 勤勞報國隊 三萬男女學生運動 來廿一日에 朝鮮神宮에 參集 盛大한 結成式擧行
(경기도의 근로보국대, 3만 남녀 학생 동원, 오는 21일에 조선신궁에 참집, 성대한
결성식 거행)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8년 07월 01일
기사위치
및 크기
4면 / 제목 4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즐거운 여름방학은 얼마 안 남았었는데 이번 방학은 '총후를 지키는 학생들의 여름방
학'이라는 표제 아래에 학교근로보국대라는 이름도 씩씩한 단체에 전부 가담하여 국가
적인 사업에 땀을 흘리는 봉사를 하게 되었다 함은 이미 보도한 바와 같다.
그리하여 오는 7월 20일 방학날부터 학생층은 전부 동원이 되는데, 경기도에서는
오는 21일 조선신궁 광장에 근로보국대에 참가할 3만여 학생이 모여 신 앞에서 씩씩한
팔다리를 걷어 올릴 맹세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30일 오전 10시부터는 경기도 내 18개교 남녀사립중등학교 교장을
도청으로 소집하고 각 학교의 계획과 이에 대한 지시를 하였다. 이번 경기도 내에 남녀
중등학교생으로 이 근로보국에 참가할 학생은 3만 명가량이고, 일할 장소는 용산 육군
연병장, 남산 주회도로, 육군병원 등을 비롯하여 그 외에 간단한 도로, 토목 공사장에
나아가 일을 하게 되리라고 하며, 상세한 내용은 방금 각 학교별로 배정하는 중이다.
키워드
학교근로보국대, 경기도 내 18개 남녀 사립 중등학교, 3만 명, 용산육군연병장, 남산주
회도로, 육군병원
7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6
제목
進め·學生勤勞隊, ペンをシヤベルに新校舍と運動場の地均し奉仕, けふ高商と醫專で
(전진하라 학생근로대, 펜 대신 삽을 들고 신교사와 운동장의 땅고르기 봉사, 오늘 경성
고상과 의전에서)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8년 07월 15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4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前略) 견인지구, 곤고결핍을 익숙해져 극복한 학생 생도의 근로보국은 무더위의 휴
가를 기하여 일제히 개시하였는데, 조선의 전문학교는 7월 11일을 시작으로 모두 개시
했다. 비가 걱정스럽지만, 각 학교는 근로보국대를 조직하여, 땀을 체험하는 진충보국
정신을 길러 어떠한 국난도 극복할 청년 학도의 의기는 대단하여, 13일은 아침 일찍부터
경성부 외 청량리 종암리의 고상(高商) 이전지에 교장을 필두로 60여 명의 고상 학생은
펜 대신 삽으로 바꾸어 들고 보기에도 늠름한 구릿빛 상체로 자갈을 운반하는데 여념이
없다. 뚝도(纛島)면 구의리의 경성의전 근로보국대가 작업한 것은 직원 10명, 학생 160
명이 운동장의 땅고르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진은 신교사 부지 땅고르기에 땀흘리는 경성고상 근로대]
키워드
경성, 인천, 개성, 일본, 조선신궁, 경성고상, 경성의전, 청량리, 뚝도면 구의리, 종암리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7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7
제목
京畿道六千中學生 每日, 六時間勤勞報國 男子는 土木, 女子는 淸掃作業 二十一日부터 十
日間 /動員數와 作業地別
(경기도 6천 중학생 매일, 6시간 근로보국 남자는 토목, 여자는 청소작업 21일부터
10일간 / 동원수와 작업지별)
출
전
신문명
동아일보 [ 東亞日報 ]
발행일
1938년 07월 15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4단, 기사 6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전략)
사변 하의 학생근로작업은, 오는 21일부터 경기도 관하 남녀 중등 22개교는 남녀
4, 5학년생도 6,321명이, 21일 작업 개시.
남자 중등 20개교 생도 4,449명 380반(班)은 주로 토목공사, 여자 중등 12개교
1,882명 92반은 신사 경내의 청소작업을 담당하여 하루 약 6시간 10일간 근로작업을
마칠 예정이라 한다.
-동원수와 작업지별-
작업에 관한 구획과 각 학교 인원 배치는 다음과 같다.
▲남자중등학교
경 중 409 (조선신궁 옥석 닦기, 용산육군병원 운동장 건설)
73
경복중 200 (용산육군 병원 운동장 조성)
선린중 200 (동상)
용 중 260 (조선신궁 옥석 닦기, 용산 연병장배수구 파기)
경기상 187 (동상)
양정중 205 (동상)
배재중 340 (동상)
경기중 370 (돈암정 도로개수공사)
경 상 190 (돈암정 도로개수공사)
보성중 190 (동상)
휘문중 270 (동상)
중앙중 267 (동상)
동성상 121 (동상)
대동상 200 (동상)
중동학교 180 (동상)
경신학교 125 (동상)
개성상 110 (송악산 항공등호 도로개수공사)
송도중 260 (개성부내 도로 및 하천 수리공사)
인천상 182 (주안 염전 제방 수리 및 청태 제거 및 체취작업)
인천중 20
▲여자중등학교
1고여 400 (남산일대 □경 청소작업 군용겨울옷 재봉)
2고여 400 (동상)
경기여 155 (동상)
용곡여 155 (동상)
숙명여 155 (동상)
진명여 85 (동상)
이화여 100 (동상)
배화여 85 (동상)
동덕여 114 (동상)
정신여 85 (동상)
인천여 105 (인천신사 경내 청소 군용겨울옷 재봉)
호수돈여 100 (개성신사 신사 청소 군용겨울옷 재봉)
키워드
경기도 관하 남녀 중등 22개교, 남자 중등 20개교 생도 4,449명 380반(班), 토목공사,
여자 중등 12개교 1,882명 92반, 신사 경내의 청소작업, 6시간 10일간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7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8
제목
學生·生徒たちの力强き勤勞報國, 休暇を利用して奉仕
(학생·생도들의 힘찬 근로보국, 휴가를 이용해 봉사)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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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38년 07월 16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비상시의 인식과 총후 청년의 각오의 강화를 목적으로 부내 각 전문학교 중등학교에
서는 하기 휴가를 이용하여 학생, 생도의 근로봉사를 하기로 했는데, 각 학교모두 용감
하게 봉사 할 날을 대망하고 있다.
기간은 일주일에서 10일간으로, 이미 결정된 것은 경성의전이 11일부터 16일까지
광장리(廣壯里)운동장 기초 공사를 하고, 경성약전은 13일부터 17일까지 78연대 뒤쪽
도로수리, 경성고상은 13일부터 19일까지 청량리 학교 기지의 기초공작, 세브란스의전
은 8일부터 22일까지 김포 도로수리에 나서고, 그 외 경성고공, 경성고농, 경성중학,
용산중학 등도 비슷한 근로를 할 것이다.
키워드
경성의전, 경성고상, 청량리학교, 세브란스 의전, 경성고공, 용산중학, 경성중학, 경성고농
75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09
제목
非常時克服意氣로 男女學徒愛汗奉公 全鮮中等以上學校가 一齊動員하야 學園勤勞報國熱
高潮化
(비상시 극복 의기로, 남녀 학도 애한봉공, 전 조선 중등 이상 학교가 일제 동원하여,
학원 근로보국열 고조화)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8년 07월 17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기사 6단
신문기사
원본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76
기사
주요내용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기도 장하게 젊은 학도의 굳센 정신을 배양하고 노동
의 실제를 체험하는 학생 생도 근로보국대는 전 조선 각도에서 각각 그 지방의 실정에
맞는 계획을 세워 불볕더위를 극복하고 괭이와 삽을 손에 쥐고 대지와 친하고 있는데
이후 각 학교별로 근로보국운동 상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대학, 전문
경성제대생 302명은 7월 1일부터 일주일 동안 운동장 터닦기와 부전고원 도로공사,
개성 약초원 손질 등을 하였고, 경성의학전문 전교 생도는 학교 마당 정리공사에 종사
중이며, '세브란스'의 전생도 233명은 비행장 터닦기와 부속병원 실습으로, 연희전문생
473명은 야구장과 '아이스호케(아이스하키)'장 터닦기 공사로, 보성전문 생도 150명은
학교 뒷산 길 닦기에 종사하는 등 그 외로도 관·사립을 합하여 총원 약 3,600명이
동원되었고,
▲사범학교
경성사범생 190명은 창경원 연못 파기와 신궁 광장의 조각돌 갈기, 기타 도 공사로,
경성여자사범 560명은 용두정 신교사 터를 닦을 터이며 대구, 평양, 광주, 함흥 각
사범과 공주여자사범을 합하여 약 2,600명이 동원되고,
▲중등학교
그다음 남녀 중등학교의 계획을 각 도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 남자 20교 여자 12교 합 32교의 총인원 약 9,510인이 동원되었고
【충남】 대전중학의 180명, 대전여고의 198명을 필두로 도내 10개교 중 1,103명이,
주로 남자는 하천공사를 하고 여자는 도로와 공원의 풀베기, 군대의 보조작업,
수예 실습 등으로 대체로 7월 하순경부터 실시할 터이고
【전북】 전주남중학의 203명, 이리농림의 218명을 필두로 7월 하순경부터 8월 상순경
까지 14교의 생도 1,621명이 참가할 터이고
【경남】 부산중학의 245명, 부산여고의 306명을 필두로 전도 내 12교 1,706명의 생도
가 참가하고
【황해】 전도 5교 371명이 18반에 나누어 7월 하순에 활동을 개시할 터이고
【평남】 관내 12교 평양 제2중학의 796명이 평남 각 도로공사에 종사하는 것을 비롯하
여 약 3,000명이 7월 하순부터 8월까지 활동을 할 터이고
【함남】 전도 16교 1,992명이 87반에 나누어 7월 21일부터 30일까지 일제히 각 지방에
서 적당한 노동에 종사할 터이고
【함북】 나남중학의 440명, 청진여고의 421명을 비롯하여 전도 11교 2,216명이 7월
상순부터 8월 상순에 걸쳐 활동을 할 터이다.
키워드
경성제대, 경성사범학교, 대전 중학, 대전여고, 전주남중, 이리농림, 부산중학, 부산여고,
평양제2중학, 나남중학
7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0
제목
六千男女學生參集裡 勤勞報國隊結成式 京畿道內卅二校에 隊旗授與 朝鮮神宮前의 壯觀
(6천 남녀학생 모인 가운데 근로보국대 결성식 경기도 내 32교에 부대기 수여 조선신궁 앞의 장관)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8년 07월 22일
기사위치
및 크기
4면 / 제목 4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귀한 땀을 나라에 바치자!』고하는 굳은 신념 아래 전 조선은 일제히 학교근로보국대가
결성되고 있는 이때, 경기도 6,331명 근로보국대의 결성식도 31일 오전 7시 반에 조선
신궁 대광장에서 장엄하고 성대하게 거행하여 6천여 명 대원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이날 모인 대원은 멀리 개성, 인천 등 각부와 경성 내 남녀중등학교생도 등 씩씩한
얼굴에 구슬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정각 전에 정렬해 서자 국기 게양으로부터 식이 시작
되어 국가합창, 황거요배, 그리고 경기도 학교근로보국대 본부장인 간자(甘蔗) 지사로부
터 훈시가 있었고, 계속하여 시오바라(鹽原) 학무국장으로부터 힘찬 고사가 있었다.
그리고 일동은 힘찬 목소리를 가다듬어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고 본부장으로부터
경중 이외 32대에게 근로보국대기를 수여하여 이른 아침 조선신궁에 힘찬 근로애국의
행진을 장엄하게 전개시켰다. 그리하여 유량한 악대에 발을 맞추어 각 대오는 작업장으
로 돌진을 하니 지축도 흔들리는 듯 땀의 근로행진은 각 공사장으로 옮겨져 오전 8시
조금 지나 식을 마쳤다.
이와 같이 하여 남녀 6천 3백여 명은 각 학교 중심과 조선신궁과 각 학교 정원 청소작
업 등 10일간 매일 6시간씩의 근로에 인고단련 힘찬 몸을 굳게 하여 비상시 학생으로서
약동하는 힘을 기르게 되었다. (사진은 본부장으로부터 대기를 수여하는 광경)
키워드
인천, 경성, 남녀중등학교생, 학교근로보국대 본부장 간자(甘蔗) 지사, 시오바라(鹽原)
학무국장, 경중 이외 32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78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1
제목
學生勤勞報國隊一齊猛活動開始, 銃後學生意氣昻し
(학생근로보국대 일제히 맹활동 개시, 총후 학생 의기 드높아)
출
전
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38년 07월 22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4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21일부터 각 중등학교는 일제히 여름 휴가에 들어갔지만, 비상시국인 총후의 청소년도
한가하게 있을 수 없기에 21일 경성사범, 경성중학, 용산중학, 경기상업, 경성상업, 선린상
업, 경성공업, 경기공업, 성동중학, 경기중학, 경복중학, 경성제1고여, 경성제2고여 그 외
도내 각 중등학교의 4, 5학년은 다음과 같이 각 방면으로 10일간 매일 아침 8시부터 4시간
내지는 5시간 근로보국대를 결성하여 무더운 여름 땀을 흘리며 곡괭이, 삽을 들고 활약하였
는데, 조선신궁의 울타리 청소에는 경성상업 외 각 학교, 남산 주회도로 구축, 용산 육군병
원 운동장 건설에는 경성중학 외 각 학교, 용산 연병장 배수구 개수공사에는 용산중학
외 각 학교에서, 여자는 남산 신역(神域) 청소, 군수 재봉을 돕는데 종사하였다.
또, 3학년 이하의 학생들은 각 자교에서 근로에 종사하는 학생 보국대의 남자 중등학교
4천 명의 건아들은 조선신궁 울타리 청소를 시작으로 육군병원 하수구 준설, 그 외에 힘을
쓰는 노동에 봉사하고, (중략) 여자 중등학교 생도도 여성스럽고 부지런하게 군용품 재봉과
그 외 청소 작업에 종사하였다.(중략) 무더위 30도를 넘는 괴로움과 쓰라림 속에 근로보국
의 노무를 개시하였다. 이 봉사는 21일부터 30일까지 10일간 무보수로 하며, 보수가 있더
라도 전부 국방헌금으로 내기로 했다.
-창경원 내의 연못 청소를 위한 물고기 어획-
(전략)창경원 내 식물원 앞의 연못을 이번에 수선하기로 되었는데, 사범학교학생근로보
국대의 도움으로 연못을 수동 펌프로 물을 빼냈고, 1척 6~7촌 정도의 잉어 3마리, 6~7촌
정도의 붕어가 너 말들이 통(약 72리터 : 역자주) 2개, 그 외에 장어, 자라 등 약 20여
관의 물고기를 어획하였다. (사진은 연못 청소를 위한 물고기 어획)
키워드
경성사범, 경성중학, 용산중학, 경기상업, 선린상업, 경성공업, 경기공업, 성동중학, 경
기중학, 경복중학, 경성제1고여
79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2
제목
京畿各郡勤勞報國隊 工事場으로 總進軍 廣州、利川서는 벌서 出動姿勢 勞力奉仕에 邁進!
/ 勤勞報國隊에 隊旗를 遂附送
(경기 각 군 근로보국대, 공사장으로 총진군, 광주, 이천서는 벌써 출동 자세,
노력봉사에 매진! / 노동보국대에 대기를 마침내 보내)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8년 07월 23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2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지난 6월 20일 경기도 내에서 처음 조직된 여주의 근로보국대는 그 후 군내 각 토목공
사와 기타 공공사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등 조직 이래 혁혁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중앙선 철도공사장에 150명의 대원이 대거 진군하여 활발한 애한 봉사의
좋은 결과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여주 근로보국대 활동의 결과가 좋음으로 이번에는 광주에서 300명, 이천
에서 150명의 대원이 이 중앙선 철도공사장으로 나아가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로 하고
바야흐로 지금 출동 대기 중에 있다고 한다. 이같이 경기도 내 각 군에서 조직된 근로보국대
가 착착 실제 노동 장소에 진군하는 것은 이것이 전 조선적 효시라 하여도 당국에서는
앞으로 3부 20군에 조직된 근로보국대를 실제 노동장으로 출동하게 하여 노동 봉사의
신념을 가지게 함으로서 장기 항전에 대처하는 인식을 견고하게 하리라고 한다.
-노동보국대에 대기를 마침내 부송-
별항과 같이 경기도 내에 조직된 국민정신총동원하의 근로보국대는 실제 공사장에
나아가 국가를 위한 노력 봉사에 굳건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거니와 여기에 진군하는
전 대원의 사기를 고취하고 유쾌한 기분으로 진군을 하기 위하여 대기를 제정하기로
하였다 함은 이미 보도하였거니와, 이것이 제작되었음으로 지금 22일 전 군(郡) 근로보
국대에게 이것을 부송하여 영예의 대기를 선두로 힘찬 진행을 공사장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키워드
여주, 광주, 이천, 중앙선 철도공사장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80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3
제목
私達の學校は私達の汗で, 京城女子師範の勤勞報國
(우리들의 학교는 우리들의 땀으로, 경성여자사범의 근로보국)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8년 7월 24일
기사위치
및 크기
7면 / 4단 상당,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경성여자사범학교에서는 22일에 『경성여자사범근로보국대』의 결성식을 거행하고, 23
일 아침 6시 반에 기숙사에서 전원 도보로 용두정의 신교사 부지로 가서 아침 8시부터
3,600평 부지의 땅고르기 작업에 나섰고, 계속해서 교정을 만드는 근로보국 봉사를
일주일간 더 하기로 했다.
키워드
경성여자사범 근로보국대, 용두정 신교사
8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4
제목
南總督の激勵に學生勤勞報國隊大元氣
(미나미 총독의 격려에 학생근로보국대 큰 힘)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8년 07월 26일
기사위치
및 크기
7면 / 제목 2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폭염을 극복, 불볕더위에 봉사 노동을 계속해서 학생근로보국대는 부 내외의 각 작업
외에 분산하여 땀의 근로봉사에 임하고 있는데, 미나미 총독은 지난 22일 용산 연병장의
작업 현장 시찰을 이어 나가며 25일은 오전 8시 반 간자(甘蔗) 경기도지사 등을 따라
조선신궁 역(域)에서 옥석 닦기와 청소작업에 정진하면서 부내 남녀중등학교 생도 작업
상황을 시찰하고 격려하고 오후 2시부터 동소문 외의 도로 공사에 종사하고 있는 경기
중학 외 8교의 근로보국대를 시찰하여 격려하였다.
키워드
미나미 총독, 용산 연병장, 조선신궁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8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5
제목
炎暑もものかは運動塲開設等等, 京中生徒の勤勞奉仕
(혹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장 개설 등등, 경중 생도의 근로 봉사)
출
전
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38년 07월 31일
기사위치
및 크기
4면 / 제목 3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경성중학교에서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바로 근로봉사를 실행하고 4, 5학년은 육군
병원 운동장 개설, 3학년이 하는 교정에서 스탠드 □조에 종사하고 운동장이 만들어졌고,
학교에도 훌륭한 스탠드가 구축되었다. 혹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활동하여
경중 스피릿(정신)을 발휘하여 봉사하였고 (후략)
키워드
경성중학교, 육군병원 운동장, 교내 스탠드
83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6
제목
京城工業の献金 (경성공업의 헌금)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8년 08월 01일
기사위치
및 크기
1면 / 제목 1단, 기사 1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올해 봄 신설된 경성공립공업학교는 1학년 182명뿐으로 지난번 경기도에서 도내
각 중등학교 4학년 이상으로 결성한 경기도 학생근로보국대에는 참가 못했기 때문에
가쓰키(甲木) 교장 이하 직원 12명과 전교생도 182명이 한마음이 되어 21일부터 25일
까지 영등포번 대방정(大方町)에 신축 공사 중인 동교 부지 땅고르기 공사에 종사하며
땀 흘려 작업하였다. 공사청부인에게 임금으로 200원을 받았는데, 동교에서는 이것을
국방 기재비로 헌금하기로 했다.
키워드
경기도, 경성공립공업학교, 경기도 학생 근로보국대, 영등포번 대방정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8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7
제목
學生勤勞報國隊作業狀况良好, 豫期以上の効果!
(학생근로보국대 작업 상황 양호, 예상 이상 효과!)
출
전
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38년 08월 13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6 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학무국 당국에는 지난 7월 24일부터 학무국원을 파견하여 지방학교 근로보국대 작업
상황을 시찰하였으며, 개황(槪況)은 다음과 같다.
(중략)
7월 하순경까지 실시 및 종료의 상황과 참가학교 그 외 참가 총인원 17,802명(남자
10,594명, 여자 7,208명)에 달하고, 1교당 평균 약 190명에 달하고, 실시 중인 전북,
경북, 평북, 평남, 강원, 함북 6개도에서도 각각 예정 계획대로 실시 중이다.
◇경기도
남자 20교(5,050명) 조선신궁 옥석 닦기, 용산 연병장 배수구 파기, 돈암정 및 그
부근의 도로 개수, 주택지 땅고르기 공사, 용산 육군병원 운동장 신설 제방쌓기
(역자주) 및 도로공사(인천 및 개성의 학교)
여자 12교(4,000명) 남산 일대 신역(神域) 청소, 군대의 군용품에 관한 보조 작업
(셔츠 600매 재봉)
◇충청북도
남자 4교(230명) 오창, 옥산, 충주, 왕성의 사방공사
여자 1교(50명) 임업시험장, 농사시험장 제초작업
85
◇충청남도
남자 6교(705명) 대덕군, 연기군, 부여군의 하천공사 및 축제작업, 자교 실습지 수리
및 가로수 손질 그 외 공공봉사 작업
여자 4교(398명) 재봉, 수예 실습, 부내의 도로 및 공원 수리, 폐기물 수집, 퇴비
제조, 군대 등의 보조 작업
◇전라남도
남자 9교(2,300명) 학교림 설치작업, 교지 정리 및 신축교사 정지작업, 도로개수,
실습지 수리 및 하천 제방공사, 목장 설정작업 및 양어지 설정작업, 항로표식
설치
여자 4교(1,000명) 신사 경내 청소, 폐기물 이용, 군용품 작업, 교내 미화작업, 설면
자(雪綿子:실을 켤 수 없는 허드레 고치를 삶아 펴서 만든 비단솜(역자주)) 작업,
군수제작 재봉
◇경상남도
남자 5교(978명) 임간도로 및 농용 도로 개설, 실습지 개간, 도로개수 및 학교림
손질
여자 7교(728명) 교내 실습지 손질, 신사경내 청소 공익에 관한 작업
◇황해도
남자 2교(250명) 도로개수공사
여자 3교(121명) 자교 정지 및 제초, 농사 시험장 제초, 임업시험장 제초, 공설운동장
제초, 정지
◇함경남도
남자 10교(1,081명) 운동장 땅고르기 및 정리, 시가 계획 땅고르기 공사, 도로개수
공사 및 비행장 땅고르기 공사, 개수 토사 운반
여자 6교(911명) 공원도로신설 작업, 자교운동자 정비 및 정지, 청소, 제초, 임간
도로, 자교림 송충이 구제, 병원용 봉투 제작 등의 작업
키워드
전북, 경남, 평북, 평남, 강원, 함북, 경기도, 용산 연병장, 인천, 학생근로보국대, 조선신궁,
용산 육군병원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86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8
제목
小學, 中學生 總動員 “勤勞報國”每月實施 京畿道서 通牒發送
(소학, 중학생 총동원 “근로보국” 매월 실시 경기도서 통첩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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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동아일보 [ 東亞日報 ]
발행일
1938년 09월 08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4단, 기사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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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주요내용
경기도 내의 학교 근로보국대 하기 근로봉사는 예상 이상의 좋은 성적을 얻었는
바 금후도 근로보국의 정신을 함양시키는 의미에서 매월 6일 즉 애국일을 택하여 학생
들의 근로 작업을 영속적으로 행하기로 되어 도 학무과에서는 관하 각종 중등, 초등학교
에 이 뜻을 통첩한 바 있었다.
이에 의하여 다음 6일부터 도내 일제히 실시할 터인데 작업 종류는 도시지대는 도로수
선, 농촌에 있어서는 농작의 조력 등으로 실생활에 접촉하게 할 터이고 가급적으로
생도 전체를 동원하게 할 방침이라고 한다.
키워드
학교 근로보국대, 도시지대 도로수선, 농촌 농작 조력
8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19
제목
勤勞奉仕で井戶調べ, 藥專校學生(근로봉사로 우물 조사, 약학전문학교 학생)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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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8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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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 / 제목 2단, 기사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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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주요내용
비상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경성약학전문학교에서는 근로보국대를 결성하고,
18일부터 4일간 교수 및 학생을 총동원하여 전문적으로 부내 약 800여 공동 우물의
수질 조사를 시행하고 음료수로 적합한지 혹은 여과 내지는 펄펄끓임(역자주)에 의해
음료로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밀 조사를 하고 과학적 지도를 시행한다.
근로대는 야스모호 대장 밑에 본부 및 지도부를 설치하고 180명 학생을 조사계,
시험계, 정리계로 나누어 이시다 교수 지휘하에 부내 각지의 수도를 조사하고, 스즈키
교수의 지도로 시험계는 우물물 각각 면밀한 수질 실험을 시행, 정리계는 수기로 성적을
기록 분류하고 전원 일치하여 근로 봉사를 실시.
18일 오전 9시에 교정에서 집합하여 결성식을 시행하고, 19일을 제외한 22일까지
4일간 매일 오후 4시까지 대학의 약수(藥手)들이 70만 부민의 생명에 있어 한층 단단한
성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키워드
경성약학전문학교, 우물 수질검사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88
2) 1939년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0
제목
全鮮學生十萬名動員 國策에 밧치는 방울 남녀 중등학교 三학년 이상과 전문대학 등
동원 今年에도 學生勤勞報國隊
(전 조선 학생 10만 명 동원, 국책에 바치는 땀방울, 남녀 중등학교 3학년 이상과 전문대학
등 동원, 금년에도 학생근로보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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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9년 06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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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 / 제목 2단, 기사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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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내용
지난번 총독부에서 개최되었던 각 도 학무과장 회의에서는 학생들의 근로작업을
정규교과로 결정하고 하기휴가에 실시하는 것은 물론 휴가가 아닌 때라도 일정한 시간
을 작정하여 귀한 땀을 흘려 힘찬 노력을 나라에 바치는 귀한 정신을 함양하도록 하였
다. 이같이 학생들의 근로작업은 국책적인 점에서도 상당히 가치있는 일이라 하여 각
도에서는 곧 이것을 실시할 터인데, 특히 이번 여름방학에는 규율있는 작업과 통제
있는 노력을 움직이게 하고자 각도 학무과에 대하여 학생을 움직일 수 있는 수효와
그 노력을 집중시킬 국책적인 공사를 조사하게 하여 방금 각도로부터 이 보고가 들어오
고 있는 중인데 경기도 같은 곳을 보면 중등 남녀 학교에만 3학년 이상 1만 2,3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숫자로 보아 전 조선에서 남녀 중등학교 3학년 이상으로 동원될 학생들의 근로보
국대는 10만 명가량이 되리라 하며, 이 10만 명의 귀한 노력을 국책적인 공사로 집중하
여 생산력 확충에 부족한 노력을 보충하게 하리라고 한다. 그리고 공사는 주로 국민정신
발양의 상징인 신사 경내를 수리한다든지 육군병원에 가서 일을 하는 것 또는 산금도로
등의 수축, 기타 손이 부족한 공사장으로 진군시켜 대대적으로 활동하게 할 터인데
기일은 7월 30일 방학 때로부터 시작하여 8월 20일 개학 때까지 적당한 시일을 택하도
록 하리라 한다.
키워드
학생들의 근로작업, 학무과, 경기도 중등남녀학교 3학년 이상 1만 2,300여 명
89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1
제목
第一着神宮奉賛殿擴張 学生・生徒・青年團勤勞隊出動
(제1착 신궁 봉찬전 확장, 학생·생도 · 청년단근로대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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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9년 06월 04일
기사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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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별항과 같이 전 조선적으로 학생들의 근로운동을 발흥시켜 '땀의 봉사'를 국책에 바치도
록 하였는데 우선 제1착으로 경성 시내에 있는 대학·전문 학생과 청년단, 기타 중학생들이
조선신궁 봉찬전에 출동하기로 되었다. 이 봉찬전은 현재 면적이 400평밖에 안 되는데
여러 가지 행사가 이곳에서 많이 거행됨에 따라 협착함으로 이번에 이것을 850평으로 늘리
게 되었으므로 이리로 1만여 명 학생들의 근로보국대를 제1차로 출동시키자는 것이다.
이 봉찬전 확장공사는 오는 10월에 거행할 대제(大祭)까지 완성시켜야 하므로 시급히
이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오는 6월 5일 아침 9시에 작업현장에 공사 착수식과
지진제(地鎭祭)를 집행한 후 공사는 7월 1일부터 시작하여 8월 24일까지 시행할 터이
며, 매일 아침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 한 번, 다시 오후 1시부터 4시 반까지 한 차례,
하루 두 번씩 일을 하기로 하였고, 중학교에서는 7월 21일부터 8월 20일까지 작업하기
로 하였다. 이제 각 학교의 근로 일정과 학교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7월 1일 대학 (150명) ▲2일 법전, 중전 (150명) ▲3일 청년단 (미정)▲4일 보전
(150명) ▲5일 연전 보전 (150명) ▲6일 연전 (150명) ▲7일 청년단 (?) ▲8일 고상
(150명) ▲9일 청년단(?) ▲10일 대예 (150명) ▲11일 대예 (150명) ▲12일 의전 (150
명) ▲13일 세전, 광전 (150명) ▲14일 약전 (150명) ▲15일 치전(齒) (150명) ▲16일
고공 (150명) ▲17일 경성공업 (150명) ▲18일 19일 20일 경성사범 (450명)
키워드
조선신궁 봉찬전, 제1착 출동, 400평에서 850평으로, 봉찬전 확장공사, 하루 2번, 7월
21일부터 8월 20일까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90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2
제목
學園에서 工事場에로 三萬學生隊動員! 今日부터 勤勞奉仕修業/ “向上의 林間”에 學生隊
들이 勤勞工事
(학원에서 공사장으로 3만 학생대 동원! 오늘부터 근로봉사수업/ “향상의 임간”에 학생
대들이 근로공사)
출
전
신문명
동아일보 [ 東亞日報 ]
발행일
1939년 07월 22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4단, 기사 7단
신문기사
원본
91
기사
주요내용
근로봉사를 통하여 체력의 향상과 인고단련의 정신을 기르며 부족한 노동력에 봉사
하는 학생 생도 아동의 근로작업은 기보와 같이 21일 방학 첫날부터 일제히 개시되었다.
중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 남녀 학동과 전문대학생들 외에 특히 소학교 4, 5, 6학년
아동까지 동원되는데, 경성을 비롯하여 개성 인천 등지를 합치면 중등학교 남녀 2천
8,9백명에 달한다.
서빙고에서 모래파기, 육군묘지의 확장공사, 연병장 공사, 조선신궁 확장공사 등을
□리로 장충단, 효창원 사직단 공원 등의 도로공사와 노량진에서의 하이킹 코스의 수리
신설 등이 있고, 인천에서도 염전작업, 개성에서는 주회도로 공사 등을 실시하여 앞으로
10일간 계속한 후에 본격적 방학을 할 터인데, 청량리에다 경성보도연맹에서 개설하는
향상의 임간 건설 작업에는 보성중학 등 3백여 명이 10일간 계속 작업한다.
초등학교는 4, 5, 6학년 아동이 교내 작업을 하는데, 약 7만 명이 움직여서 풀뽑기
등을 하는데, 3일간으로 학교에 따라 실시날짜는 일정하지 않다. (사진은 근로봉사하는
학생대의 이모저모)
-“향상의 임간”에 학생대들이 근로공사-
경성부 내 초등, 중등 10만의 아동생도들을 위하여 이왕직에서는 청량리 임업시험장
부근 울창한 송림과 약수가 흐르는 홍릉 일대 1만 7천여 평을 사용대부하고 이에 총독부
에서 빌린 것을 합하여 4만여 평의 임간을 경성보도연맹에서는 이를 “향상의 임간”이라
명칭하고 여기에 학생생도들의 낙원을 건설하기로 착수하여 5개년에 완성시키기로 방
침을 세웠다. 그 내용은 제1년도인 금년에는 풀뽑기, 청소작업 외에도 도로의 개설과
현재 있는 빨래터를 옮겨서 설치하고 여기에다 80미터 평방의 아동의 풀을 개설하고
이 개설사업에는 학생근로 보국대가 활동을 하는데, 명년도부터는 하숙생활자 2백 명을
수용할 집과 이것을 확충시켜 3, 4년 후에는 천 명을 수용할 집으로 늘려가는 동시에
임간 도서관, 임간 박물관, 스켓장 등을 설치하는데 여기에 경비 약 100만 원을 예상하
고 자원에 대하여는 뜻있는 학부형과 사회의 유지에게 손을 빌기로 되었다.
키워드
근로봉사, 중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 서빙고 모래파기, 육군묘지 확장공사,
조선신궁확장공사, 소학교 4, 5, 6학년 아동동원 7만 명, 풀뽑기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9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3
제목
南總督勤勞學生隊激勵 (미나미 총독 근로학생대 격려)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9년 07월 27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1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중등학교에서는 여름 방학 시작과 동시에 일제히 각지에서 근로봉사를 시행하고
있는데, 미나미 총독은 육군 묘지 확장 공사에 땀의 봉사를 하고 있는 경기중학, 경성상
업, 경기상업의 각 생도 천명의 작업상황을 시찰하기 위해 27일 오전 8시 25분 묘지를
방문한 후, 용산 연병장에서 봉사작업을 하고 있는 양정, 보성 두 중학교 학생 약 500명
을 각각 격려하였다.
키워드
미나미총독, 경기중학, 경성상업, 경기상업, 양정중학, 보성중학
93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4
제목
炎天下에 勤勞突進 南總督도 大滿足 今日中等學生數千名이 作業
(불볕더위 아래 근로 돌진, 미나미 총독도 대만족 오늘 중등학생 수천명이 작업)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新報 ]
발행일
1939년 7월 28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4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내용요약
27일 8시 반에 미나미 총독은 왜성대 관저에서 나와 용산육군묘지에서 경성사범,
경성중학, 경성상업의 생도 약 1,200명이 불볕더위 아래 땀흘리며 근로보국작업하는
것을 보고, 경성중학교장의 작업보고를 들었다. 그 후, 연병장으로 가서 양정중학과
보성중학 생도 약 1,000명이 땀흘려 일하는 것을 시찰하고 양중중학교장의 보고를
듣고 백아관(白堊館, 조선총독부 건물: 역자주)으로 등청했다.
키워드
미나미 총독, 경성사범, 경성중학, 경성상업, 양정중학, 보성중학, 근로보국작업, 용산
육군묘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9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5
제목
『男らしい色だ』と, 南總督學生勤勞隊激勵
(『남자다운 색이다』라고, 미나미 총독 학생근로대 격려)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9년 07월 28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27일 아침 8시 반, 미나미 총독은 시오바라(鹽原) 학무국장, 곤도(近藤) 비서관, 간자
(甘蔗) 도지사, 고(高)경찰부장 등을 거느리고 경성 이태원정 육군묘지 및 연병장의 황무
지에 지난 21일부터 삽, 곡괭이, 삼태기 등을 들고, 전시하 체력 양성으로 땀을 흘리는
중등학교생 2,500명의 근로부대를 시열하고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상반신을 드러낸
경성사범, 도립상업, 경기중학, 경성상업의 생도는 육군 묘지 참도 수리, 개조, 묘비
뒤편의 송충이 퇴치 등을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묵묵하게 해냈다. 근육이 울퉁불퉁
솟은 양팔뚝, 굵은 목이 며칠간 땡볕에 그을린 덕에 빛나고 있었다. 말을 탄 총독 일행은
작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육군묘지로 가는 오르막길을 올라가서 『응, 잘하고 있군』이라
고 미소지으며 『색깔이 상당히 남자다워졌군』라고 하였다. (후략)
키워드
미나미 총독, 시오바라(鹽原) 학무국장, 곤도(近藤) 비서관, 간자(甘蔗) 도지사, 고(高)
경찰부장, 경성사범, 경기중학, 경성상업, 도립상업
95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6
제목
殊勳甲夏季學生勤勞隊, 難關二キロ拓き見事な愛國道路, 大東商業汗の奉仕
(수훈갑 하계학생근로대, 난관 2킬로미터 개척한 멋진 애국도로, 대동상업 땀의 봉사)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39년 07월 31일
기사위치
및 크기
7면 / 제목 4단, 기사 7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부내 대동상업학교 생도의 근로봉사단이 한강 건너편 흑석정에서 상도정을 거쳐
시흥군 동면 봉천리에 이르기까지 2킬로미터 산업, 관광, 등산의 세 가지 목적을 가진
도로를 29일 완성시켜 30일 오후 1시 반에 성대하게 개통식을 가졌다.
(중략)
대동상업에서는 지난 21일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동시에 전교생도 300명을 동원하여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6시간 동안 현기증이 날 정도의 무더위에서 소중한 근로
로 땀을 흘린 10일간 학원 총협력으로 자동차와 트럭도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훌륭한 도로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중간의 5, 6군데 산 중턱을 사이 앞뒤를 개간하여
난관을 정복하고 그 위에 깔끔하게 잔디 등의 식물을 심어 학생다운 배려를 길 위에 드러냈
다. 관악산으로 등산은 명수대를 가는 도중에 잘 닦인 길이 없어서 도중에 길을 잃거나
헤매는 등 고생했던 등산가가 상당수 있었지만, 이러한 학생 애국 도로 개통으로 산을
오를 때 걱정이 한 번에 사라졌다. 게다가 최근 관악산에서 금, 동, 텅스텐 등 시국에
중요한 역할을 할 광물도 잇달아 산출되었다. (후략) [사진=완성된 근로봉사 도로]
키워드
대동상업학교, 한강, 시흥군 동면 봉천리, 2킬로미터 도로, 자동차와 트럭도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도로, 산중턱 개간, 잔디심기, 관악산, 도로개통, 금, 동, 텅스텐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96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7
제목
勤勞作業을 맛춘 學生部隊歸省-昨夜에 京城驛出發
(근로작업을 마친 학생부대 귀성 - 어젯밤에 경성역을 출발)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39년 08월 01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여름방학 10일간 각 중등학교의 근로작업은 30일까지로 끝났다. 어젯밤 차로 그리운
고향을 찾아 남북으로 헤어졌다. 철도당국은 귀성열차를 따로 꾸리지는 못했으나, 각
선 열차에 특별 객차를 다는 작업을 하여 고향으로 가는 학생들을 수송해 주었다. 저녁
7시 35분 청진행, 9시 15분 경의선, 9시 45분 경부선. 각 열차에는 뙤약볕에 검게
탄 학생들이 경성을 떠나 고향으로 갔다.
키워드
중등학생, 경성역, 특별 객차, 청진행, 경의선, 경부선
9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8
제목
出征遺家族商店生徒の勤勞奉仕開始(출정유가족 상점, 생도의 근로 봉사 개시)
출
전
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39년 12월 19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제목 3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경성부 경기상업학교, 경성상공회의소 주최하에 경기상업학교 상급생 140명을 동원
하여 응소출정유가족 상점에 대해 연말 근로봉사를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시행하게
되어, 일동은 18일 오전 8시 조선신궁에 모여 황군무운장구기원을 하고 각각 배속된
상점의 청소, 고객서비스, 상품포장, 선물포장, 주문받기, 배달, 수금, 계산장 기입, 가게
입구 장식, 그 외 점원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수행하였다 (사진 : 근로상황)
키워드
경성부, 경기상업학교, 경성상공회의, 경기상업학교 조선신궁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98
3) 1940년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29
제목
젊은땀의奉仕隊여나오라 - 扶餘神宮御造營에 九萬餘名을 動員 學校에서 官廳에서
(젊은 땀의 봉사대여 나오라, 부여신궁 어조영에 9만여 명을 동원, 학교에서 관청에서)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0년 03월 16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1200년 전 내선일체의 역사적 고향인 부여에 관폐대사(官弊大社: 신사는 사격에 따
라 관폐대사, 국폐대사, 관폐중사 등으로 나누어짐. 당시 관폐대사는 경성의 조선신궁으
로 하나만 있었고, 이후 부여신궁을 관폐대사로 결정하여 짓기로 결정함. (역자주)) 부여
신궁을 조영하게 되었다 함은 여러 차례 보도한 바와 같은데 이 성지를 택하여 반도
통치사상에 새 기원을 긋는 이 사업에 전 조선적인 근로봉사작업을 전개시키기로 되어
이에 관한 협의회를 15일 총독부 문서과장실에서 열게 되었다. 이 회의에는 노부하라
(信原) 문서과장, 야규(柳生) 지방과장, 이(李) 사회 교육과장, 야기(八木)학무과장, 철도
국 운수과장 등이 모였는데 대체로 오는 5월부터 10월까지 6달 동안에 걸쳐 9만 명의
청년 남녀와 각 지방 각 관공서 청년단을 동원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하루에 500명씩을 신궁 조영 공사장에 내보내 흙을 파고 흙을 나르고 흙을 고르고
하는 신성한 '흙의 작업'을 하게 할 것인데 9만 명의 내역을 보면 정신총동원조선연맹을
비롯하여 각 도, 각 군, 각 부, 각 읍면, 기타 정동(洞)과 부락연맹으로부터 평균 한
사람씩을 나오게 하여 이 사람들 6만 2,000명, 또, 각 관공청, 은행, 회사, 공장, 각
청년단체 등으로부터 9,000명, 기타 중학교 이상 전문대학생 총수의 2할인 1만 9,000
명, 이렇게 도합 9만 명을 여기 근로작업으로 동원시킨다는 것이다.
근로작업은 강원신궁(橿原神宮) 조영 공사와 같은 형식으로 순전히 부대적 활동을
하게 하며 하루 500명씩이나 움직이는 대부대가 6달 동안 일하는 것이다. 총독부와
충청남도에서 이 작업을 총관할하리라고 한다.
키워드
부여신궁, 전조선, 총독부 문서과장실, 6개월 간 9만 명, 흙의 작업, 정신총동원조선연
맹, 부락연맹, 6만 2천명, 청년단체, 9천명, 중학교이상 전문대학생 1만 9천명, 총독부
와 충청남도 총관할
99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0
제목
힘차게 展開될 의 奉仕, / 移秧부터 積極協力 扶餘神宮, 護國神社等 勤勞作業에 이달부
터 男女學生 總動員
(힘차게 전개될 땀의 봉사, / 이앙부터 적극 협력, 부여신궁·호국신사 등 근로 작업에
이달부터 남녀 학생 총동원)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0년 06월 06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4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청년학도의 힘찬 기운으로 땀의 봉사를 할 근로작업은 이달부터 남녀 중등전문학교
학생도들의 총동원으로 각지에서 힘차게 전개된다. 전문학교는 이달까지로 제1학기가
끝남에 따라 7월부터 방학을 이용한 근로봉사 작업이 시작될 것이며 지방에서는 농번기
에 소학교 아동까지도 동원이 되리라고 하니 청년학도의 장한 의기는 국체에 의한 여러
사업에 유감이 없이 드러날 것이므로 그들의 귀한 땀이 열매 맺어질 것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크게 기대되고 있다.
해마다 농번기가 되면 학무국에서는 각 도에 통지하여 소학생들과 남녀 중등학교
생도들을 동원시켜 모심는 것을 돕도록 하였는데, 금년에도 역시 이달 중에 각지 농촌에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00
서는 모심기가 시작될 것이므로 이 기회에 남녀 학생 생도들을 동원시켜 농촌의 노력
부족을 보충하면서 직접 팔다리를 걷고 나서서 모를 심으라고 하였다. 특히 출정군인
가정의 농사짓는 것을 돌봐서 총후와 제일선이 흔연히 일치하도록 유의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는 여름방학에는 내선일체의 발상지인 부여에 관폐대사 부여신궁을 창설하
는 정지공사가 시작될 것이므로 여기에도 조선 각지의 학원을 동원시켜 거룩한 영지에
바치는 작업을 하여 한층 더 학생 생도들로 하여금 국체명징의 관념과 인고단련의 체험
을 쌓도록 하였는데, 부여신궁으로 동원될 학생 생도의 수효는 약 1만 9,000여 명에
달하리라고 한다.
또 국군의 영령으로 몸을 바친 군신(軍神)을 제사하는 호국신사는 이번 경성과 나남의
두 곳에 세워지게 되는데 여기에도 금년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학생 생도들의 근로봉사
에 의하여 두 곳의 정지공사를 하리라고 한다.
셋째는 금년부터 만주국으로 흥아 학생근로보국대를 처음 파견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는 전문학교 학생만을 파견한다. 한 학교에서 20명씩을 선발하여 만주국의 개척사업
혹은 군수 방면 근로에 보내 학생으로 하여금 만주 건국의 큰 정신을 체득하게 하고
선만일여의 아름다운 이상을 근로작업으로서도 표현하게 하리라고 한다.
이상과 같이 4가지 방면으로 학생 생도를 동원시킬 것이며 그 외에 각 남녀 중등전문
학교에서도 각각 특별한 계획을 세우라고 하였는데 이번 근로작업에 대하여 총괄적인
지시를 불일중 학무국에서 각 도에 보내리라고 한다.
키워드
농번기, 소학교 아동 동원, 부여신궁, 모심기, 정지공사, 호국신사, 만주국
10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1
제목
小學出身을 動員 總動員的 勞力補充에 各道社會課長會議에서 指示
(소학 출신을 동원, 총동원적 노동력 보충에 각 도 사회과장 회의에서 지시)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0년 05월 24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오늘부터 총독부에서 열린 각도 사회과장회의에서는 조선 내에서 동원해 쓸 금년도 노동
자의 수급 조절을 협의하는 한편 국가총동원이 되어 생산력 확충에 힘을 키우는 이때
소학교 졸업생까지도 될 수 있는 대로 노력 보충부대로 활약하자는 것이 지시되어 있다.
즉 조선에서 해마다 소학교의 교문을 벗어나는 어린 소년은 평균 11만 명, 이 중에 생활이
넉넉하여 상급 학교로 배움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은 총수의 1할밖에 안 되는 1만여 명,
그 나머지는 관공청, 기타 은행, 회사 그렇지 않으면 자기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관공청과 은행, 회사에 봉직하는 수효는 극히 적고 대개는 ‘가사에
종사 한다’는 명분으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 소년들이 많으므로 전시 하 노력 부족과
인적 자원이 모자라는 것을 생각해서라도 이들의 동원 활용은 극히 필요하므로 얼마 전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소학교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직업소개소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각 방면 산업 부문에 나아가도록 하라고 하였지만 지시대로 되어있지를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사회과장회의에서 '소학교 졸업자와 소년들의 직업 지도에 관한 것'을 상정
하여 협의했는데 앞으로 노동력의 절대 팽창에 따라 청소년 또는 일반 부녀자까지도 노력봉
사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으며, 소학 졸업생 중 불과 1할밖에는 상급에 못
간다는 이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생각해서 각 소학교에서는 적극적으로 직업소개소를 통하
여 졸업생의 취직을 알선할 것은 물론 소개소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그 관내에 이러한
'가사 종사자'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살펴서 국가총동원적 체제하에 너도 나도 팔 걷고
나서도록 소년층까지 동원해 쓰기로 새로운 방침을 세울 것이라고 한다.
더욱 앞으로는 「청소년고입제한령」이라는 것이 실시됨에 따라 청소년은 반드시 시국산
업에만 종사하게 될 것이므로 이들의 수량을 조사하여 그 활용 방침을 지금부터 조사하도록
유감없는 방법을 세우리라고 한다.
키워드
각도 사회과장회의, 노력보충부대, 소학교 졸업, 동원활용, 취직알선, 청소년고입제한령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0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2
제목
靑春部隊汗の奉仕, 男女中等學生一萬三千餘名總動員の勤勞作業
(청춘부대 땀의 봉사, 남녀중등학생 13,000여명 총동원 근로 작업)
출
전
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40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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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 크기
2면 / 제목 4단, 기사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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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주요내용
비상시국하에서 근로보국 정신을 함양하여 체위향상에 도움이 되고자 경기도 학무과
내에 있는 학교 근로보국대 지도본부에서는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여름방학을 이용
하여 8일간 경성, 인천, 개성의 남녀 중등학교 37개교 13,773명을 동원하여 다음과
같이 보국 근로 작업을 하였다.
▽경성중 590명(서빙고 성토작업, 교내 작업)
▽용산중 600명(호국신사 토목작업, 교내 작업)
▽경기중 590명(호국신사 토목작업, 교내 작업)
▽경복중 550명(야포대(野砲隊)사격장간(間) 연습 도로 구축)
▽성동중 277명(조선신궁 순시도로수리, 교내 작업)
▽경성상 337명(종암소학교 부지공사)
▽경기상 391명(호국신사 도로구축)
▽경성농 300명(농업실습)
103
▽양정중 315명(서빙고 성토작업)
▽보성중 357명(‘향상의 숲’도로 신설개수, 교내 작업)
▽배재중 461명(교내작업)
▽휘문중 451명(서빙고 성토작업, 교내 작업)
▽중앙중 438명(교내작업)
▽성남중 97명(조선신궁 옥석 청소 및 해충 구제)
▽선린상 315명(연병장 배수용 기둥 밑부분(亀腹溝) 준설, 교내 작업)
▽대동상 327명(서빙고 성토작업)
▽중동 340명(연병장 배수용 기둥 밑부분(亀腹溝) 준설)
▽경신 260명(교지 땅고르기 공사)
▽한성상 103명(교지 땅고르기 공사)
▽협성실 67명(교내작업)
▽경성공 400명(교내작업)
▽상업실천 100명(한남정 도로 수리)
▽경성원예 50명(조선신궁 임원(林苑) 간벌)
▽인천중 222명(인천신사 경내 토목작업 염전작업·사격장 토공작업)
▽인천상 278명(주안 염전 작업)
▽개성상 300명(개성신사 확장공사 도로개수)
▽송도중 480명(개성신사 확장공사 도로 하천 수리)
▽수원농 135명(농업실습)
▽제1고여 605명(군의봉제)
▽제2고여 619명(군의봉제)
▽여자실업 175명(군의봉제)
▽경기고여 309명(군의봉제)
▽여자실업 175명(군의봉제)
▽용곡고여 344명(군의봉제)
▽숙명고여 188명(군의봉제)
▽진명고여 215명(군의봉제)
▽이화고여 141명(군의봉제)
▽배화고여 210명(건빵봉지 봉제)
▽동덕고여 215명(군의봉제)
▽여자상업 150명(건빵봉지 봉제)
▽덕성여실 60명(군의봉제)
▽향상여실 56명(군의봉제)
▽정신여 100명(군의봉제)
▽경성여자기예 170명(건빵봉지 봉제)
▽창덕가정여 230명(건빵봉지봉제)
▽성신가정여 100명(조선신궁 건물 및 경내 청소)
▽인천고여 225명(군의봉제)
▽호수돈고여 223명(군의봉제)
키워드
경성중, 용산중, 경기중, 경복중, 성동중, 경성상, 경기상, 경성농, 양정중, 보성중, 배재중,
휘문중, 중앙중, 성남중, 선린상, 대동상, 중동, 경신, 한성상, 협성실, 경성공, 상업실천,
경성원예, 인천중, 인천상, 개성상, 송도중, 수원농, 제1고여, 제2고여, 여자실업,
경기고여, 여자실업, 용곡고여, 숙명고여, 진명고여, 이화고여, 배화고여, 동덕고여,
여자상업, 덕성여실, 향상여실, 정신여, 경성여자기예, 창덕가정여, 성신가정여, 인천고여,
호수돈고여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0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3
제목
汗に輝く若人, 炎天下,一萬七千の奉仕, 中等校の勤勞報國隊
(땀으로 빛나는 젊은이, 불볕더위 아래, 1만 7천의 봉사, 중학교의 근로보국대)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40년 7월 14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13,773명의 남녀노소들이 불볕더위 아래서 여름 휴가에 경기도 내의 남녀중학교
47교가 근로보국대를 조직하고, 남학생은 작업, 여학생은 군복을 제봉하거나 신사청소
의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7월 21일에서 27일까지 일주일간 하기로 했다.
경성중학교(서빙고 성토작업, 교내 작업), 용중(龍中)(호국신사토목작업, 교내작업,
경기중학교(호국신사토목작업, 교내작업), 경복중학교(야포대 사격장 간 연습도로 구
축), 성동중학교(조선신궁 순시도로 수리, 학교부지공사), 경기상업학교(종암소학교부
지공사), 경기상업학교(호국신사도로 구축), 경성농업학교(농업실습), 양정중학교(서빙
고 성토작업), 보성중학교(향상의 삼도로 시설 개수작업, 교내작업), 배재중학교(교내작
업), 휘문중학교(서빙고 성토작업, 교내작업), 중앙중학교(교내작업), 성남중학교(조선
신궁 비석 세척, 해충구제), 선린상업학교(조선신궁 비석 세척, 효창공원 토목작업),
동성상업학교(연병장 배수용 균선(龜線)개천 준설, 교내작업), 대동상업학교(서빙고 성
토작업) 등. (하략)
키워드
경성중학교, 용중, 경기중학교, 경복중학교, 성동중학교, 경기상업학교, 경기상업학교,
경성농업학교, 양정중학교, 보성중학교, 배재중학교, 휘문중학교, 중앙중학교, 성남중
학교, 선린상업학교, 동성상업학교, 대동상업학교
105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4
제목
汗ばむ制服!, 學生勤勞奉仕始る(땀에 젖은 제복! 학생근로봉사 시작하다)
출
전
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40년 07월 16일
기사위치
및 크기
7면 / 제목 2단 상당,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부내 각 전문학교는 10일부터 여름방학에 들어가는데, 예년과 같이 학생근로봉사는
경성치과의전 전교생도가 15일부터 첫 번째로 조선신궁 참배도로 개수, 사직단공원
확장공사를 실시, 아침일찍부터 땀을 흘리며 곡괭이를 들고, 작업에 종사하였고, 그
외 전문학교는 여름방학 말에 실시, 중등학교는 20일이 지나서 시행하고, 여자는 경성
제1고여의 군의(軍衣)재봉을 시작으로 실내 근로에 주로 종사한다. (사진은 치전(齒專)
의 근로봉사)
키워드
조선신궁, 경성치과의전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06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5
제목
夏休는 “땀의 奉仕”로 萬餘中學生 動員 男女生徒水害道路 衣服修理에
(여름방학은 “땀의 봉사”로 만여 중학생 동원 남녀생도 수해 도로 의복 수리에)
출
전
신문명
동아일보 [ 東亞日報 ]
발행일
1940년 07월 19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여름방학으로 들어가는 부내의 남녀중등학생은 21일부터 일주일간 남생도는 수해를
당한 도로의 수리, 여생도들은 자기학교에서 병정들의 의복의 수리를 하여 근로봉사에
땀을 흘리기로 하였다. 참가학교는
▲남자는 경사, 경중, 경복, 양정, 휘문, 중동, 대동의 각 중학 및 동리상업
▲여자는 제1, 경기, 이화, 진명, 숙명, 정신, 동덕, 인천, 개성의 각 고여 및 한성여실
(漢成女實)의 약 1만명이 동원하기로 되었다.
키워드
경사, 경중, 경복, 양정, 휘문, 중동, 대동, 제1, 경기, 이화, 진명, 숙명, 정신, 인천,
개성의 각 고여 및 한성여실
10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6
제목
滿洲國 建設奉仕 學生勤勞隊 歸還 一般班十九日, 特技班 二十日에
(만주국 건설 봉사, 학생근로대 귀환 일반반 19일, 특기반 20일에)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0년 08월 12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만주국 건설에 학생근로봉사대로 출동하였던 각 전문학교 대표 100여 명이 오는
19일과 20일에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게 되었다. 일행은 지난달 15일에 특기반과
일반반으로 파견되어 지하자원 개발과 의료사업에 특별한 활동을 하였는데 일반반
40명은 오는 19일 아침 8시 40분 경성역으로 돌아오며 특기반은 20일부터 여러 차례로
나누어 돌아오리라고 한다.
키워드
만주국건설, 학생근로봉사대, 각전문학교, 특기반, 일반반, 지하자원 개발,
의료사업, 경성역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08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7
제목
學生들 勤勞奉仕로 戰力向上에 貢獻-京城師團報道部長談
(학생들 근로봉사로 전력향상에 공헌- 경성사단 보도부장 담)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0년 08월 18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 동안 경기도 내 26곳 남자중학교 9,350여명의 생도는
제1선 장병의 수고를 생각하여 근로봉사작업을 실시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중략)
생도들은 불과 일주일 동안 연병장의 배수공사를 비롯하여 연습도로 등이 완전히 구축
된 만큼 장래 용산 부대의 연병(練兵)하는데 매우 좋게 되었다. (후략)
키워드
경기도, 남자중학교, 연병장의 배수공사, 연습도로 구축, 용산부대
109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8
제목
勤勞に突進, 京師學生夏の奉仕(근로에 돌진, 경성사범학생 여름 봉사)
출
전
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40년 08월 24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경성사범학교에서는 이달 23일부터 오는 8월 31일까지 8일간에 걸쳐 경성사단에서
근로봉사를 하기로 되었다. 제1일 제1반 220명은 23일 오전 8시 제3부대 앞에 집합
정렬하여 궁성요배, 전몰장병에 대해 1분간 묵념을 드리고, 국가제창 후 봉사에 임하여
돌격을 개시하였다. 일동은 무더위의 뙤약볕에서 육군묘지 정리 및 제초 그 외 근로로
의기 높은 소중한 봉사를 하였다. (사진은 봉사하는 모습)
키워드
경성사범학교, 육군묘지 정리 및 제초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10
4) 1941년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39
제목
增產運動 挺身隊로 一千萬 學徒의 援軍-小學生까지 勤勞報國
(증산운동정신대로 1,000만 학도의 원군, 소학생까지 근로보국)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1년 02월 14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111
기사
주요내용
전쟁을 하고 있는 오늘날 가장 급무인 것은 식량의 증산 문제이다. 전 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어 식량증산 보국운동에 동원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이때 문부성에서는 젊은
학도들 1,000만 명을 식량증산운동에 협력시키기로 했다.
이 동원 계획에 대해서는 그동안 학생 생도를 출동시킬 문부성 측과 이들에게 실제
일을 제공할 농림성 사이에 구체안이 있었으므로 지난 8일 문부성에서 금후 각 학교
학생, 생도, 아동과 청소년 단원은 외부의 희망에 의하여 농업근로에 출동하도록 통첩을
각 지방장관과 내지 각 대학 이하 각 학교와 대일본청소년단에게 보냈다. 하기 휴가의
날짜를 축소하여 단련 기간을 실천시켜 식량증산의 국책에 순응하게 하자는 이 대계획
에 동원될 학도의 수는 소 학교에서 대학까지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놀라운 노동력이
농촌에 집결된 것인데, 계획은 어디까지나 실천교육을 주안으로 시국인식의 체험을
시키자는 학도의 보국운동이다.
참가할 학생, 생도는 대체로 4학년 이상 중학교, 여학교, 고등전문학교, 대학은 전부
로 근로 일수는 수업시간으로 치고 한 학년 동안 30일 이내는 수업을 근로로 바꾸게
하고 계획의 촉진을 위하여 다시 1개월간의 근로로써 단련수업을 해도 좋게 되었다.
작업의 종류에 대해서는 지방 사정에 따라 방책을 정하겠으나 대체로 개간, 토지개량,
보리베기, 모내기, 뽕따기, 퇴비, 기타 농작에 대한 노력을 청할 때 속히 학도를 동원시
켜 근로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 계획은 물론 내지의 실천 동원이나 조선도 문부성 방침에 따라 내지와 같이
학도의 식량증산운동에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문부성, 식량증산 보국운동, 학생생도, 농림성, 4학년 이상, 중학교, 여학교, 고등전문학교,
대학, 근로일수는 수업시간으로, 개간, 토지개량, 보리베기, 모내기, 뽕따기, 퇴비, 기타
농작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1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0
제목
遣滿學生奉仕隊 派遣日程其他决定(만주 파견 학생봉사대 파견 일정 그 외 결정)
출
전
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41년 07월 05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신동아건설은 청년의 대륙인식과 실천적 봉사에 대비하여 더위를 정복하여 여름
휴가 한 달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만주건설 근로봉사대 조선군대 대학, 전문학교
생 90명은 현지에서 국방건설, 문화공작을 따르기 위해 조선부대는 특기반과 일반반
2개로 나누어서 각각 의(醫), 약(藥), 치(齒), 공(工), 광(鑛)의 전문적 지식을 충분하게
발휘하고 대만주국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과 함께 집단적 근로 훈련을 통해 흥아정
신을 체득할 큰 사명을 띠고 있으며, 7월 12일 오후 8시 25분 경성역을 출발 열차로
12명의 지도자가 인솔하여 긴 여정에 오르는데, 그 수확은 기약하여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근로대는 특기반으로 대학의학부(5명), 경성의전(5명), 대구의전(5명), 평양의전(5명),
세브란스(5명), 상공(5명), 광전(3명), 대동공전(2명), 수원고농(5명)의 합계 40명과 일
반반으로 대학법문학부(5명), 예과(5명), 법전(3명), 고상(4명), 보전(4명), 연전(4명),
혜전(4명), 경성사범(4명), 대구사범(4명), 평양사범(4명), 치전(4명), 약전(4명) 합계
50명으로 편성되어 출발하였다.(후략)
키워드
신동아건설, 국방건설, 문화공작, 흥아정신, 경성역, 특기반 대학의학부, 경성의전, 대구
의전, 평양의전, 세브란스, 상공, 광전, 대동공전, 수원고농, 일반반 대학법문학부, 예과,
법전, 고상, 보전, 연전, 혜전, 경성사범, 대구사범, 평양사범, 치전, 약전
113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1
제목
勤勞學生部隊出發(근로학생부대 출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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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조선신문 [ 朝鮮新聞 ]
발행일
1941년 07월 13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1단, 기사 1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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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주요내용
만주국 근로봉사대 조선학생부대는 조선신궁에서 선서식을 거행하고 12일 오전 7시
50분 경성발 열차에서 출발했다. ※ 사진은 경성역에서
키워드
만주국근로봉사대, 조선학생부대, 조선신궁, 경성역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1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2
제목
學徒들 勤勞奉仕-軍司令部防空壕築造
(학생들 근로봉사-군사령부 방공호 축조)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1년 10월 12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부내 각 중학교 상급생도 약 200명은 서로 번갈아 가며 11, 12일 이틀 동안 조선군
사령부 안에서 방공호 축조 근로작업을 행하여 중학생의 개로정신을 높이고 있다. 제일
진으로 11일 오전 9시 30분부터는 경성중학교 생도 200명이 에가시라(江頭) 교장의
인솔 아래 군사령부를 방문하고 전후 3시간 동안에 걸쳐 귀한 땀의 봉사를 했는데
이에 감격한 구라시게(倉茂) 보도부장으로부터 '제군도 국민개로의 한몫을 맡아서 군에
와서 근로작업을 하여 감사하다.
오늘 시국은 중대하고 국가는 제군과 같은 젊은 청년들의 활동에 기대하는 바가
많다. 바라건데 여기서 근로의 정신을 가지고 장래 더욱 국가를 위하여 활약하여 주기를
바란다'라고 격려하는 인사가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오후에는 경기중학교 생도 200명
이 교대하여 근로봉사를 했었다. ※ 사진은 생도들의 근로봉사 광경
키워드
조선군사령부, 방공호 축조, 경성중학교, 에가시라(江頭) 교장, 구라시게(倉茂) 보도부장,
경기중학교
115
5) 1942년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3
제목
四萬人의 聖鍬 各道서四月부터扶餘에勤勞奉仕
(4만 인의 성초, 각 도에서 4월부터 부여에 근로봉사)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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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2년 03월 13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내선일체의 발상지 부여에 조영되는 부여신궁은 작년 중에만도 4만여 명이 조영
근로작업에 자진 동원되는 등 전반도 민중의 감격 속에서 공사는 날로 진척되는 중이거
니와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는 금년에 또다시 조선 애국반원을 동원하여 전후 7개월간
성스러운 근로작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기간은 4월 5일부터 10월 말까지인데 이 동안에 조선 각 지방의 애국반 대표며
학생 생도, 청년단원, 관공서와 은행, 회사원 등 4만여 명을 동원할 계획이다. 하루
평균 100명 내지 200명을 작업에 참가시킬 예정인데 이 밖에도 자진하여 참가하는
사람은 편의를 봐주기로 할 것이다.
그런데 수송과 숙사관계로 봉사할 사람은 50명 이상 100명 이하로 단체를 만들어서
일정한 시일에 부여로 각도별로 봉사작업할 날짜를 배정하게 되었다. 이 계획에 대하여
철도국에서도 특별히 편의를 봐주기로 하여 작업하는 단체에 할인권을 발행하기로 했
다. 작업하려는 사람은 각도 연맹과 연락하면 봉사 일할을 지정하게 될 것인데 봉사하는
동안에는 전원에게 (1) 부여신궁 창립에 관한 성지 봉체, (2) 봉사정신의 철저, (3) 부여
의 내선일체 역사 등을 가르쳐 주어서 철저히 훈련시킬 것이다. 각 도별 봉사 배정일은
다음과 같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16
도별배정 / 배당일수 / 봉사일
▲경기 25일 4월 5일 ~ 4월 29일 ▲충북 16일 5월 1일 ~ 5월 26일
▲충남 20일 7월 23일 ~ 8월 2일 ▲전북 20일 8월 13일 ~ 9월 1일
▲전남 16일 5월 18일 ~ 6월 2일 ▲경북 17일 6월 4일 ~ 6월 20일
▲경남 16일 9월 3일 ~ 9월 18일 ▲황해 12일 9월 20일 ~ 10월 3일
▲평남 12일 10월 4일 ~ 10월 15일 ▲평북 10일 10월 17일 ~ 10월 26일
▲강원 10일 6월 22일 ~ 7월 1일 ▲함남 10일 7월 3일 ~ 7월 12일
▲함북 9일 7월 14일 ~ 7월 21일
키워드
부여신궁, 국민총력조선연맹, 근로작업, 조선애국반원, 철도국, 부여신궁 창립에 관한
성지봉체, 봉사정신의 철저, 부여 내선일체 역사
11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4
제목
昨年엔 六百萬動員 - 京畿道의 皆勞運動 今年도 準備
(작년엔 600만 동원, 경기도의 개로운동 금년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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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2년 05월 05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3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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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주요내용
'일하지 않는 사람은 황국신민이 아니라'는 외침도 꿋꿋하게 총후에 놀고 있는 노무
력을 총동원시켜 작년부터 농사의 공동작업, 도로와 하천의 제방 수리, 황무지 개간,
철도 선로 수리 등에 종사하게 하여 국민개로운동을 활발히 전개한 이래로 반도는 이
우렁찬 근로보국운동에 타는 듯한 적성을 바치고 있는 중이다.
더욱이 금년도에는 각 부락연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부녀자, 학생들까지도
철저히 동원시켜 총후 생산력 확충에 조금도 유감이 없게 하기 위하여 경기도에서도 지금
그 구체적 방침을 세우고 있는데 최근에도 총력과에 작년도 근로봉사 작업에 동원된 자세
한 통계가 수집되었다. 그것에 의하면, 작년 9월 21일로부터 11월 20일까지 만 2개월
동안의 국민개로운동 실시 기간 중에 동원된 총인원은 582만 6,928명으로서 300만 경기
도민은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두 번씩 이 작업에 참가한 것이 된다.
다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농사 공동작업에 동원된 것이 268만 9,438명으로서 전체
의 약 5할을 차지하였고 가까운 농촌의 원조로 동원된 것이 149만 2,156명으로서
그 다음이며, 도로수선, 하천의 제방 수리 작업에 참가한 것이 113만 8,568명, 신사(神
社)와 신사 경내의 청소 등 기타 작업에 봉사한 것이 7만 2,573명, 황무지 개척에 2만
2,215명, 광산에서 항내 작업에 조력한 것이 2만 2,215명, 특수 작업에 2만여 명 등
기타로서 그 성적은 매우 좋다고 하여 금년의 성과도 지금부터 기대된다고 한다.
키워드
국민개로운동, 학생들까지 철저히 동원, 농사공동작업, 도로수선, 하천 제방수리, 신사와
신사 경내 청소, 황무지 개척, 광산 항내 작업, 특수작업,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18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5
제목
敎練으로 勤勞奉仕로 夏休中 鍊成을 强行 各專門學校서 具體方針을 決定 /
全鮮各國民學校에 國語講習所附設 徵兵制實施 압두고 靑少年 爲해
(교련으로 근로봉사로 여름방학 중 훈련을 강행 각 전문학교에서 구체방안을 결정 /
전조선 각 국민학교에 국어강습소 부설 징병제 실시 앞두고 청소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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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2년 07월 04일
기사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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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 / 제목 4단, 기사 9단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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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기사
주요내용
각 학교의 하기 휴가를 앞두고 학무국에서는 방학이라는 관념을 일척하고 학도들의
몸과 마음을 철저히 단련 시키고저 힘쓰는 중인데, 지난 2일 오후 2시부터는 총독부
학무과장실에서 부내 공사립 전문학교 교장들이 모여서 휴가 중의 학생훈련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그 결과 부내 남녀전문생도들을 조선신궁 내의 청소작업에 동원시킬 방침
을 결정하고 그 외의 근로봉사 등은 각 학교에서 적당히 결정하여 실시하도록 되었다.
그리고 매년 만주에 파견하여 온 만주개척 학생근로봉사대는 금년만은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각 전문학교의 졸업반은 9월에 졸업하게 되므로, 여름휴가도 3주일 정도로
단축하기로 되었지만, 실시에 있어서는 3주일 동안 공부를 계속할 실정이다. 그래서
의료반 등의 만주개척 근로봉사대는 도저히 파견할 여유가 없으므로 중지하기로 된
것이다. 그리하여 각 학교에서는 곧 여름의 학도연성을 위하여 여러 가지의 구상을
갖추고 장차 예정된 휴가의 시기로 들어가면서부터 일제히 연성진군을 개시하기로 되었
거니와 경성부 내의 남녀 각 공사립 전문학교에서는 과연 어떠한 작전을 세우고 있는가를
여기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의 하기 연성은 고야마 교장 이하 전 직원 학도가 일치 협력하여
국체 관념의 투철과 실질 강건한 학원 정신 앙양에 최고 목표를 두고 계획되어 있다.
먼저 졸업반인 3학년은 졸업 기간이 단축된 까닭으로 하기휴가는 7월 22일부터 8월
11일까지 3주일간에 지나지 않으며, 그동안을 각각 전선의 유명한 공사장, 공장,
회사, 실험실 등으로 120명의 졸업반은 일제히 배속되어 염열을 불구하고 현지 실험
을 통해 귀중한 기술을 연마하기로 되었다.
1, 2학년생 270여 명은 7월 16일부터 8월 31일까지의 하기휴가를 이용하여 근로
봉사 작업에 동원되며 특히, 8월 18일의 교내 사열을 위하여 배속장교인 야마다
대좌의 지휘하에 야외 교련을 실시하여 하기 체련의 철저를 꾀하는 동시에 역시
전학생은 각각 전공하는 부분에 따라 전선 각 토목공사장, 실험실, 회사같은데 배속
되어 하기 실습을 하기로 되었다.
▲연희전문학교
연전의 이번 여름 계획은 매년 하여오는 근로봉사와 국어보급에 정신하기로 되어
있다. 1, 2, 3학년은 12일부터 방학을 하여 8월 24일에 개학하고 졸업반은 13일에
방학하여 25일에 다시 수업을 시작하게 되어서 바쁜 마지막 방학을 맞이하기로 되었
다. 1, 2, 3학년은 방학 그 이튿날부터 일주일간 근로봉사를 하고, 졸업반을 25일에
개학하여 매일 한 시간씩 학교 근처에서 근로작업을 할 것이다. 그런데, 방학이 되면
연맹에서 발행한 『국어독본』을 각각 손에 들고 제각각 고향에 흩어져 군과 면의
협력을 받아 낮과 밤을 헤아리지 않고 강습회를 열어 국어를 깨우쳐 주기에 정신하기
로 되어 방금 방학을 앞두고 있는 전교생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보성전문학교
방학날짜는 학년에 따라 서로 다르나 1학년은 7월 16일부터 시작되어 8월말까지
이고, 3학년은 졸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여름은 어지간히 바쁠 때이다. 그러므
로 2학년과 함께 7월 15일에 방학하여 26일에 개학하기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번
방학은 졸업반에 있어 마지막 방학인 만큼 근로봉사도 더욱 의의를 가지고 있어
약 1주일간에 걸쳐 삽과 괭이를 들고 귀한 땀을 흘려 졸업반으로서는 마지막 근로봉
사를 하기로 되었다. 근로작업장은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으나 학교 근처나 혹은
다른 작업장에 가서 조력을 하기로 되었으며 다른 행사로는 별로 계획한 것은 없으나
여름을 정복하고 총후의 학생들로서의 활동을 전개하기로 되었다.
▲아사히(旭)의학전문학교
4학년 중에서 67명으로 의료반을 조직해 가지고 만주개척지대로 가서 개척민들에
게 무료치료와 의료사상을 넓히고 그곳의 풍토병 같은 것을 연구한다. 또, 1학년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20
3학년까지를 두 대로 나누어 한 대는 산간벽지 등으로 찾아 들어 가서 결핵 예방을
중심으로 의료 사상보급에 활동하고 한 대는 각 향리에서 국어보급운동에 힘쓰기로
되어 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3학년 이하는 근로봉사에 나가고 4학년은 그대로 남아서 공부하기로 되었다.
▲혜화전문학교
먼저 근로봉사를 하는데 학교 운동장의 확장공사를 해내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대륙연구부에서는 약 15명가량이 세포(洗浦)에 있는 만주개척자 훈련소에 들어가
훈련을 받기로 되어 있고, 또 동 연구부의 67명은 북지와 북만주 등지로 가서 대륙연
구에 귀중한 방학을 받친다. 그리고, 또 불교 연구부에서는 강연대를 조직해 북선지
방을 순회하기로 되었다.
▲경성치과의학전문
근로봉사에 힘쓰며 주로 교련을 받기로 되었다. 그리고 졸업반은 그대로 공부한다.
또 졸업반 가운데 5, 6명은 만주로 의료 행각을 하기 위해 떠난다.
▲이화여자전문
졸업반은 그대로 남아 공부를 하고 나머지는 전부 부인 계몽 운동대를 조직하여
국어보급운동을 전개한다.
▲경성여자의전
여름 방학동안에 소록도의 나병환자의 의료시설을 견학할 겸 다시 음악단을 조직
하여 수천의 환자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 주어 위안하기로 되었다. 그리고 의료
반도 고려 중이다.
-조선 각 국민학교에 국어강습소 부설, 징병제 실시 앞두고 청소년 위해-
대동아를 지도하고 황국신민으로서 국어를 몰라서야 될 말이냐고 반도민중들은 자진
하여 국어를 배우려고 힘쓰는 중이거니와 특히 징병제 실시를 앞둔 청소년층의 열성은
더욱 간절하고 씩씩한 바가 있다. 이렇게 불과 같이 일어나는 국어보급운동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자 총독부에서는 남자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국어강습소를 각 국민학교에
설치하고자 준비 중이다. 대체로 구체안이 결정되었으므로 8일에는 각 도 학무과장과
국어보급 담임, 시학 각 1명을 총독부로 소집하고 국어강습소 개설에 관하여 협의하기
로 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고이소 총독이 강조한 교학쇄신 문제에 대해서도 협의할 예정인데,
주로 강습소 개설에 관하여 구체적 운용방침 등을 협의, 결정할 것이다. 학무국 안으로
결정된 대체의 내용은 우선 국민학교 가운데서 약 650개소를 선정하여 국어강습소를
개설하고 될 수 있으면 8월부터라도 강습을 시작하기로 하는 것이다. 강습생은 징병제
실시와 관련되는 남자 청소년으로 한정하는데 강습 기간은 6개월씩이다. 1기 수용 정원
은 40명 내외인데 6개월간 강습시켜 수료생을 내보낸 후에는 계속하여 40명을 또다시
수용하여 항구적으로 강습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강습은 밤에 하기로 하는데 국어를 가르칠 강사는 국민학교 선생과 지방의 유식자들
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약 6개월 강습으로 간단한 회화쯤은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데,
이렇게 해야 1년간에 5만여 명의 청년들에게 국어를 해득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산 관계만 해결되면 차츰 강습소도 증설하게 될 것으로 촉망되는 바가 매우 크다.
키워드
고야마(小山) 경성고등공업학교교장, 야마다(山田) 대좌, 경성공업고등학교,
연희전문학교, 보성전문학교, 아사히(旭)의학전문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혜화전문학교, 대륙연구부, 불교연구부, 강연대, 경성치과의학전문, 이화여자전문,
경성여자의전, 조선신궁, 세포(洗浦), 소록도
12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6
제목
延人員 卅五萬動員 京畿道學徒들 勤勞作業에 總進擊
(연인원 35만 동원, 경기도 학도들 근로작업에 총진격)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2년 07월 12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선생의 인솔하에 7월 12일경부터 8월 20일경에 이르기까지 각각 약 일주일간 총
연인원 35만여 명이 동원될 터이다. 특히 금년도 엄격한 단체적 군대훈련과 공동작업을
통해 다음 세대의 역사를 창조할 젊은 학도들에게 땀의 근로사상과 군대정신을 철저히
보급시키는 동시에 형식을 떠나 끝까지 실질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어 그들의 땀이 진실로
커다란 씨를 맺도록 종합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근로봉사 작업 장소의 하나인
조선신궁에는 신궁 경내의 광장에서 책과 연필을 들었던 손에 괭이와 삽을 들고 성스런
땀을 흘리면서 『하기 휴가』를 근로와 연성으로 국가에 봉사하자는 외침도 우렁차게 5만
5,000여 학도들이 씩씩한 근로작업의 진군을 시작한다.
경성부에서는 각 관공사립 전문학교 14교의 학도 1만여 명을 비롯하여 경기도 내 70여 남녀
중등 실업학교 생도들 4만 5,000여 명 등 총계 5만 5,000여의 젊은 학생 생도들은 금년도 예년과
같이 각 생산력 확충의 산업 부문, 도로·토목 공사, 특수작업 및 신궁·신사 경내의 수리작
업에 땀의 근로로 싸우는 총후 학도의 타는 듯한 애국의 기백을 보이게 하고자 닥쳐오는
하기 휴가를 앞두고 총독부, 경기도와 학교 당국이 긴밀히 협력하여 구체안을 결정했다.
대체로 동원될 학도들은 전문 이상 학교 학도 전부와 중등 실업학교 상급생 전부로
각각 학교 단위로서 100명 내지 200명씩 근로작업반을 편성하고 교장 이하 각 참도(참배
길)에 17년 동안이나 깔아 놓은 조약돌을 전부 맑게 씻어서 새롭게 까는 것을 비롯하여
신궁 뒤의 인도와 이참도(裏參道), 표참도의 수축 등에 종사하게 하여 근로봉사를 통하여
국체 본의에 투철하게 할 것인데 요즘 매일 5, 6반씩의 작업 신청원이 신궁 사무소로
들어오는 것으로 비추어 금년에는 총인원 5, 6만 명 가까운 학도들이 성역에서 신성한
근로의 지성을 바치게 될 예정이다.
키워드
선생 인솔, 35만명 동원, 각 관공립사립전문학교, 총독부, 경성부, 경기도, 조선신궁, 도로,
토목공사, 특수작업, 신궁·신사 경내 수리작업, 중등실업학교 상급생 전부, 근로작업반, 참도
조약돌 씻기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2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7
제목
中等學生五千名に月月金金の鍊成, 八月開校を飾る特別集團勤勞
(중등학생 5천명에게 월월금금의 훈련, 8월 개교를 장식한 특별집단근로)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42년 08월 16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4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연성의 여름방학도 끝나고 17일부터 일제히 개교한 경기도 내의 각 중등학교 생도들
을, (중략) 경기도는 군의 의뢰로 도내 중등학교 생도 5천명을 동원하여 부대 장교
지도하에 군기있는 특별집단 근로작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근로작업에는 3학년 이상의 생도를 참가시키고 각 학교 별로 매일 오전 8시 용산
총독부 관저 앞에 집합시켜 집합점호, 복장검사, 궁성요배, 묵도, 작업에 관한 주의사항,
준비체조 등을 약 3분간에 걸쳐 시행한 후, 작업을 시작하여 약 7시간 땅고르기 작업을
한다. 각 교의 근로 일정은 다음과 같다.
▲18일 경중▲19일 용중▲20일 경기중▲21일 경복중▲23일 성동중▲24일 경상 ▲25
일 경성상, 선린▲26일 양정중, 성남중▲27일 보성중, 동성상▲28일 대동상, 배재중▲
30일 휘문중▲31일 중앙중
키워드
경중, 용중, 경기중, 경복중, 성동중, 경상, 경성상, 선린, 양정중, 성남중, 보성중, 동성상,
대동상, 배재중, 휘문중, 중앙중
123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8
제목
徵兵制實施에 對備, 靑訓을 全面的擴充, 明年부터 靑年學校로 昇格
(징병제 실시에 대비, 청년훈련소를 전면적 확충, 내년부터 청년학교로 승격)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2년 12월 23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징병제도 실시를 앞두고 총독부에서는 조선청년 특별연성의 실시와 청년훈련소의
확충, 강화 등에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는 중이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특별연성이
획기적인 대사업인 것도 사실이지만 장래 징병제도의 중견이 될 국민학교 졸업자를
상대로 하는 청년훈련소의 지도, 연성 내용에 대해 특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이다.
특별연성 이상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힘써 지도하는 터로 지금 각 도별로 청훈 지도원
강습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년도부터 청년학교로 승격시키는 동시에
전임 지도원을 증원하고 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청소년층
은 전부 이를 수용, 훈련할 계획을 세우고 힘쓰는 중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24
현재 조선의 청년훈련소는 공립이 1,743개소에 사립이 99개소로 합계 1,842개소,
그 생도 수효는 8만 6,673명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생도 수효는 내년도에는 몇 십배로
격증될 것이고 그 훈련 내용도 획기적으로 쇄신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명칭도 청년학교
로 개칭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선의 청년훈련소는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획기적으로
개혁, 쇄신될 것이다. 조선에 청년훈련소가 처음 설치된 것은 1929년이다.
즉 이 해에 「청년훈련소규정」 발표된 것이다. 1929년(昭和4) 말 훈련소는 겨우 15개
소에 생도는 700명이었다. 현재의 8만 6,000명은 실로 이때의 124배나 되는 것으로
격세의 감이 있는 것이다.
그 후 지나사변이 일어나자 청년훈련의 국가적 요구와 반도청년의 자각으로 입소
희망자가 격증하게 되어 훈련소를 증설하기 시작한 것인데 1939년(昭和 14) 말 126개
소의 6,300명으로 비약되었다. 그 후 시국의 추이에 따라 국민총훈련이라는 부르짖음
이 높게 되고 여기서 1940년(昭和 15), 1941년(昭和 16) 2년간 공립만 1,622개소를
증설했다. 1929년(昭和 4) 이래 1939년까지 11년간에 설치된 것이 겨우 126개소이던
것이 2년간에 20여배나 되는 1,622개소의 증설을 완성하여 실로 조선청년훈련소의
역사에 획기적인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와 동시에 1941년 9월에는 교련과 규정을 개정하여 국방 능력을 증진시키자는
청년 훈련의 근본을 밝힌 것이다. 즉 종래에는 교련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단련한다고
막연하게 규정했던 것을 규정을 개정해서 청년훈련소의 교련은 군사적인 기초 훈련을
실시하여 지성 진충의 정신을 기르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그 자질을 향상해서 국방
능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이 일관하는 지도 정신이라는 것을 밝게 규정한 것이다. 이
근본정신은 오늘에 와서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인데 이 같은 청년훈련소의 역사는
반도 징병제도 실시를 앞두고 한층 빛나는 비약을 하게 될 것이 주목되는 터이다.
키워드
징병제도, 총독부, 공립 청년훈련소 1,743개소, 사립 99개소, 청년학교,
청년훈련소 규정
125
6) 1943년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49
제목
農事에 學生報國隊 - 積極的 動員 計劃을 樹立 - 延人員 七千萬名 四月부터 進軍
(농사에 학생보국대, 적극적 동원계획을 수립, 연인원 7천만 명, 4월부터 진군)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3월 09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5단 기사 7단
신문기사
원본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26
기사
주요내용
결전하의 식량은 생산전력 중 가장 기본적인 중요성을 가졌음에 비추어 그 식량증산
과 농업보국운동에 대하여 금년부터는 초등학교와 그 외의 조선 학도, 생도를 총동원하
여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시킬 것을 지난 6일의 부윤, 군수, 도사 회의석상에서 고이소
(小磯) 총독이 역설하자 일반의 지지와 찬성은 물밀 듯하고 특히 경성제대를 비롯한
각 학도, 생도, 아동들의 기백과 결의는 하늘을 찌를 듯하여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그 타는 듯한 감격과 광영을 식량 증산운동에 폭발시켜 총후반도의 젊은 힘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을 가슴깊이 맹서하는 동시에 다시 본부 학무, 농림 양 관계국에서는 그 구체
적 계획을 세워 오는 4월 초순을 기하여 일제히 활발한 운동을 전개시키기로 했다.
학생도 아동들의 근로보국운동은 일찍이 1943년(昭和18)도부터 실시되어 오던 터이
다. 즉 지나사변의 발전과 전시 식량증산의 중요성에 비추어 각 학교 당국에서도 그들
젊은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근로작업에 동원하여 물심양면의 연성에 큰 수확을 거두고
자 힘써 왔던 터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주로 하기 방학을 이용하여 신사의 청소작업, 도로 수선 혹은
그 외의 특수작업 등을 주로 하여 1년 동안에 1주일 내지 10일 간 정도로 근로작업에
동원했을 뿐 그것도 자칫하면 형식적인 점으로 흘러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에 힘들
었으며 또 그 작업 상황과 작업 내용도 각 지방에 따라 전혀 통일적인 계획 아래에서
행해지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난 1942년(昭和17) 조선 각지에서 동원된 학도,
생도, 아동들의 총 연인원은 약 200만 명의 다수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인
효과는 반드시 최초의 예상과는 부합되지 않은 바도 있었던 바이다.
이에 있어서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농림국과 긴밀한 연락하에 고이소 총독의 지시를
받아 가장 계획적인 방침 아래에서 그들 학도 부대들의 식량보국운동을 전개시키기로
하고 먼저 중등학교 이상은 각각 도 학무과에서, 또 각 국민학교 아동들은 각각 군,
도(島) 학무계에서 통일적으로 계획을 세워 각 학교별, 지역별로 학도근로보국대 같은
것을 결성하여 교장 이하 교원들이 직접 대장이 되어 1년 중에 가장 노무력을 필요로
하는 농번기를 선택하여 일제히 동원될 것이다. 그 동원될 장소도 미리 도, 군 당국에서
농촌노무력의 실정을 조사하여 주로 노무력이 부족한 곳에 먼저 동원시켜 농촌노무력의
부족을 해결하며 그 작업 실시에 있어서도 모내기, 보리 베기, 벼 베기를 비롯하여
가장 구체적인 농업 작업에 참가하게 하여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게 하며 또 각 농업학교
등 농림학교 등 특수학교 관계의 학생 생도들은 따로 별도 지도대를 편성하여 4, 5명
내지 10명이 한 대가 되어 직접 각 농촌에서 일반 농업기술을 농민에게 지도하는 등
만전의 방침을 채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의 220만여 학도, 생도, 아동들은 오는
4월을 기하여 1년에 약30일 동안 이 성스러운 식량보국운동에 참가하게 될 터이므로
그 연인원은 실로 6,600만 명의 다수에 이르게 된다. 이것으로써 반도의 식량증산운동
은 더욱 활발히 추진될 것은 물론 그 결과는 일반 학도들로 하여금 항상 변해 가는
주위 환경의 사태에 즉응하면서 황공하옵게도 황조의 신칙이옵신 황농(皇農) 정신의
실제 체험을 통하여 진실로 황국이 요구하는 일본적 성격을 도야하여 국가총력전에
이바지할 것이 기대되는 바인데 그 운동의 구체적 방법과 요강은 지금 관계 당국에서
신중히 협의하는 중이므로 곧 정식으로 발표될 터이다.
키워드
총동원, 고이소 총독, 경성제대, 신사 청소작업, 도로수선 특수작업, 총독부 학무국,
농림국, 식량보국운동 전개, 학도근로보국대
12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0
제목
學徒部隊도 總動員 戰時食糧增產出動要綱决定
(학도부대도 총동원, 전시 식량증산 출동 요강 결정)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4월 01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4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결전 아래 식량증산 조선에 학도부대가 동원된다!
전시 국민의 식량 확보는 전쟁 수행에서 절대적 요건으로서 이 크나큰 식량 문제에
곡창 조선이 짊어진 사명은 실로 중대하다. 여기에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농림국과 협력
하여 「학도전시식량증산 출동요강」을 제정하고 전 조선에서 일제히 실시하기로 했는데
이에 앞서 대학 전문학교의 전 학도를 동원시켜 먼저 그 총력을 수원에 있는 총독부
농사시험장 저수지의 밑바닥을 파내기로 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28
이것은 조선의 관개설비의 보수작업에 모범을 보이려는 불타는 의기를 가지고 경성
제대를 비롯하여 경성부 내에 있는 고등전문학교와 수원고등농림학교 등 16개교의
학생 생도 3만 9,432명(연인원)이 오는 4월 13일 신학기의 문이 열리자마자 작업에
착수하여 6월 20일까지 1만 5,000평의 저수지 준설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한 학교의 작업 기일은 6일간인데 1대를 대개 2교 600명으로 하고 매일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하는 것이다. 작업 중에는 총독부 농림국과 경기도와
농사시험장 및 공병대의 작업 지도를 받들어 수원고등농림학교 교사에서 합숙훈련을
하기로 했다. 작업부대는 『본부대』와 『학교부대』 둘로 나누어 편성하고 본부대장에는
학무국장, 부부대장에는 학무과장을 추대하고 그 아래 연락 사무와 일반 계획을 작성,
지도하는 총무계, 숙박 사무를 보는 숙박계, 작업 지도와 계획, 설계, 용구 정비, 작업
방침, 구급 간호 등의 사무를 처리하는 작업계 등을 두며 『학교부대』에는 총력대를
편성하여 그 아래 연락계를 두어 본부대와 연락을 취하게 한다. 이리하여 2개월 남짓에
걸쳐 젊은 학도의 피와 땀으로 정복해 가는 작업 훈련은 저수량 22 정척(제1기 10정척,
제2기 12정척)을 증가시키고 이 증가된 수량으로 18정 3단보에 대한 충분한 관개용수
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매년 벼를 366섬이나 증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각 학교의 동원 인원과 작업 시일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대 4월 13일(화)~4월 18일(일) 6일간
▲동 예과 4월 20일(화)~4월 25일(일) 6일간
▲법전 ▲고공 4월 27일(화)~5월 2일(일) 6일간
▲의전 ▲광전 5월 4일(화)~5월 9일(일) 6일간
▲고상 5월 11일(화)~5월 16일(일) 6일간
▲보전 5월 18일(화)~5월 23일(일) 6일간
▲아사히전 ▲치전 5월 25일(화)~5월 30일(일) 6일간
▲연전 ▲명전 6월 1일(화)~6월 6일(일) 6일간
▲약전 ▲혜전 6월 8일(화)~6월 13일(일) 6일간
▲경사 6월 15일(화)~6월 20일(일) 6일간
키워드
학도전시식량증산 출동요강, 작업부대, 학교부대, 본부대, 성대, 성대예과, 법전, 고공, 의전,
광전, 고상, 보전, 아사히전, 치전, 연전, 명전, 약전, 혜전, 경사
129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1
제목
五萬名이 聖汗奉仕 扶餘神宮勤勞作業 今日부터 開始
(5만 명이 성한(聖汗) 봉사, 부여신궁 근로 작업, 금일부터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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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4월 15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기사 6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봄빛이 짙어 가는 성지 부소산에 조선 2,500만의 불붙는 애국의 적성과 열의를 모으
고 금년도 부여신궁 조영 근로봉사운동이 15일부터 11월 20일까지 7개월에 걸쳐 국민
총력연맹 주최 총독부 부여신궁 봉찬회 등 후원으로 경기도 파주군 연맹을 선진으로
하고 성스러운 땀의 작업이 개시된다. 북에서 남에서 지방 애국반을 비롯하여 학생,
생도 단체, 청년단, 관공서, 회사 등 각종 연맹에서 봉사작업을 신입해 온 인원수가
5만 명에 달하여 하루 평균 200명씩 이하로, 혹은 이틀 동안씩 성지에 산울림을 지으며
조영의 성추를 휘두른다.
그리고 봉사 작업 기간에는 규율적 단체행동을 가지고 조영의 성지를 봉체하고 봉사
정신의 인식을 깊이 하여 그 옛날 내선 양 민족의 융화가 꽃답게 피었던 곳곳의 사적을
견학하고 또 역사 이야기를 듣는다. 성스러운 작업이 시작되는 15일 작업 개시에 앞서
오전 9시부터 숙사인 반월료 앞뜰에 작업의 선진을 맡은 파주군연맹의 청년단 부인
회원 50명이 참집하고 주최 측으로부터 오야연성부장 등 계원 10명, 총독부 총력과
미조구치 사무관, 파주군의 미시마 중견청년수련소 부소장, 현지 관민 유력자 다수가
참렬하고 뜻깊은 발회식이 엄숙히 거행된다.
식은 국민의례가 있고 오야 연성부장으로부터 격려 인사가 있은 다음 사적 견학
등이 있고, 즉시 부소산록에 이르러 가와시마 파주군 내무과장 등 50명은 경쾌한 복장을
단속하고 진지한 땀의 봉사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날 저녁때는 경성여자실업
학교 1대 50명이, 16일 아침에도 경성무학고등여학교 2대 100명이 도착하여 이날부터
200명 정원이 다 모여 작업은 한층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이날부터 금년도 작업이 끝나
는 11월 20일까지 다음으로 200명씩의 작업이 계속된다.
키워드
오야(大家) 연성부장, 미조구치(溝口), 미시마(三島) 중견청년수련소 부소장, 가와시마
(川島) 내무과장, 국민총력연맹, 총독부부여신궁 봉찬회, 경기도파주군연맹, 경성여자
실업학교, 경성무학고등여학교, 부소산록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30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2
제목
農村에學徒의援軍 京畿管下의各學校農報隊出動準備
(농촌에 학도의 원군, 경기 관하의 각 학교 농보대 출동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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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6월 30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농촌은 여름 한철을 앞두고 가장 바쁜 계절에 닥치게 되었다. 결전 증산에 농촌 산업
전사의 동원은 물론이거니와 금년 봄부터 계속되어 나오고 있는 학도전시증산동원계획
은 이제 바야흐로 본격화했다. 앞으로 국민학교, 중등학교의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61만
근로대에 그 5분의 1을 차지한 학생근로대로써 경기도 관하 국민학교 생도가 총동원되
어 7월~11월까지 5달 동안 농업보국에 매진할 터인데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
의 대동원이 벌써 계획되어 지금 노력 배치를 하고 있다.
이번 여름 중등학교의 방학은 종래 7월 20일부터 8월 말까지 근 40일 동안이던
것을 보름을 줄여 8월 15일까지로 정하고 방학 초에 일주일과 학교에 따라서는 개학
전의 일주일간을 학교 지정 근로봉사를 하고 나머지 기간을 이용하여 각 지방 부락에
돌아가 농가와 협력해 증산운동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더욱이 다섯 달 동안에는
김매기, 벌레 잡기, 피 뽑기, 제초와 퇴비 만들기, 개간공사, 논밭둑을 축조하기 등
농사와 토목 일을 겸한 식량증산에 학생 총진군을 개시할 예정이다.
키워드
학도전시증산동원계획, 국민학교, 중등학교, 61만 근로대, 다섯달 동안, 김매기, 벌레잡기,
피뽑기, 제초, 퇴비만들기, 개간공사, 논 밭둑 축조
13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3
제목
松炭油增産運動 勤勞報國隊學徒도一役
(송탄유 증산운동, 근로보국대 학도도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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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7월 04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송탄유의 용도는 군수품으로 혹은 선박용으로 날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지난번 정례 국장회의 석상에서는 다나카(田中) 정무총감은 송탄유 증산에 한층 노력할
것을 말하였고 30일부터 과장회의에서도 송탄유 문제를 중심으로 회의를 열었는데
경기도 산림과에서는 1943년(昭和18)도 목표 수량 9만 4,000관을 생산할 계획으로
부락 근로봉사대 또는 학생부대까지 자재 채취에 동원시킬 예정이다.
키워드
송탄유, 군수품, 선박용, 다나카(田中) 정무총감, 산림과, 부락근로봉사대, 학생부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3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4
제목
授業에勤勞에訓練에 學徒들指標를評定 必勝態勢를整備할三校長會議
(수업에 근로에 훈련에 학도들 지표를 평정, 필승 태세를 정비할 3교장 회의)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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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7월 12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4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교문은 곧 군문으로 통하고 교단은 곧 전장으로 연속되는 결전의 순간을 맞이하여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총후 반도의 학도동원체제를 한층 강화시켜 국토 방위와 전력증강
에 씩씩한 학도들의 총력을 바치게 하고자 12일에는 부내 부민관 중강당에서 일찍이
전례가 없었던 중등학교장을 소집하는 것을 비롯하여 13일에는 각 도 학무과장, 시학관
과 사범학교장 사무협의회를, 또 15일에는 대학, 전문학교장 사무협의회를 각각 개최하
기로 했다.
일찍이 지난 6월 25일 내지에서는 '학도전시동원체제 확립요강'을 결정 발표하여
지금 방방곡곡에서 애국의 지성에 불타면서 오로지 순충보국의 한길로 돌진하는 젊은
황국의 학도, 생도들에게 뚜렷한 방향과 목표를 지시하는 동시에 그 구체적 방법까지도
133
자세히 알리게 한 바 있었다. 이 학원에 내린 돌격 명령에 호응하여 광영의 징병제와
해군특별지원병의 역사적 발표를 앞둔 반도 학원에서도 학업에 근로에 훈련에 한층
과감한 돌격을 시작하려는 결의가 하늘을 찌를 듯이 고조되었다.
이에 총독부 당국에서도 금년 4월에 실현된 학제 개혁의 근본 목표인 배움과 행동이
일치하고 진충보국의 지성을 다한다는 것을 결전 단계에 맞추어 한층 철저히 실천에
옮기게 하는 동시에 지금까지의 학원체제를 한층 결전적으로 편성하고 교수, 수련, 연성
에도 가장 종합된 계획 아래에서 추진시키고자 방금 반도만의 독특한 전시학도동원체제
요강을 연구하는 중이다. 그리하여 이 요강을 금후 가장 활발하게 실천에 옮겨 학업과
훈련과 근로를 가장 숭고한 교육연성의 체제 아래에 정비시켜 학도들의 몸과 마음을
철저히 단련하며 동원과 근로를 꾀하는 여러 가지 학원체제와 권위 있는 교권을 확립시
키고자 이번과 같이 일찍이 반도 교육 사상에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가지
회의를 소집하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 회의에는 고이소(小磯) 총독이 직접 임석하여
통치 이념인 국체 본의의 투철과 전시 즉응의 교권 확립, 또 학도들의 사기 앙양에
대한 숭대한 훈시가 있고, 다시 오노 학무국장은 지난번에 단행된 학제 개혁의 근본
정신을 밝히고 교직원들의 지도력을 강화시켜 힘찬 교권을 확립시킴에는 먼저 교직의
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여 구체적 방법을 지시하며 다시 학도의 전시 동원 태세
의 확립에 관한 소신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터이다. 이 회의는 다음과 같다.
▲조선 중등학교장회동
12일 오전 8시부터 부민관 중강당에서 공립 중등학교장 56명, 공립 고등여학교장
64명, 공립 실업학교장 106명, 사립 중등학교장 18명, 사립 고등여학교장 12명,
사립 실업학교장 15명, 총계 271명이 참가한다.
▲각도 학무과장, 시학관, 사범학교장 사무협의회
13일 오전 8시부터 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각 도 학무과장 13명, 시학관 12명, 사범
학교장 15명, 총계 40명이 참석하고 개최된다.
▲대학, 전문학교장 사무협의회
15일 오전 8시부터 본부 제1회의실에서 시노다 경성제대총장을 비롯하여 이 대학
각 학부장과 본 예과부장 등 5명, 관립 전문학교장 7명, 공립 전문학교장 2명, 사립
전문학교장 11명, 총계 25명이 참석하고 개최된다.
키워드
교문은 곧 군문, 고이소(小磯) 총독, 오노(大野) 학무국장, 시노다(條田) 성대총장, 총독
부학무국 학도전시동원체제, 징병제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3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5
제목
夏休를增産에獻納 京畿道管下學園의總動員準備完了
(여름방학을 증산에 헌납, 경기도 관하 학원의 총동원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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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7월 15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학원총동원 태세하에 있는 반도 학원은 이제 학교는 곧 군문으로 통한다는 싸우는
결의로 전시 훈련을 쌓고 있는데 벌써 제1학기도 지나고 학기 시험도 끝나 남녀 중등학교
는 오는 21일로서 일제히 여름방학을 하기로 되었다. 이 여름방학은 종래와 같이 단지
휴가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학교를 떠난 연성의 기간으로 삼아 증산에, 근로봉사에, 해양연
성에, 활공 훈련, 무도 수련의 적절한 기간으로 하고자 경기도 학무과에서는 각 학교가
연락하여 온갖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기도 관하 각종 50여 남녀 중등학교 생도 약 5만여 명은 하기 방학을 기해 이상과
같은 취지로 각자가 처소에 따라 총훈련을 하게 된 것인데 21일 방학식이 끝난 후 각
학교에서는 예년과 같이 일주일 혹은 10일간의 근로봉사를 할 터이며 예년보다 15일
혹은 20여일 방학 기간을 단축하여 8월 10일과 학교에 따라서는 15일에 개학을 할
것이다. 방학기를 이용해 근로 계획에 동원된 경기도 관하 중등, 초등학교 생도 10만여
명 학생근로대에 아동 생도들이 참가해 김매기와 퇴비 조성, 밭곡식 재배 등 농업보국에
귀한 땀을 흘리게 되어 방학은 증산 으로 일관된 결전학원체제를 이루고 있다.
키워드
학원총동원, 학교는 곧 군문으로 통한다, 남녀중등학교,
경기도 관하 각종 50여 남녀 중등학교, 근로봉사, 결전학원체제
135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6
제목
八萬産報隊進軍 江華郡서移秧에最後의突擊
(8만 산업보국대 진군, 강화군서 이앙에 최후의 돌격)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7월 18일
기사위치
및 크기
4면 / 제목 2단, 기사 ? 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강화】 16만 5,000석을 생산하겠다고 굳은 결의로서 증산에 감투하는 산업보국대
남녀 작업반 1,367반과 원호대 또는 각 학교의 아동 등 8만 명, 우경반(牛耕班) 1,131반
에 4,613두(頭)를 총동원하여 남은 논의 이앙에 최후의 힘을 쏟고 있다. 강화군에서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증산의 완벽을 기하지 못하므로 가네마쓰(金松)군수, 사토
(佐藤) 서장 외 권업, 내무 양(兩) 과원을 중심으로 군 내 작업반 독려대를 편성, 서로서로
일제히 독려에 출동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하고 의기도 힘차게 눈물겨운 독려전
을 개최하고 있다. 각 면에서 일시에 막대한 노력을 요하여 노력 조절을 위해 노력이
부족한 면에는 잉여 노력이 있는 면에서 보충하여 신속하게 작업 이동반의 출동을 명령
하여 완전한 지도 독려를 행하고 있다. 가네마쓰 군수, 사토 서장을 위시하여 다케야마
권업, 미즈구치 내무 양 과장도 독려에 출동하여 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키워드
원호대, 우경반, 가네마쓰(金松) 강화군수, 사토(佐藤) 서장, 산업보국대,
남녀작업반, 군 내 작업반 독려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36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7
제목
松炭油生産에十萬郡民總動 (송탄유 생산에 10만 군민 총동원)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7월 18일
기사위치
및 크기
4면 / 제목 1단, 기사 1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강화】 결전하 중유의 대용 연료로서 가장 우수한 송탄유 제조법이 발명되어 소나무
의 남은 가지와 남은 그루터기로부터 간이하게 이를 추출하며, 또는 부산물로서 양호한
와사용(瓦斯用, 가스용 :역자주) 목재를 생산할 수 있으므로 강화군에서는 대대적 증산
을 도모하게 되어 10만 군민은 자재의 수집에 노력하는 동시에 지도원 양성 등에 본격적
활동을 개시했는바 본 사업은 오로지 결전적 생산 사업임을 특히 유의하여 온갖 어려움
을 배제하고 계획 생산의 완수를 기하기로 했다.
키워드
송탄유 제조법, 소나무, 가지, 그루터기, 와사용 목재
13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8
제목
一萬九千의學徒 松炭油原料採取에動員
(1만 9,000명의 학도, 송탄유 원료 채취에 동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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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7월 22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1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석유와 『까소링(가솔린; 역자주)』의 소비 규정이 한층 더 강화됨에 따라 총독부에서
는 석유등속의 대용으로 송탄유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따라서 총독부에서는 송탄유의
제조 원료가 되는 『관솔』 채취를 적극 독려하고 있는데 경성부에서도 부내 중등학생을
동원시켜 『관솔』을 따는 한편 부내에 8곳의 송탄유 제조장을 설치하고 송탄유 증산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관솔 채취에 동원되는 학생은 부내 중등학교 생도로 하기 휴가를
이용하여 1만 9,000명의 학생이 경성부 내와 부근의 임야로 나아가서 관솔 16만관을
목표로 채취하기로 했다. 이리하여 6,600관의 송탄유를 방학 안으로 제조하기로 되어
부 국민총력과에서는 각 학교와 연락하여 21일부터 채취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부
총력과에서는 민간 임야 소유자들이 특히 학생들의 관솔 채취를 허가하고 채취에 자진
협력해 줄 것을 특히 요망하고 있다.
키워드
석유, 까소링(가솔린), 총독부, 석유 대용 송탄유, 총독부, 관솔, 중등학생 동원, 부내
8곳의 송탄유 제조장, 국민총력과, 관솔 채취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38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59
제목
“學校即兵營”의態勢整備 全半島學徒總蹶起 待望의戰時學徒動員體制要綱發表
(“학교 즉 병영”의 태세 정비, 전 반도학도 총궐기, 대망의 전시학도동원 체제 요강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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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7월 27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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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주요내용
날을 거듭할수록 치열해져 가는 결전하에 학도들의 불타는 듯한 애국의 충성을 유감
없이 발휘하도록 진실로 국가가 기대하는 결전교육체제를 갖추고 시국에 적응하는 학업,
훈련, 근로를 종합적으로 통일시켜 청소년 학도들의 마음과 몸을 단련시키기에 만전을
다하고자 조선에서도 드디어 학도전시동원체제 확립요강을 결정하고 얼마 전 정무총감
통첩으로써 각 도지사와 본부 학무과 직할의 각 학교장에게 일제히 지시하였다. 이
요강은 지난 6월 25일에 내지에서 결정되었고 그 후 반도에서도 근본 취지에 호응하고
반도의 특수성을 참작하여 광영의 징병제와 해군특별지원병제 실시의 역사적 실시를
앞둔 반도 청소년 학도들에게 학교는 병영으로, 교실은 결전장으로 직접 통한다는 신념
을 굳게 하여 한층 더 열렬한 애국의 지성과 왕성한 연구심과 굳센 체력을 국가총력전에
바쳐서 결전하 학도들이 감당해야 할 책무를 완수하게 함에 이번 요강의 목표가 있는
것이다. 이 요강의 대강을 살피면,
(가) 유사시에 즉응할 체제를 확립할 것
(나) 근로동원의 강화
의 두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유사시에 즉응하게 할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학교 총력대 조직을 한층 확충 강화시켜 체육훈련을 철저히 시켜서 전쟁기술 훈련
을 강화하며 다시 항공, 해양, 기갑, 마사, 통신 등의 특기 훈련을 꾀하고자 학도의 적성등록
제도를 확립하기로 했으며, 특히 학도 전원에 대한 방공훈련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중등학
교 이상의 여자 학도는 간호와 그 외의 보건위생에 관한 훈련을 강화시키기로 했다.
또 근로동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작업 종목을 결정하여
각 농촌공장사업장 등에 동원시켜서 식량증산과 전력증강에 이바지하기로 되었다.
키워드
결전교육체제, 학도전시동원체제 확립요강, 정무총감통첩, 해군특별지원병제, 유사시에
즉응할 체제를 확립할 것, 근로동원 강화
139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0
제목
前線偲んで聖汗, 學徒ら軍司令部へ奉仕
(전선을 생각하며 성스러운 땀, 학도들 군사령부로 봉사)
출
전
신문명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발행일
1943년 07월 27일
기사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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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 / 제목 2단, 기사 2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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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주요내용
군사령부를 찾아와 각 방면으로 헌납된 철재 외의 자재 등으로 짐을 꾸리거나 혹은
토목 작업 등에 근로 봉사의 성한작열과 싸우면서 전선 장병의 고생을 생각하는 경성사
범학교 생도, 대화숙(大和塾)생 약 300명은 26일 오전 8시부터 땀을 흘리고, 오후 1시부
터는 30분 간에 걸쳐 타다(多田) 참모의 강연을 듣고 계속해서 오후 5시 넘어까지 우라
(浦) 중좌 지도하에 대마력의 봉사작업을 계속하여 군당국을 크게 감격하게 했다. (사진
= 봉사작업)
키워드
군사령부, 경성사범학교생도, 대화숙생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40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1
제목
歸鄕學生땀의進軍 他道에先鞭, 京畿道內에勤勞奉仕
(귀향학생 땀의 진군 타도(他道)에 앞서, 경기도 내에서 근로봉사)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8월 10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여름방학에 일본에서 귀성한 학생 생도를 비롯해 조선 각지에 흩어져 귀한 땀의 성과를
올리고자 조선연맹은 장학회와 연락하여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중략)
경기도 주최로 기계화 국방협회 조선본부의 답십리 기갑 조정훈련장 터닦기를 실시할
것이고, 오전 8시 반부터 삽과 괭이를 들고 땀을 흘릴 예정이다. 경성부 내의 귀성학생은
출신 학교직원의 인솔로 참가를 하게 되어 있으며, 2, 3일간 작업이 끝나면 오후부터 도청의
간부와 출신 학교직원과 교장 및 장학회 주사의 임석하에 좌담회를 개최할 것이다. (후략)
키워드
기계화국방협회, 조선본부 경기도, 답십리 기갑 조정훈련장, 경성부
14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2
제목
七百八十萬學生, 生徒를 秋收勤勞奉仕에 動員-出動前에 모다 身體檢査를 實施
(780만 학생, 생도를 추수 근로봉사에 동원 - 출동 전에 모두 신체검사를 실시)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9월 07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수확의 가을』이 찾아왔다. 곡창반도의 넓고 넓은 평야에는 탐스럽게 익은 벼가 금빛
파도를 일으키고 콩, 팥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곡식이 탐스럽게 익어서 하루바삐 거두어들
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가을의 추수 계절을 맞이하여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국민학교
4학년 이상으로부터 각 전문학교와 경성제대에 이르는 조선 남녀를 총동원시키기로
하고 현재 농림국과 구체적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번 추수에 동원될 국민학교 아동의
총 연인원은 660여만 명이고 중등학교 이상 생도, 학생은 119만 명으로서 총계 779만
여 명의 다수에 이르며, 그들은 오는 10월경에 일제히 출동할 터이다.
그러나 종래의 실례를 보면 근로봉사작업에 그들을 출동시킴에 있어서 비교적 힘이
드는 육체노동을 해 보지 못하던 학생, 생도, 아동들에게 갑자기 너무 격렬한 근육운동
을 실시하거나 또는 그들의 체격, 건강, 정신 상태 등을 참작하지 않고 건강한 학도냐
허약한 아동이냐를 불구하고 모두 똑같은 노동을 부담시키는 관계로 학생 전체의 체위
향상과 학업 수련에 오히려 자비롭지 못한 영향이 생길 염려도 있었고 심한 것은 간혹
질병과 부상 같은 것도 생기는 일이 있었다. 이에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그와 같은 폐단
을 철저히 방지하고자 그동안 신중히 연구한 결과 근로 작업에 출동할 때에는 그 직전에
반드시 엄격한 신체검사를 일제히 실시하기로 했다. 근로봉사 출동 전의 신체검사 실시
는 종래부터도 실행 중인 학교도 있었고 또 당국에서도 그것을 장려하여 오던 터이나
그다지 철저하지 못한 느낌이 있어서 이번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각 학교마다 전임 교의는 물론이고 각 도립의원의 직원과 공의 또는 일반
의사의 적극적 협력을 얻어 적당한 방법으로 본인의 체격, 건강, 영양 상태와 환경
같은 것을 엄밀히 조사하여 결과에 따라 가장 적절한 지도 아래에서 근로 작업에 동원하
기로 하고 금년가을부터 일제히 실시할 터이다. 이것으로서 학도부대들의 근로 작업은
한층 힘찬 진전과 빛나는 성과를 거둘 것이 기대되는 바이다.
키워드
국민학교 4학년 이상, 각 전문학교, 성대, 농림국, 총독부 학무국, 질병, 부상, 출동
전 신체검사, 도립의원, 공의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4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3
제목
待避壕施設에 總力 愛國班學徒奉仕로 府內一齊着工
(대피호 시설에 총력, 애국반 학도 봉사로 부내 일제 착공)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09월 18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4단, 기사 8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결전이 거듭됨에 따라 총후는 총후대로의 필승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적 미영은 인도도 없고 오직 이번 전쟁에서 민족의 잔학성만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 『함부르크』의 참극을, 『비로마(버마)』의 공습을 조금도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폭격에서 오히려 우리 황군은 그들에 몇 곱절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총후 우리는 황군에 항공보급전 전략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적의 맹폭에 대비
하여 방공에 철벽진을 펴야 한다. 방공 연습, 방공 기재의 정비도 절대로 필요한 것이지
만 방공호, 대피호 등의 설비 또한 긴급한 시설의 하나이다. 이에 경성부에서는 지난
7월부터 당국과 협의하여 병참반도의 중추지로서 방공 태세 강화에 여러 가지로 준비를
계속 중, 이번에는 각 개인용 대피호와 공공 대피호를 대량으로 가정과 거리에 파기로
되었다.
이즈음 방공호의 넓이 등 대피호 작성에 대한 기본 요령이 결정되어 부에서는 17일
오전 9시부터 후루이치 부윤, 후지하라 방위 병무과장 등 간부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열고 당국의 기본안을 좇아 부내의 대피호 설치안을 구체적으로 협의했다. 즉 방공대피
호와 공공대피호를 부내에 전면적으로 설치하여 방위 경성에 물샐틈없는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대피호 설치는 당국의 지시에 따라 파는데 대피호는 각자가 들어갈 수 있게
143
각 가정에 만들고 공공대피호는 여러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각 직장 또는 거리의 광장,
도로 등에 되도록 많이 만들어 만일의 경우에는 누구든지 들어가 대피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시급히 착수하여 각 애국반을 대대적으로 동원시켜 자재와 비용을
되도록 덜 들여 절대적인 봉사작업으로써 착수한다. 한편 거리와 광장의 공공방공호는
애국반과 학교총력대를 동원하여 앞으로 한 달 안으로 전면적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이에 후루이치 부윤은 다음과 같이 대피호 설치에 대하여 일반의 협력을 구하고 있다.
대피호나 방공호를 판다는 것은 적을 무서워한다기 보다도 적의 맹폭을 제어하기
위하여 절대로 필요하다. 이번 부내에 설치하는 것은 모두 당국의 지시에 따라 각 가정
과 거리에 설치하고, 일반의 봉사를 절대로 요청하는 만큼 부민은 이 일에 솔선하여
한시라도 빨리 일을 마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부엌, 마루 밑, 장독 밑에
매우 간단하게 되도록 많이 설치하고, 각 정내에서 비교적 너른 마당이나 광장을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는 특히 공공방공호 설치 장소로 제공하여 대피호와 방공호 설치에 전면
적인 협력을 바라마지 않는다.
키워드
폭격, 항공보급전, 방공연습, 방공기재 정비, 방공호, 대피호 설비. 개인용 대피호, 공공
대피호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4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4
제목
寄留地에서 徵兵檢査 學徒徵集에 關해 軍報道部에서 注意
(거주지에서 징병검사, 학도 징집에 관해 군 보도부에서 주의)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10월 03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기사 6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육군에서는 지금까지 재학 중인 학생에게 징집을 연기하여 오던 것을 정지하고 임시
징병 검사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2일 관보로써 공포, 동시에 각 신문 2일 조간에
그 내용의 요지가 발포되었다. 그 내용에서 『임시 징병검사를 받을 사람은 그 본적지에
서 검사를 실시한다』고 되어 있으나, 조선에서는 직접 현지에서 그대로 검사를 받아도
좋으므로 조선군 보도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1943년(昭和18)도 임시 징병검사에 관한
요항』을 발표하여 『검사를 받을 사람은 본적지까지 가지 않아도 기류지에서 받게 된다』
고 전기 발표된 내용 중 잘못된 곳을 정정하였다.
병역법 제41조의 규정에 의하여 재학때문에 징집을 연기하여 온 자는 금회에 제4항
의 규정에 의하여 당분간 징집의 연기를 하지 않기로 되어 2일 칙령으로써 공포되었다.
학생 징집 연기가 허가된 자와 오늘까지 재학 중이라는 이유로 연기를 해 오던 이유가
끝난 자는 임시 징병검사를 받게 되어 육군성령으로써 2일 공포되었다. 임시 징병검사
를 받을 사람은 10월 10일까지 거주지에 징병검사 수검계를 다음과 같은 구분에 따라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부(府)(경성부를 제외함)에 거주하는 자는 부윤에게 제출해야 한다.
2. 경성부에 거주하는 자는 관계 구장에게 제출해야만 한다.
3. 읍면에 거주하는 자는 병사관인 도경시 이름 앞으로 읍면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읍면장은 수검계를 모아서 경찰서장을 경유하여 10월 15일까지 도착하
도록 하고, 이를 병사관인 도경시에게 제출해야 한다. 병사관인 도경시, 부윤, 구장은
수검계에 따라 장정 인원표를 만들어서 10월 20일까지 육군 병사부장에게 보내는 동시
에 수검장의 본적, 씨명, 기타 필요한 사항을 본인 본적지의 지방사무소장, 지청장 또는
부윤에게 통지해야 한다. 징병검사의 일정 및 장소는 육군 병사부장의 결정에 의하여
10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 거행한다.
키워드
재학 중 학생 징집 연기 중지, 임시 징병검사, 조선군 보도부, 1943년(昭和18)도 임시
징병검사에 관한 요항, 병역법 제41조 제4항, 칙령공포
145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5
제목
御造營勤勞奉仕隊 扶餘神宮에 今秋도 聖鍬部隊動員
(조영 근로봉사대, 부여신궁에 금년 가을도 성초부대원)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10월 05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땀의 봉사로서 부여신궁의 조영을 하루라도 빨리 완성하고자 근로봉사대의 동원은
뒤에 뒤를 잇고 있는데 오는 8일 대조봉대일에 체신국 직원이 출동하고, 부내 각 남녀
중등학교 생도들의 단체 봉사대가 성역에 교대로 동원되어 씩씩하게도 삽자루를 쥐고서
작업에 참가할 터이다.
이번은 국민총력경성부연맹에서 알선하여 보내는 추계 근로봉사대인데 오는 11월
1일까지 25일 간에 전 인원 1,200명이 출동되고 그 중에는 숙명여자전문생도들도 하루
의 봉사를 행하여 처창한 이 결전하에 학도들의 기개를 충분히 발휘할 터이다. 이번
봉사대 출동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10월 8일 체신국 ▲9일 경성여자공립실업학교 ▲10일 동덕고등여학교(1반) ▲11일
동덕고등여학교(2반) ▲12일 동덕고등여학교(3반) ▲13일 배화고등여학교(1반) ▲14일
배화고등여학교(2반) ▲15일 경성덕수공립상업학교(1반) ▲16일 경성여자상업학교(1
반) ▲17일 경성여자상업학교(2반) ▲18일 경성여자상업학교(3반) ▲19일 성신가정여학
교 ▲20일 경성원예학교 ▲21일 한영중학원 ▲22일 경성 덕수공립상업학교(2반) ▲23일
경성지방 전매국 ▲25일 경성제일공립상업학교(1반) ▲26일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2
반) ▲27일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3반) ▲28일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4반) ▲29일
동인중학원 ▲30일 조선교화학원 ▲31일 숙명여자전문학교 ▲11월 1일 동아공과학원
키워드
부여신궁, 체신국, 경성여자공립실업학교, 동덕고등여학교, 배화고등여학교,
경성덕수공립상업학교, 경성여자상업학교, 성신가정여학교, 경성원예학교,
한영중학원, 덕수공립상업학교, 경성제일공립상업학교, 동인중학원, 조선교화학원,
숙명여자전문학교, 동아공과학원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46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6
제목
이제야말로 學校는 兵營化 決戰即應의 强力한 態勢完成되다 / 理工系以外는 整理 靑訓에
서도 生産戰士養成 / 志願에 依해 軍務服役 勤勞奉仕, 一年에 四個月
(이제야말로 학교는 병영화, 결전 즉응의 강력한 태세 완성되다 / 이공계 이외는 정리
청년훈련소에서도 생산전사 양성 / 지원에 의해 군무 복역 근로봉사 1년에 4개월)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10월 14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상당,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이공계 이외는 정리 청훈서도 생산전사 양성-
우리들도 전열에! 반도 250만 학도에 소집령이 내렸다. 나라가 홍하느냐 망하느냐의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학도라고 해서 어찌 학창에만 파묻혀 있을 수 있으랴. 나라가
없이 무슨 학문이랴. 배우며 싸우고 싸우며 배울 때는 바로 지금이다. 과학전에 필승을
기하고 기운 있고 학문 있는 산업 전사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공급하고자 총독부에
147
서는 내지의 방침에 따라 이공과 계통 학교를 확충하고 법문과 계통 교육은 철저히
줄이기로 방침을 결정하고 13일 다나카(田中) 정무총감 담(談)으로 『조선에서 교육에
관한 전시 비상조치 방책』을 발표하여 적전교육의 내용을 분명히 하고 전시 학교의
갈림길을 밝혔다. 법문과 계통 학생들은 공책과 연필 대신에 총과 괭이를 메고 전선으로
공장, 광산으로, 이공과 학생들은 과학전사로서 새로운 결의로 총진군할 때가 드디어
왔다.
적전교육은 무엇을 하려고 하나. 구체적 내용은 근본방책에 따라 학무국에서 결정하
여 차례차례로 곧 실시하기로 했거니와 일반의 가장 큰 관심은 의무교육과 법문 계통
대학전문교육이 어찌 되느냐이다. 의무교육에 관해서는 기정 방침대로 1946년(昭和
21)도부터 6년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와 같이 큰 전쟁을 하면서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위대한 나라에 태어난 것을 우리들은 다시금 감사해 마지않는 바이다.
이공계 학교 확충과 법문계 교육 축소 이 점에 관하여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와
의학부는 내년도부터 정원을 늘리고 법문학부는 훨씬 줄이고 경성고등공업, 경성광산전
문같은 이과 계통 전문학교도 정원을 늘린다. 문과 계통 사립 전문학교는 이과 계통으로
전환하며 기타 전문학교는 정리, 통합한다. 이화여자전문, 숙명여자전문같은 문과 계통
여자전문학교는 그대로 두나 교원, 사무원, 지방보도원 같은 『일하는 여성』의 양성기관
으로 한다. 이과 교원 양성기관은 적극 확충하여 이과교육을 충실히 한다.
중등교육 중학교육은 내년 3월부터 4학년을 마치면 상급학교 입학자격을 인정하고
내후년 3월부터는 전면적으로 4년제로 한다. 중학교와 고등여학교는 현재 이상 늘리지
않고 앞으로는 공업학교, 농업학교, 여자상업학교를 많이 세우고 남자상업학교는 내년
도부터 차차로 공업학교, 농업학교, 여자상업학교로 고친다.
청년훈련소 지금 조선에 있는 약 2,000교의 청년훈련소를 뜯어고쳐 군대 일을 볼
수 있는 사람과 생산 전사의 양성기관으로 한다.
각종 학교와 사설 학술강습소 정리 각종 학교는 초등 정도의 것은 국민학교 교육의
보조기관으로서 당분간 그냥 두고 사설 강습소는 국어강습소에 한하여 인정하고 그
외의 것은 전부 없앤다.
-지원에 의해 군무복역, 근로봉사, 1년에 4개월-
근로동원강화 제일선에서는 피투성이의 격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데 학교에서 평안히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학도된 자는 누구나
마음껏 공부하고 마음껏 일하여 학행일체의 전시 학도의 본분을 다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종래 중등 이상 학교에서는 1년에 30일이던 근로동원을 앞으로는
1년에 4달 동안 하기로 했다.
법문계 반도인 학도의 지원에 의한 군무 복역 법문계 교육이 정지되고 축소됨에
따라 내지와 반도의 법문 계통 대학과 전문학교 재학생 가운데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는 사람도 상당히 많이 생길 터인데 징병 적령기는 지났으나 지원에 의하여 특히
군무에 종사할 수 있는 길을 열기로 되었다. 이리하여 반도 학도는 내지 학도와 꼭
같이 공책과 연필을 총과 칼로 바꾸어 적 미영의 격멸전에 젊은 힘과 피를 폭발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랴. 몸이 약하여 군무에 종사하지 못하는
학생은 산업전사로서 징용하여 국방 제2선에서 봉공할 길도 준비되어 있다.
키워드
과학전, 다나카(田中) 정무총감, 이공계 학교 확충과 법문계 교육 축소, 청년훈련소,
각종 학교와 사설 학술강습소 정리, 근로동원강화, 법문계 반도인 학도의 지원에 의한
군무 복역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48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7
제목
半島學徒에 特別志願兵制 適齡經過者에 恩典 今日 陸軍省令公布實施 - 特別志願兵制實施
內容
(반도학도에 특별지원병제, 적령 경과자에 은전, 금일 육군성령 공포 실시 / 특별지원병
제 실시 내용)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10월 21일
기사위치
및 크기
1면 / 제목 5단, 기사 8단
신문기사
원본
149
기사
주요내용
(전략)
-특별지원병제 실시내용-
금번 반도인 학생에게 군무에 복무하는 광영의 길을 열게 된 특별지원병 채용규칙은
『1943년도 육군특별지원병 임시 채용규칙』으로 육군성령 제48호로써 공포하여 즉일로
실시되었는데 본 규칙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자격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은 반도(대만도 같음) 동포 중에 현재 적령이 지난 자 또는
징병 적령인 자, 즉 1923년(大正12) 12월 1일 이전에 탄생한 자로 종래 재학 징집
연기의 특전을 받고 있던 대학, 고등, 전문학교 정도의 학교에 현재 재학하고 있는
자면 모두 자격이 있다. 대체로 대학, 전문학교의 학생으로 적령인 자 또는 적령이
지난 자는 자격이 있는 셈이다. 물론 저번 징집 연기를 정지한 때에는 특히 입영 연기가
허가되어 있던 의학부, 이학부, 공학부 및 주로 의학 또는 공학에 관한 학과를 교수하는
전문학교 및 문리과 대학, 고등사범학교, 사범학교에 재학하는 자는 이번에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지원 방법 지원하고자 하는 자는 11월 20일까지 도착하도록 원서와 학력 일람표를
첨부하여 학교 소재지의 소관 군사령관에게 제출하는 동시에 현재 취학하고 있는 학교
장으로부터 성적 증명을 얻어야 한다. 원서는 육군특별지원병령에 의한 복역원과 같이
본적지, 현주소, 본인, 호주,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연서로써 군사령관에 지원한다. 또
학력일람표라는 것은 육군보충령 시행규칙에 있는 간부 후보생 지원자 학력일람표와
같은 형식으로 다만 『특별지원병 지원자 학력일람표』라고 하면 좋다. 이는 국민학교
초등과 수료 이후 학교의 입·퇴학·졸업에 대하여 기입하는 것으로 『모년 모월 국민학교
초등 수료』라는 것부터 순차로 현재에 취학해 있는 학교까지 입학·졸업·퇴학 등을
열거하고 학교 졸업시 교련 예정 합격이면 이를 각각 기입하여야 한다.
그리고 학교장은 지원자의 성적 증명서를 작성하여 12월 5일까지 학교 소재지의
소관 군사령관에게 송부해야 하며 배속 장교가 있는 학교에서는 배속 장교 또는 그
지원자에 대한 고과 자료를 작성하여 군사령관에 제출해야 한다.
채용 검사 검사는 12월 1일부터 20일까지 사이에 시행된다. 신체검사가 주가 되지만
이와 아울러 인물고사도 행할 것은 물론이다.
입영 시기 내년 1월 20일까지이다. 이 또한 지금 번의 임시 징병검사에 의하여 내지
인 학생과 똑같이 하고자 노력해 오던 중인데 내지인 학생같이 징병검사를 받은 자가
다만 그 시기를 연기된 것과는 달리 돌연히 소위 임시 규칙이 생겨 특별히 지원의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 혹시 추후에 먼 곳에 있는 양친에게 충분한 의론을 하여 그 양해를 얻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여 당국의 친절한 마음으로 원서 제출 기일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여유를 예상하고 결정한 것이다.
합격자 취급 합격자는 곧 현역에 편입된다. 종래 일반 특별지원병은 입대하기 전에
입소하여 6개월 동안 훈련을 받기로 했다. 이번 특별지원병은 이미 고등교육을 받은
자뿐이므로 그 점을 고려하여 곧 입대하여 현역에 편입된다.
장래 취급 입영 후 취급은 정한 교련 검정에 합격하면, 일반 징병검사를 받고 입대하는
간부후보생 자격자와 같이 취급된다.
키워드
특별지원병제 실시, 1943년도 육군특별지원병 임시 채용규칙, 육군성령 제48호, 지원
방법, 채용 검사, 입영 시기, 합격자 취급, 장래취급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50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8
제목
松炭油生産成績滿點 京畿道는 第三位를 確保
(송탄유 생산 성적 만점, 경기도는 제3위를 확보)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10월 29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2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중유의 대용으로서 등장하여 인기를 일신에 집중하고 있는 송탄유 증산은 가민(家民)
의 절대한 노력이 주효하여 생산량이 점차 증가되어 갈 뿐만 아니라 기술의 개선으로
인하여 유질도 대단히 상향되어 가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7월의 예정 수량 OO『키로리틀』(kL)에 대하여 102『퍼-센트』(%)의 실
적을 올린 이래 계획 수량을 대대적으로 확충하여 8월에는 7월의 4배, 9월에는 실로
8배의 대량이었다. 9월 말 현재 누계 성적은 예정 계획의 6,408 『퍼-센트』(%)라서
조선 13도 중 경북, 황해 양도에 버금가는 제3위를 점령함에 이르렀다. 다음 송탄유
제조의 부산물 『와사용』 목탄은 강원도의 버금으로 제2위를 차지하여 좋은 성적이었다.
도에서는 다시 조선의 제1위를 목표로 하고 예의 생산을 독려하는 중 산림과 당국은
각 공장에 대하여 특히 다음의 여러 점을 요망하고 있다.
1. 양질의 자재를 수집할 것
2. 기술에 있어서 (가) 축요(築窯)를 정밀히 할 것, (나) 온도의 조절에 유의할 것, (다)
이상 2항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마의 감시를 철저히 할 것
키워드
송탄유, 경북, 황해, 경기도 3위, 와사용 목탄
15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69
제목
不瀎의 喊聲 가자! 決戰場으로 - 高商, 法專, 高水三校는 適格者全員勇躍出願 - 感激,
志願兵에 半島學徒總進軍
(불감의 함성 가자! 결전장으로, 고상, 법전, 고수 3학교는 적격자 전원 용약 출원,
감격, 지원병에 반도학도 총집군)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11월 06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육군특별지원병제 실시에 따라 힘차게 열린 광영의 군문으로 총궐기한 반도학도들의
기쁨과 감격의 파문은 지금 머나먼 결전장에까지 부딪히고 있다. 나도 너도 모두 손잡고
나가자는 군호 소리는 나날이 각 학창에 높아지고 있는데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하여
징집 유예가 정지되는 조선 10개 대학, 고등전문학교는 4일까지 지원자 수를 보면
총학생수(반도인) 1,600명 가운데서 내년부터 실시되는 병역법에 의하여 당당히 군문
에 들어가는 징병 적령자를 제외하고 특별지원병이 될 유자격자는 935명이다.
솔선 지원하여 출진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구학도가 124명, 그중에는 법학전문
학교의 40명, 경성고등상업학교의 32명, 부산고등수산학교의 22명은 전원이 지원하여
결전학원의 기염을 토하고 있다. 다른 학교 학도들의 등정을 학교 당국에 타진한즉
20일 지원 마감날까지는 전원이 지원할 것이 확실하다고는 하나 어찌 마감 날짜를
기다릴 때이랴. 반도학도의 기개는 벌써 적을 삼키고 있다. 하루바삐 출진하여 적 미영을
격멸하라. 이것이 부형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원이며 향토 선배, 후배의 한없는
부탁이다.
■성대 반도에 단 하나인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는 95명의 반도학도가 있는데 그중
에는 4명의 징병 적령자가 있으므로 특별지원병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1명이다.
그러나 그 중 네 명은 신병으로 벌써 전부터 휴학하고 있으므로 87명이 자격자수이다.
4일까지 지원한 사람은 9명이나 마감까지는 전부가 지원할 것을 확신한다고 오우찌
(大內) 학생과장은 최고 학부에서 배우는 그들의 시국과 학도의 본분에 대한 투철한
인식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52
■고상 고등상업학교에는 반도인 재학생 총수 85명인데 그 중 적격자 32명이 모두
명치절의 가일에 지원을 했다. 그리하여 전교 내선 생도가 명치절 봉축을 마치고는
32명을 에워싸고 교가를 불러 그들의 출진을 축복했다. 남아 있는 53명의 미적령
생도들도 형들의 뒤를 따를 결의로 의기를 높이고 있다.
■법전 경성고등상업학교에 뒤이어 법학전문학교에서는 반도인 재학생 총수 100명
가운데 적격자가 40명인데 그 전부가 『펜』을 던지고 교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고 한
교실 한 책상에 마주 앉아 배움을 같이하던 내지인 학우들과 같이 미영 격멸의 제일선
에 나아가겠다고 지원했다. 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도들은 전부가 입학할 때부터 제국
군인이 되려는 굳은 결의 밑에서 들어온 것이다. 다른 학교에 비하여 총검도와 검도에
더욱 힘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달 20일의 임시 특별지원병 채용의 마감을
앞두고 유자격자 40명은 하루라도 빨리 출전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연전 연희전문학교에서는 이미 4명의 명예스러운 지원자를 내었다. 가와니시(河西)군
등 3명은 지난 31일 군사령부를 방문하고 누구보다 먼저 힘차게 지원서를 내놓았으며
또 한 명 다케모토(武源)군은 3일 명치가절을 기념하여 진성(□誠) 두 자의 혈서로써
가라시마(辛島) 교장 앞에 피끓는 결의로 영광스러운 황군의 한 사람이 되겠노라고
지원서를 내놓았다. 이 학교는 문과, 이과, 상과 등 전교생 410명 중 적격자가 293명
이나 되는 많은 수인데 20일 마감날을 앞두고 거의 태반이 지원할 것으로 보여 학도들
의 결의는 자못 높다. 특히 6일에는 졸업생들이 궐기하여 출전 학도의 앞날을 빌고
앞으로 지원할 후배들을 격려하는 특별지원병제도 축하강연회를 열어 반도청년의
명예에 넘치는 총궐기를 북돋기로 했다.
■보전 보성전문학교에는 총 생도수 350명 가운데 적령 혹은 적령을 넘은 생도가 260
명, 그중에서 지원자가 3일까지 3명이다. 그런데 전교 생도가 8일 동안이나 야외
연습에 나갔다가 3일에야 돌아온 탓으로 생도들에게 지원병에 대한 취지를 강조한
날도 3일이었다. 그러므로 5일부터는 지원자가 훨씬 증가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아마도 적령자 중 반수 이상은 확실히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대예 경성제국대학 예과에서는 현재 반도인 재학생 150명 가운데 적격자가 15명인데
그중 2명이 우리들도 미영 격멸의 결전장으로 나가겠다고 지원했다. 앞으로 유자격자
들은 소용되는 서류 일체를 갖추어 이달 20일 마감까지는 전부 지원할 예정이다.
■고수, 고농 부산고등수산학교의 적격자 22명 중 11명은 2일 점심 시간에 다나카(田
中) 교장에게 지원 결의를 말하였는데, 4일 나머지 11명도 나란히 지원하여 전원
지원의 영예에 빛나고 있다. 수원고등농림학교는 농학과, 임학과, 수의축산과, 농업토
목과를 통하여 56명의 적격자가 있는데 아직 지원한 사람은 없으나 20일까지는 전원
이 지원할 것이 틀림없다는 유카와(湯川) 교장의 자신만만한 언명이다.
■혜전, 명륜 혜화전문학교는 전교생 223명 중 적격자가 51명인데 아직 수속, 기타에
관한 준비 관계로 오는 10일까지가 아니면 확실한 수를 알 수 없으나 상당히 많은
생도가 지원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명륜전문학교는 101명 가운데 적격자는 75명,
이미 지원을 한 생도는 10명인데 그 10명 생도들의 원적지와 이름은 다음과 같다.
▲충남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 180 신정박문(新井博文) ▲강원도 금화면 읍내리 455
풍천무현(豊川武顯) ▲인천부 현무정 86 암본장웅(岩本壯雄) ▲전북 전주부 대정정 2정
목 93 삼중일홍(三中一弘) ▲경성부 관훈정 90 임영조(林榮造) ▲경성부 명륜정 1정목
27의 32 대전철조(大田哲造) ▲경성부 가회정 208 이판용만(伊坂鏞萬) ▲경남 창녕군
창녕면 조산리 185 송강보(松岡實) ▲전남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211 오일랑(呉一郎)
▲전북 전주부 고사정 13 이가윤오(李家侖吾)
키워드
병역법, 특별지원병,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고등상업학교, 경성고등상업학교,
연희전문학교, 보성전문학교, 경성제국대학 예과, 부산고등수산학교,
수원고등농림학교, 혜화전문학교
153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0
제목
志願兵에榮光잇스라 - 出陣學徒들에二千五百萬丹誠의祈願
(지원병에 영광 있으라, 출진 학도들에 2,500만 단성의 기원)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11월 21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2단 상당, 기사 1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11월 20일이 드디어 왔다. 그날이 오고 보니 반도의 자랑이오, 2,500만 동포의 보화
인 청년 학도들은 거의 전부가 동포의 기대에 어그러짐이 없이 용약 출진을 결의한
것이 알려져 우리의 감사는 새롭고 감격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출진을 결의한 학병
제군이여! 생이냐 사냐의 두 갈림길에서 군들의 판단은 정확하였고 군들의 결단은 용감
하였다.
오늘에 보니 그 정당한 판단과 용단은 누구보다도 군들 자신이 다시 한 번 만족하게
생각할 것이다. 내지 동포와 꼭 같은 마당에서 흉적 미영을 우리 칼과 우리 피로 정복하
여 동아 10억의 창생을 영원히 구제하는 이 성전에 지금 군들은 보무 당당한 대진군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통쾌한 일이 아니냐. 사나이로 태어난 보람이 이에 더
클 바가 있으랴. 그러나 또 한편 이날에 보니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우울하게 하는
일이 있다. 지원하지 않은 학도 그들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 마당에 그들의 무지와
무기력을 책할 용기조차 없다. 다만 한마디 제군과 책상을 같이한 동포들은 결전장으로
물밀듯이 달려 나가는데 제군은 남아서 이제부터 무엇을 하려는가를 묻고 싶다. 승리를
회피하고 그 대신 패망을 택한 제군인지라, 현실의 시련 가운데서 잠자고 황국신민되는
연성을 받아 재생의 길을 밟을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기약할 것이다.
대동아건설의 역사와 함께 길이 기억될 이 날, 2,500만 반도 동포는 출진하는 제군
학병들의 마음을 거울로 하여 이 전쟁을 이기고 새 조선을 건설하는 데 온갖 힘을 기울여
뒷바침할 결의를 새롭게 한다. 『새 조선의 첨병』인 학병 제군이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동아의 승리자가 되라. 길이길이 군들의 무운장구를 빈다.
키워드
출진결의 학병, 황국신민, 대동아건설, 새조선의 첨병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5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1
제목
入營前의 準備訓練-今日, 志願學徒臨時鍊成所開所式
(입영 전의 준비훈련, 금일, 지원학도 임시 훈련소 개소식)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3년 12월 22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4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조선 각지의 검사장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검사를 마친 특별지원 학도들은 지금 부형
은 물론이요, 일반 사회의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성원을 받들면서 내년 1월 20일 영예롭
게 입영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검사를 마친 지원 학도는 조선 내 각 대학, 전문학교에서는 각 학교별로 이미 입영을
앞둔 준비 연성을 실시하고 있는 터인데, 내지에 가서 공부하다가 지원하고 반도에
돌아와 있는 학도 또 내지와 조선 내 각 학교 졸업생으로 이번 용약 지원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특히 경성제국대학과 동성상업학교의 두 곳에 『특별지원학도 임시 연성소』를
개설하고 오보리 대좌를 소장으로 하여 22일부터 일주일간 준비 연성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 개소식을 고이소 총독, 이타가키 군사령관 이하 군관민 임석하 22일 오후
2시부터 경성제대 운동장에서 엄숙 성대하게 거행하기로 했다. 돌아보건대 특별지원병
제도 발표 이래 군국반도의 애국지성은 하늘을 꿰뚫을 듯이 폭발되었다. 2,500만 민중
155
이 오직 한뜻이 되어 훌륭한 지원자를 군국에 바치자고 일대 국민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결과 조선과 내지의 각 대학, 전문학교에 재학하는 학도는 물론이요,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앞을 다투어 지원하게 되었으며,
그들을 군에서 검사한 결과는 정신과 체격이 모두 훌륭하여 제국의 중견군인으로, 또
대동아의 지도자로서 적당하다는 반가운 총평을 받게 될 것이다. 젊은이의 충성과 의기,
실로 군국반도의 자랑이었다. 수문연무의 오랫동안 고등교육은 실로 헛되지 않았었다.
이렇게 되어 내년 1월 20일 입영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인데 내지에서 돌아온 학도들
도 조선 내 각 학교 재학생과 같이 준비 연성을 실시하기로 하여 임시 연성소 개소식이
드디어 거행되는 것이다.
개소식은 국민의례로 시작되어 교육칙어와 조서 봉독이 있고 필승을 기원하는 묵도
에 뒤이어 오보리 소장의 훈시가 있을 터이다. 이어서 연성소 개설에 반도의 아버지요
학도의 어버이로서 온정을 베푼 고이소 총독의 간절한 훈시와 이타가키 군사령관의
훈시가 있은 다음 대원의 선서가 있고 『우미유까바』 합창으로 3시경 식을 마칠 예정이
다. 식이 끝난 후에는 임시 연성소인 제국대학과 임시 연성소 제2대대인 동성상업학교
의 두 곳에 합숙하면서 일주일 간 장래 훌륭한 황국군인이 될 것을 목표로 하는 철저한
준비 연성이 시작될 예정이다.
키워드
입영, 대학, 전문학교, 특별지원학도임시 연성소, 오보리 대좌, 고이소 총독, 이타가키
군사령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56
7) 1944∼1945년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2
제목
敎室은 兵營에 通한다 - 學徒 軍事敎育 强化 - 半島서도 來四月부터 實施 準備 (교실은
병영에 통한다. 학도 군사교육 강화, 반도서도 오는 4월부터 실시 준비)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4년 02월 06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기사 4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구적 미영 군은 지금 『마샬』제도까지 공격해 왔다. 우리들의 학병들은 임의 총검을
잡고 단호히 일어섰다. 어찌 총후 학원에는 나머지 학도, 생도, 아동들인들 막연히 때를
보내기만 하랴. 교문을 곧 군문으로 알고, 운동장을 곧 결전장으로 생각하여, 몸과 마음
을 강철같이 단련하고 철저한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장차 황공하온 부르심을 받자옵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적 황군이 되어 전열로 돌격하여야 된다고 총독부에서는 일찍부
터 조선 200여 남자, 중등, 전문, 대학에 일제히 장교 교관을 배속시켜 철저히 군사훈련
을 실시하는 동시에 얼마 전에는 군 당국과 신중히 협의한 후 결전학원의 군사훈련
강화에 대한 각서 요강을 결정하여 만전을 꾀해 오던 터이다.
그러나 지난 4일에 문부성에서 발표된 『교육에 관한 전시 비상조치 방책에 따르는
학도의 군사교육 강화 요강』에 따라 금후 반도 내의 학교 군사교육을 강화하여 한층
157
기초 훈련의 철저를 기하는 동시에 특히 대학, 고등전문학교에서는 지휘 능력을 향상시
키는 한편 특별훈련을 강화시켜 징병제 실시의 만전을 기할 터이다.
이 군사훈련 강화 요강은 국민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의 종래의 교련 내용을
다시 검토하여 군인정신의 앙양, 교련과 특별훈련의 철저를 목표로 하여,
(가) 국민학교의 교련은 군사 기초훈련의 철저를 기하는 동시에 새롭게 초보의 통신
기초교육 (수기 와 『모르스』 신호등)을 가르친다. (나) 중등학교는 한층 실제 전투에
알맞도록 일반 기초훈련과 통신 기초교육을 베푼다. (다) 고등전문학교에서는 기초훈련
의 철저와 지휘 능력의 향상을 꾀하며 특히 적격 학생의 일부에 게는 보병 중화기와
(라) 대학에서는 지휘 능력을 향상시켜 일부 특정 학생에게 화포의 교련을 실시한다
는 것을 요령으로 하고 대학, 전문 학생에게는 대개 매 주일 한 번 이상을 실시하고
따로 특별훈련으로서 항공에 중점을 두어,
(가) 중등학교는 활공 훈련의 초급
(나) 고등 전문대학에는 활공 훈련의 중급과 상급의 1부를 실시하되 중학교 3학년
이상은 1년에 30시간, 그 이상의 학생에게는 각각 교련 중 시간의 2분의 1 내지 전부를
충당시키기로 할 것이다.
이 외에도 군사 교습의 시간을 두어 전술, 전사 등의 군사학을 비롯하여 총포, 탄약,
화학 병기, 자동차, 전차, 군용 통신기, 비행기, 전파 병기 등의 구조, 기능, 수선, 취급에
관한 것과 혹은 위생근무, 방공구호, 건병대책, 항공의학 등도 가르치게 되는데 종래보
다 이공계에는 5할 이상, 법문과계에는 10할 이상의 교련 시간이 증가될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오는 4월의 새학기부터 실시될 터인데 총독부에서는 반도의 실정을
참작하여 최근 구체적 실시 방법을 자세히 결정하는 동시에 필요한 시설과 교수력의
확충, 정비를 신속히 꾀할 터이다.
키워드
마셜제도, 학도, 생도, 아동들, 교문 곧 군문, 군사훈련, 교육에 관한 전시 비상조치
방책에 따르는 학도의 군사교육 강화 요강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58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3
제목
學徒勤勞動員-十九日發表, 新學期實施(학도근로동원 19일 발표, 신학기 실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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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4년 03월 20일
기사위치
및 크기
1면 / 제목 2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중대하게 전국에 대처하고 징병 적령 저하에 갖추어 학교 군사교육을 쇄신 강화하여
직접 전투력의 배양을 도모한 총독부에서는 이와 병행하여 결전 비상조치로서 학도
동원을 강화, 철저히 하여 전력기지 반도의 군수물자와 식량증산에 기여하는 동시에
학행일체 교육 즉 실무의 황국교육의 도표를 수립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지의 『긴급
학도근로동원 방책요강』에 준거한 『학도동원 비상배치 요강』과 본 요강에 기반하여
국민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동원 요강을 규정한 『학도동원 실시 요강』을 19일
발표하고 4월 신학기를 기하여 실시하기로 했다.
동원은 내지에서도 국민학교 고등과 이상부터이나 조선에서는 직업과의 관계로 국민
학교 4학년 이상으로부터 실시하고 1개년 간 4개월이 표준이므로 동원 대상 학도 약
100만 명, 연인원 1억 2,000만 명이 생산전사로서 미영 격멸전에 정신하게 된다.
(중략)
-학도동원 실시 요강-
학도의 근로동원은 그 수인태세를 정비하는 동시에 학도가 받는 교육의 종류 정도에
적응시켜 그 효율을 발휘하도록 하되 다음과 같이 실시함. 단, 필요에 따라 다른 작업에
159
종사하게 함.
초등학교
국민학교 아동의 동원은 대개 초등과 제4학년 이상으로 하고 토지의 상황, 심신의
발달을 고려하여 적당한 작업 종목을 골라 실시함.
중등학교
1) 공업학교 생도는 대개 군 관계, 기타 중요 공장사업장에 동원함
2) 상업학교에서 전환한 공업학교의 생도가 특정 공장에서 현장 작업을 하는 경우,
또는 학교를 군수공장으로 만드는 경우에는 대개 각각 해당 공장 또는 관계 공장에
동원함.
3) 농업학교 생도의 동원은 식량증산과 국방 건설사업 등에 중점을 둠.
4) 중학교, 상업학교, 고등여학교 생도의 동원은 토지 상황과 근로 수급 상황을 감안하
여, 식량 증산, 국방건설, 학업 또는 공장사업장(수송을 포함) 등의 작업에 동원함.
그리고 여자의 동원은 가급적 학교 설비의 공장화로 근로의 결실을 거두도록 고려함.
대도시에 있는 중학교, 상업학교 생도는 필요에 따라 방위 및 방공시설 사업에도
동원함.
대학고등전문학교
(1) 이과 학생 생도에 대해서는 다음에 의함.
-공업 및 이학 관계-
(가) 공업 및 이학 관계의 학생, 생도 근로동원은 제3학년, 제2학년에 중점을 두지만
필요에 따라 저학년의 학생, 생도도 동원함.
(나) 현재 제3학년 학생, 생도는 원칙적으로 이수한 학과의 종류에 따라 가장 적당한
공장 사업장 등에 동원하여 기술적 지도면에 활용하도록 조치함. 제2학년 학생,
생도에 대해서도 가급적 위에 준함.
-의학 관계-
(가) 의학 관계 학생, 생도의 실습 근무는 제4학년 및 제3학년에 중점을 두나 필요에
따라 저학년의 학생, 생도도 동원함.
(나) 현재 제4학년 및 제3학년의 학생, 생도는 군병원, 학교 부속병원, 공장 사업장
부속병원 등에서 실습 근무를 하게 함.
(다) 현재 제4학년생 학생, 생도는 본년 7월 이후, 현재 제3학년의 학생, 생도는 내년
4월 이후 각각 군무, 기타의 실무에 복무할 수 있도록 조치함.
-농학 관계-
농학 관계 학생, 생도의 근로동원은 원칙적으로 이수하는 학과의 종류에 따라 전문으
로 공부한 것을 가장 능률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식량증산 및 공장 사업장 등에 동원하고
특히 식량의 증산 및 수하 작업 등에서는 지도자로서 활용하도록 조치함.
(2) 전항 이외의 학생, 생도는 토지의 상황, 근로 수급의 상황 등을 참작하여 식량증산,
국방 건설사업 또는 공장 사업장(수송을 포함함) 등의 작업에 동원하여 기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지도함.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60
(3) 교원양성 제학교
실업학교 교원양성소 및 사범학교 생도에 관하여는 (2)에 준함
-비고-
1. 학도 동원 계획의 수립 및 지도, 감독을 담당하기 위해 본부 및 각 도에 각각 학도동원
본부를 설치함.
2. 대학, 고등전문학교 이과 계통의 동원은 특히 학교 교육과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또 가급적 장래의 취직 배치와도 조응하게 하여 적당한 계획 배치를 실시함.
3. 학생, 생도의 근로동원은 해당 학교 직원을 중심으로 하여 학교를 기본으로 하는
대조직에 의하여 행함. 또 학도의 출동시 교직원을 활발하게 동원하여 지도, 감독을
담당하게 함.
4. 학교총력대의 정비 강화를 도모함.
5. 학도 교사의 군수공장화는 각종의 학교, 특히 여자 학교를 주로 하여 구체화를 도모함.
6. 학도의 동원은 군간부 요원, 기술 요원, 과학연구 요원이 교육 연성과 조정을 도모함.
7. 학도의 방공, 방위 등의 비상 임무는 신속히 동원 태세를 정비하고 단련을 강화
실시함.
8. 근로 종사 중인 학도는 해당 근로의 상황에 따라 식량, 기타 물자의 배급을 행할
것을 고려함.
키워드
징병 적령 저하, 총독부, 긴급학도근로동원 방책요강, 학도동원 실시 요강,
국민학교 4학년 이상
161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4
제목
勤勞精神이第一 - 京畿道學徒動員實施要綱決定
(근로 정신이 제일 - 경기도 학도동원 실시요강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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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4년 05월 24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2단, 기사 1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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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주요내용
근로는 곧 공부며, 또한 훈련이라는 취지하에 학도들을 1년 중 계속하여 근로부면에
등원시키려는 학도동원 비상조치는 이미 일부에서 착착 실행되고 있는데, 경기도에서는
22일 그 동원 실시에 대한 세측을 결정하여 각 중등학교의 부윤 군두 그리고 주요
사업자들에게 보냈다. 그 세측 내용을 보면은 첫째, 금년 학도동원은 수송관계도 있어
다른 도보다는 도내에 한하여 공장사업장, 광산 기타 토목 공사에 동원시키기로 되었다.
또, 국민학교 학동들의 동원은 각 부군에 맡겨서 주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에 동원시키
되 이것을 반드시 학도동원 본부장에게 보고하여 전도적으로 통제를 하게끔 되었다.
그리고 이 동원을 받아들이는 측에서는 근로정신을 높여 능률을 올리게끔 그들의
취급과 시설에 유감이 없도록 하였다.
키워드
근로는 곧 공부며 훈련, 경기도, 학도동원 비상조치, 초등학교 학동들의 동원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62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5
제목
徵用과는 다르다- 나가자, 女子挺身隊 京仁에서도 募集, 內地에 派遣키로
(징용과는 다르다. 나가자 여자정신대, 경인에서도 모집, 내지에 파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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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4년 06월 04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3단, 기사 3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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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기사
주요내용
여자들이여! 속히 생산 전열로 오라는 부름에 응하여 흔연히 생산전장으로 뛰어나오는
여자들의 진군은 날이 갈수록 더욱 우렁찬바 있는데 이러한 추세에 비추어 경기도에서
는 이번 처음으로 여자근로정신대(가칭)를 조직하여 내지의 중요 공장에 보내게 되었다.
이 정신대는 경성과 인천에서 ○○○명을 모집하는데 국민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진 17세로부터 20세까지의 미혼 처녀라야 되며 대를 조직해서 7월 상순에 내지 도야
마현 ○○군수공장에 보낼 터라고 한다. 이 같은 여자근로정신대는 내지에서는 벌써부터
실시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터인데 이번 경기도에서도 늦게나마 부녀자들의 애국적
열성에 응하여 여자들의 정신대를 모집하게 된 것으로 이것은 본인의 자유 의사에 맡기므로
이 점을 오해하지 않도록 노다 경기도 노무과장이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다.
노다 노무과장 담
이번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내지에 있는 ○○중요 공장에 보낼 여자근로정신대 ○○○
명을 경성과 인천 두 곳에서 선발하기로 되었다. 이것은 일반이 오해하고 있는 여자들의
징용과는 전혀 그 성질을 달리하는 것으로 부인은 물론 부형들의 타오르는 황국적 적성
의 발로로서 여성으로서도 자기 힘을 모조리 국가의 중요한 업무에 바친다는 것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내지에서는 이미 많은 전문 여자들이 근로정신대원으로서 남자들과
같이 각 중요 공장에서 땀투성이가 되어 정신하고 있다. 우리 반도에서도 가정에 별
지장이 없는 튼튼한 여성들은 분가하여 애국 적성을 바쳐 사사(私事)를 집어 치우고
총후 직장의 낭자군으로써 돌진하여 저 귀축 미영을 쳐부셔야 할 것이다.
키워드
노다(野田) 경기도노무과장, 여자근로정신대, 경성, 인천, 도야마현(富山), 경기도, 낭자군
163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6
제목
京畿女子挺身隊 目的地安着, 入場式(경기 여자정신대 목적지 안착, 입장식)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4년 07월 08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2단, 기사 2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적 미영을 무찔러 버리고야 만다는 타오르는 결의를 안고서 지난 2일 씩씩하게 경성
역을 떠난 경기도 여자정신대 ○○○명은 노다 경기도 노무과장의 인솔 아래 도중 한
명의 낙오와 사고도 없이 6일 아침 도야마현 ○○공장에 안착했다. 일동은 한 걸음
앞서 생산 전열에 서서 싸우고 있는 내지 선배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면서 그날 오전
11시에 입장식을 거행, 곧 지정해 두었던 합숙소에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인솔자 노다
과장은 7일 대원 일동이 모두 긴장하여 내지 선배들의 싸우는 진지한 자태에 감격하여
한층 더 굳은 결의로서 생산전을 이겨 나갈 것과 반도동포들의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도
록 정성을 다하겠다고 양 볼에 처녀다운 홍조를 띠고 있다고 전보로서 도지사에게
보고해 왔다.
키워드
경성역, 노다(野田) 경기도노무과장, 경기도여자정신대, 도야마현 공장, 생산전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64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7
제목
酒石酸製造에 勤勞學徒動員(주석산제조에 근로학도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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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4년 07월 14일
기사위치
및 크기
3면 / 제목 1단, 기사 1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지난 6월 중순부터 약 한 달 동안 농산촌민들이 총력을 다해 채취한 머루(山葡萄)는
예상 이상으로 취집 성적이 좋은데, 이제부터는 그 머루를 써서 주석산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기로 되었다. 우선 학도들을 동원하여 이 작업을 하기로 되었다. 동원될 학도는
경성공업 55명, 경성약학전문학교 학생 10명, 수원농림전문학교 학생 15명, 합계 80명
으로 오는 18일 오후 2시에 경기도청 제1회의실에 모여 출동장행회를 거행한 다음
각 군에 출동해 21일부터 8월 한 달동안 작업에 땀을 흘리기로 하였다.
키워드
머루, 주석산, 경성공업, 경성약학전문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165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8
제목
緊急增產策評定 廿七日, 各道鑛工部長會議開催 / 八十萬學徒動員 松根, 松炭油 增產戰
(긴급증산책 평정 27일, 각 도 광공부장회의 개최, /80만학도동원 송근, 송탄유 증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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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5년 03월 27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각 2단, 기사 4단, 1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송탄유 송근유 항공기 연료를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대증산하게 된 국가의 긴급한
요청에 따라 총독부에서는 내년도에 송근유와 송탄유의 일대 증산운동을 전개하기로
했거니와 이 같은 두 가지의 긴급증산방책을 협의하기 위하여 총독부에서는 27일 오전
10시부터 제2회의실에서 각 도 광공부장회의를 열기로 했다. 여기에는 각 도 광공부장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66
이 출석하고, 총독부에서 시오다(鹽田) 광공국장 이하 관계관 또 육해군 관계관이 임석
하는데, 협의사항은 내년도에 생산할 송근유와 송탄유의 수량에 대하여 각 도별 생산
책임 수량을 배정한 다음 그 원료를 채취하는 구체적인 방책과 원료 채취할 때 쓰는
용기를 확보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상세히 협의하게 될 것이다.
외람되게도 적 미국군은 본토 상륙을 노리고 있다. 고이소 수상은 적이 만일 본토에
상륙하려고 한다면 이를 바다 위에서 무찔러 버리고 여기서 살아남은 적군이 본토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이를 본토의 바닷가 주변에서 무찔러 버리겠다고 확고한 신념을
토로한 바 있지만 이 같은 용병 작전에도 비행기에 쓰는 휘발유가 없이는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가 없다. 훌륭한 휘발유가 되는 송근유와 송탄유의 증산이 무엇 때문에
긴요하고 시급한가 하는 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각 도별
생산 책임 수량이 배정되면 머지않아 각 부락마다 생산 책임 수량이 결정될 것이거니와
이 기회 일반 민중과 각 학교 학도들도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80만 학도 동원, 송근·송탄유 증산전-
귀중한 항공연료가 되는 송근유와 송탄유를 내년도에 대증산하기로 하여 총독부에서
는 5월 중에 조선의 농가와 초, 중등 남녀 학도를 총동원하여 원료를 채취하기로 했다.
동원 연인원 일반 농촌사람은 약 4,700만이요, 학도로는 중등학교 남생도가 9만 4,974
명, 중등 여생도가 4만2,510명, 국민학교 5, 6년생이 67만 4,227명으로 학도의 동원
연인원만도 81만 1,711명이 될 예정이다. 결국 원료 채취에 동원될 연인원은 5월 중에
만 4,800만을 돌파할 것으로 내년도에 생산할 송근유와 송탄유의 원료는 5월 한 달
동안에 전부 확보될 것이다. 그리고, 동원 학도에게는 장갑, 타올, 지카다비(地下足袋,
노동자용 작업화: 역자주) 각 1개씩과 연필 4자루씩 주기로 했다.
키워드
송탄유, 송근유, 긴급증산방책, 총독부, 광공부장회의, 시오다(鹽田) 광공국장,
고이소(小磯) 수상, 항공연료, 초중등 남녀학도
167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79
제목
女子는 徵用 않고 男子五十까지 對象 - 半島皆勞體制確立의 “國民動員令”
(여자는 징용 않고 남자 50까지 대상, 반도 개로체제 확립의 “국민동원령” )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5년 04월 02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3단, 기사 5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반도의 국민개로체제 확립을 목표로 하는 국민근로동원령이 4월 1일부터 시행된다.
내지에서는 이미 지난 3월 10일부터 시행된 것인데 조선에서는 특수사정을 참작하여
실정에 알맞도록 내용을 결정하고 1일부 관보로써 시행규칙을 공포하여 즉일 시행하기
로 된 것이다. 그 요점은 긴요한 업무에 한하여 요원제를 확립해서 끝까지 그 직장을
지키게 하고 만 12세 이상 50세 미만의 남자는 강력히 징용을 단행하되 여자만은 조선
의 실정을 참작하여 종래와 같이 징용하지 않고 근로정신대의 출동을 강화하기로 된
것 등이다. 이에 대하여 총독부의 다하라(田原) 사무관과 다음과 같은 일문일답을 하였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68
-내지와 다른점은?-
문: 내지와 다른 점은?
답: 내지에서는 만 12세 이상 60세까지 남자와 12세 이상 40세까지 여자를 징용할
수 있게 했으나, 조선에서는 남자는 50세 미만으로 하여 10세의 연령을 줄였고
여자는 종래와 같이 징용은 하지 않기로 했다. 노무 급원이 그리 핍박하지 않은
것과 여자는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한 것인데
금후 필요하면 남자도 60세로 올리고 또 여자도 징용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문: 요원제도의 시행 목적은?
답: 지금까지에는 그리 급하지 않은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징용하여 긴급하고 중요한
사업 직장에 배치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사람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상당히
중요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징용해야 될 것이므로 이 같은 폐단을 없애고 전
사업장을 통틀어 종합적인 동원계획을 실시해서 국가적으로 긴요한 총동원 업무
혹은 이와 비슷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요원제도를 적용하여 요원으로 지정
된 사람은 마음 놓고 그 직장에 봉공하여 능률을 올리도록 하려는 것이다.
-요원에의 법적제한-
문: 요원으로 지정되면 어떠한 법적 제한을 받게 되는가?
답: 중요한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서 도지사가 요원을 지정하는 것인데
지정된 요원에게는 징용이나 노무 알선은 하지 않지만 그 대신 요원은 마음대로
그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또 적당한 이유없이 결근하든지 또는 태만히 일을
쉬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에 위반하면 총동원법 제6조에 의하여 1,000원 이하의
벌금 혹은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또 그 직장에서 그만두고 나오려
면 도지사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것은 중요한 총동원 업무를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요 또 국민근로동원령 제4조에 의하여 법령으로 지정받는
요원이기 때문이다. 즉 총동원 업무가 아니라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관에는 요원
제를 채용한다. 이것은 물론 법령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필요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 요원의 지정은 실제로 어떻게 하는가?
답: 순서를 따라 필요한 부문부터 속히 실시하여 나갈 것인데 우선 총독과 도지사가
요원제를 설치할 업무를 지정한 다음 다시 도지사가 그 직장의 인원을 개인별로
전형 심사하여 최종적으로 요원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직장이 지정
되었다고 현재 그 직장에 있는 직원 전부가 요원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직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만을 지정하는 것이다.
문: 비상시의 취업 시간 연장 등 명령을 내리는 것은?
답: 공습 등 긴급사태가 발생한 경우에는 총독 혹은 도지사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공습 시의 결근, 조퇴를 금지하는 것과 또 취업 시간의 연장, 휴가 제한 등에 관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총동원법 제6조에 의하여 처벌된다.
-동원준비 중요내용-
문: 동원 준비로 중요한 내용은?
답: 종래에는 신체검사 등을 하기 위하여 출두 명령을 냈을 때 이에 응하지 않은 사람에
169
게 벌칙을 적용할 수 없었지만 이것도 금후에는 총동원법 제6조에 의한 벌칙이
적용된다. 또 종래에는 행정 조치로 해 온 대(隊)조직의 편성은 법령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로써 금후에는 대를 조직하여 출동하게 된다. 즉 도지사는 어떤 단체에
대하여 일정한 한도의 인원은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대를 조직하게 하는
것이다. 또 동원 전후에는 근로 훈련에 관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이 명령은 사업
주와 동원된 사람에게 내리는 것으로 이것 역시 위반하면 총동원법 6조에 의하여
처벌된다.
문: 동원의 배정제라는 것은?
답: 1년 4반기마다 각 공장 사업장으로 하여금 소용되는 인원을 신청하게 한 다음 징용과
알선, 모집 등에 의하여 인원을 배정한다. 이렇게 하여 동원의 수급 관계를 조정할
터이다.
문: 취직권장주의란 무엇인가?
답: 직업을 잃은 사람 또는 소개하여 가는 사람에게는 지역을 지정하여 취직하도록
권장한다. 만일 권해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도지사가 취직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문: 응징사(징용에 응한 사람(역자주))가 관아에 징용되면 어떻게 되나?
답: 이것은 철도공장 등에 징용되는 경우인데 이런 때에도 응징사 복무규율에 복종해
야 한다.
문: 지원징용이란 무엇인가?
답: 원칙으로는 국민등록의 신고의무자만 징용의 대상이 되는 것인데 그 이외의 사람이
라도 지원하는 사람은 징용한다.
-근로보국 협력관계-
문: 근로보국협력에 관한 것은?
답: 대체로 종래와 다름이 없으나 이 중에 여자정신근로대의 규정도 포함된다. 종래
국민근로보국 협력령에 의한 협력은 근로보국대 즉 대(隊)조직으로 해 온 것인데
금후에는 대 이외에 개인도 될 수 있다. 즉 가정에서 비교적 틈이 있는 여자에게는
가정에서 근로에 협력하게 한다. 이렇게 하여 집에서 군의(軍衣)의 단추를 다는
등 일을 하게 한다. 대로 출동하는 경우에는 『국민근로보국대』로 된다. 그러나 가정
생활의 근(根)으로 없어서는 안 될 여자 혹은 식구가 많거나 병자가 있는 가정의
딸 등은 정신대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문: 기동배치란 무엇인가?
답: 특정한 공장사업장 또는 단체에 명령을 발해서 필요한 때는 언제든지 동원될 수
있는 인원을 미리 결정하는 것이다. 유사시 필요한 곳에 기동배치할 수 있는 인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문: 만 12세 이상 25세 미만의 여자에 대한 규제란 무엇인가?
답: 여자는 징용하지 않지만 여자정신대에 의한 근로 협력은 금후 어느 정도 발동되어야
할 것이므로 12세 이상 25세 미만의 여자를 고용하는 경우와 또 이들이 취직하려는
때는 관계 관청(부, 읍, 면)의 인가를 얻어야 한다.
키워드
국민근로동원령, 요원제도, 만 12세 이상 50세 미만의 남자 징용, 총독부, 다하라(田原)
사무관, 동원준비 중요내용, 근로보국 협력관계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170
전거제어번호
ILO위반_경성_080
제목
男女軍屬募集 (남녀 군속 모집)
출
전
신문명
매일신보 [ 每日申報 ]
발행일
1945년 08월 09일
기사위치
및 크기
2면 / 제목 1단, 기사 3단
신문기사
원본
기사
주요내용
조선군관구사령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군속을 모집한다.
▲남자 고용인 : 고원은 군인 출신자 또는 중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신체 강건한
사람으로, 용인은 학력을 불구하고 12세 이상~30세 미만의 신체 강건한 자
▲여자 고원 또는 용인 : 고등여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신체 강건한 자로 될 수
있는 대로 『타이피스트』 전화교환수 필생(筆生) 등의 경험을 가진 자
▲남녀용인 : 만13세 이상 만 17세 미만의 자로 신체 강건한 자
이상의 신입기한은 8월 17일까지로 희망자는 매일 오전 9시까지 자필이력서를 지참하면
된다.
키워드
조선군관구사령부, 군속모집, 남자고용인, 전화교환원, 타이피스트
171
Ⅵ. 연구성과와 활용방안
. 연구성과와 활용방
173
Ⅳ
연구성과와 활용방안
1. 연구성과와 의의
본 연구는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의 총동원체제하에서 경성권역의 군사상 전략적 배치,
학교와의 하부구조 형성을 통해 경성지역 학생의 강제동원 시설과 실제 어떤 근로를 강제당
했는지를 규명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 경성지역 학생 강제동원의 피해 실태에 대한 기초데이터와 근거자료를
확보하였고, 학생 강제동원의 국제법적 불법성을 밝혀 향후 일본정부의 역사 왜곡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증거 자료로써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서울 지역에 산재한 학생 강제동원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고, 학교사를 통해 학생들의 피해 상황을 발굴함으로써 강제동원 기록을
보존하는데 기여한다.
2. 활용방안
경성 학생 강제동원에 대한 연구성과는 학술활동과 DB구축, 콘텐츠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첫째, 학술활동으로서, 연구 결과를 국내외의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알린다. KCI 이상
전문학술지에 수록하여 대일항쟁기 학생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 양상을 명확하게 전파하고자
한다.
둘째, 학생 강제동원에 대한 아카이브 기반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경성 학생동원
아카이브 DB를 구축하는 기반자료를 제시하여, 후속 연구나 콘텐츠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아울러 향후 한·일 간 외교 과정에서 식민지배상(보상) 문제를 국제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증거 자료로써 활용할 수 있다.
175
참 고 문 헌
참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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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80년사 편찬위원회, 『梨花八十年史』, 이화여자대학교, 1967
이화100년사 편찬위원회, 『이화100년사 : 1886-1986』,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4
창학 100주년사 편찬위원회, 『숙명 100년 : 1906~2006』, 숙명여자대학교, 2008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경성권역
학생 강제동원의 실태
<연구참여자>
수 행 기 관
책 임 연 구 원
연 구 보 조 원
경북대학교 산학협력단·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김경남(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손효진, 주지훈, 권현준
발 행 일
발 행 인
발 행 기 관
편 집 인
주 소
전 화
팩 스
홈 페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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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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